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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제(한국 한자: 共和制, 영어: Republic)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체이다.[1] 보통 군주가 없는 국가 체제를 가리키는데, 공화국이라는 말 자체는 '공공의 것'을 뜻하는 라틴어 'Res publica'를 어원으로 하는 것으로, 키케로는 이 표현을 '국민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일컫는 '레스 포풀리'(res populi)로 풀이하였으며, 이것은 오늘날의 국민주권주의를 의미한다.
공화제를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정치적인 태도나 이념을 공화주의(共和主義)라고 하며, 공화제를 채택하는 국가를 공화국(共和國)이라 한다. 공화제는 시민을 대표하는 시민 단체에 권한이 있는 정부 형태로 조직되어있다.
어원
[편집]공화제를 뜻하는 영단어 'republic'은 그리스어 'politeia'의 라틴어 번역에서 유래하였다.[2][3]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다른 라틴 작가들과 함께 'politeia'를 라틴어로 'res publica'로, 르네상스 학자들은 이를 'republic'으로 번역하였다. 로마인들은 로마 제국 시대에도 국가와 정부를 지칭하는 데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4] 아리스토텔레스는 'politeia'라는 용어가 특정 유형의 'politeia'를 더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 최초의 고전 작가로, 그의 저서 『정치학』 제3권에서 '시민 전체가 공익을 위해 통치할 때, 그것은 모든 정부에 공통된 명칭, 즉 정부라고 불린다'고 주장하였다. 후기 라틴어 저작에서는 '공화국'이라는 용어가 어떤 정권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공익을 위해 일하는 정부를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5]
중세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도시 국가가 코무네 또는 시뇨리아 기반 정부를 가지고 있다. 중세 후기, 조반니 빌라니와 같은 작가들은 이러한 국가를 '자유로운 국민'을 의미하는 '리베르타스 포풀리'와 같은 용어로 묘사하였다. 15세기에 들어서는 고대 로마 문헌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작가들이 고전 용어를 선호하게 되면서 이러한 용어는 변화하였다. 비군주제 국가를 설명하기 위해 작가들은 라틴어 구문 'res publica'를 채택하였다.[6]
한자 문화권에서 쓰는 번역어 '공화'(共和)는 미쓰쿠리 쇼고의 《곤여도식》(坤輿図識)(1845)에서 'republic'의 번역어로 처음 쓰였다. 공화라는 말은 주나라 때의 공화시대에서 따왔다. 《사기》에 따르면 당시 반란으로 왕좌가 비어있는 상태에서 제후들이 추대한 사람이 왕 대신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7]
역사
[편집]철학 용어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전하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처럼 그리스뿐만 아니라 중동에서도 다양한 헌법을 가진 도시 국가의 오랜 역사가 있었다.[8][9] 고전 시대 이후, 중세 시대에는 베네치아와 같은 많은 자유 도시들이 다시 발전하였다. 혁명의 시대 이후, 공화국이라는 용어는 정부 권위의 원천이 헌법이며 공무원의 정당성은 세습이나 신권(神權)이 아닌 국민의 동의에서 비롯되는 정부 체제를 지칭해 왔다.[10]
고전·고대
[편집]현대 공화국 자체는 고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국가와 다른 유형이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고전 시대의 국가들이 많이 있다. 고대 아테네와 로마 공화국이 대표 예이다. 이러한 국가의 구조와 통치 방식은 현대 공화국과 다른 것이다. 고전 공화국의 정치 철학은 이후 수 세기 동안 공화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마키아벨리, 몽테스키외, 애덤스, 매디슨과 같이 공화국을 옹호하는 철학자와 정치인들도 있다.[11]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다양한 형태의 정부를 논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중 하나를 '폴리테이아'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과두정치와 민주정이라는 다른 여러 형태의 혼합으로 구성되었다. 그는 이것이 이상적인 정부 형태 중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폴리비우스는 이러한 여러 사상을 확장하여 혼합 정부 개념과 양성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과 악성 참주정, 과두정, 오클로크라시라는 차별화된 기본 정부 형태에 다시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로마 저작으로는 키케로의 『공공정치론』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전 공화정은 제국으로 발전하거나 제국에 정복당했다. 대부분의 그리스 공화정은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로마 공화정은 카르타고와 같이 공화정으로 간주될 수 있는 지중해 연안의 다른 국가들을 정복하며 급속도로 확장, 이후 로마 공화정은 로마 제국으로 발전하였다.[12]
공화국이라는 용어는 고전 이전 도시 국가, 특히 유럽 외부와 그리스-로마의 영향을 받았던 지역을 지칭하는 데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으나, 유럽 외부의 일부 초기 국가는 오늘날의 공화국과 유사한 정부를 가지고 있었다. 고대 근동에서는 동지중해의 여러 도시가 집단 통치를 달성하였다. 공화국 도시 국가는 기원전 11세기부터 레반트 해안을 따라 페니키아에서 번영하였으며, 6년의 짧은 임기 동안 권력을 유지하였다.[13]
인도 아대륙
[편집]초기 공화주의 제도는 독립적인 가나상가에서 유래하였다. '가나'는 부족을, '상가'는 의회를 의미하며, 기원전 6세기 초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서기 4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증거는 산발적이며, 그 시기의 순수한 역사적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현재의 파키스탄과 인도 북서부 지역을 침략한 지 2세기 후에 저술한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루스는 민주적인 근거 없이 인도에 독립적이고 국가적인 국가가 존재했다고 언급하였다.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3세기 이후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쇠퇴했으며, 그 본질이 아무리 귀족적이라 할지라도 모든 자치 국가를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14][15][16]
아이슬란드 연방
[편집]아이슬란드 연방은 서기 930년, 하랄 1세 왕의 통치 아래 통일된 노르웨이를 피해 피난 온 난민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연방은 족장들이 운영하는 여러 씨족으로 구성되었으며, 알팅은 의회와 대법원을 통합한 기관으로, 하급 법원에서 제기된 분쟁을 해결하고, 법률을 제정하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1000년 아이슬란드의 기독교화는 그러한 사례 중 하나로, 알팅은 모든 아이슬란드 국민이 기독교로 세례를 받아야 하며 이교 의식을 금지하도록 규정하였다. 대부분의 국가와는 달리, 아이슬란드 연방에는 공식적인 지도자가 없었다.
상업·무역국
[편집]
유럽에서는 중세 후기에 여러 소국들이 공화정 체제를 채택하면서 새로운 공화국들이 등장, 이러한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작지만 부유한 무역 국가이자 지중해 해양 공화국이나 한자동맹처럼 상인 계급이 두각을 나타낸 국가들이었다. 크누트 하콘센은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이 양분되어 토지를 소유한 엘리트가 통치하는 국가는 군주제, 상업 엘리트가 통치하는 국가는 공화제로 나뉘었다고 분석하였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았지만 중앙 정부가 가장 취약한 지역이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도시들이 상당한 독립을 얻고 코뮌 형태의 정부를 채택하였다. 봉건적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은 확장을 거듭하며 내륙 농촌 지역을 장악하였다. 가장 강력했던 두 도시 국가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그 경쟁자인 제노바 공화국이었으며, 양국 모두 대규모 무역항이었고, 해군력을 활용하여 지중해의 넓은 지역을 장악하며 영토를 더욱 확장하였다. 공화국 옹호 이념이 처음 발전한 것은 이탈리아였는데, 루카의 바르톨로메오, 브루네토 라티니,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 레오나르도 브루니와 같은 작가들은 중세 도시 국가를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을 계승하는 존재로 여겼다.[17]
칼뱅주의 공화국
[편집]이탈리아 공화국들의 주요 이념적 원천은 고전 작가들이었지만, 북유럽에서는 개신교 종교 개혁이 새 공화국 수립의 명분으로 이용되었다.[18] 가장 중요한 것은 중세 공화국 중 가장 크고 강력했던 스위스 연방에서 발전한 칼뱅주의 신학이었는데, 장 칼뱅은 군주제의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신자들은 불신앙적인 군주를 타도할 의무가 있다는 교리를 주장하였다.[19] 프랑스 종교 전쟁 당시 위그노 교도들의 저술에도 공화국 건설을 옹호하는 내용이 등장하였다.[20]
칼뱅주의는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공화주의 반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와 한자동맹처럼 양국 모두 중요한 무역 중심지였으며, 신대륙과의 무역을 통해 번영을 누린 대규모 상인 계층이 있었다. 두 지역 인구의 상당수도 칼뱅주의를 받아들였다. 네덜란드 반란 당시, 네덜란드 공화국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거부하며 탄생하였으나, 네덜란드는 즉시 공화정 체제를 채택하지 않았는데, 공식적인 독립 선언, 1581년 폐위법에서 펠리페 2세의 왕위는 공석으로 선언되었을 뿐, 네덜란드 행정관들은 앙주 공작,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오렌지 공 윌리엄에게 차례로 펠리페 2세의 후임을 요청하였고, 1588년이 되어서야 당시 대의 의회였던 삼부회가 국가의 주권을 스스로에게 귀속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641년, 교도들이 주도하고 런던 상인들이 자금을 지원한 잉글랜드 내전이 발발하여 성공, 찰스 1세가 처형되었다. 잉글랜드에서는 제임스 해링턴, 앨저넌 시드니, 존 밀턴 등이 군주제를 거부하고 공화정 체제를 수용할 것을 주장한 최초의 작가들이었다. 잉글랜드 공화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곧 군주제가 복원되었다. 네덜란드 공화국은 1795년까지 명목상으로는 존속했지만, 18세기 중반에는 총독이 사실상 군주가 되었다.
자유주의 공화국
[편집]초기 공화주의 반란과 함께 근대 초기 유럽에서는 군주 권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절대 군주제 시대는 중세 대부분에 존재했던 제한적이고 분권화된 군주제를 대체하였으며, 일련의 작가들이 자유주의라는 이념을 만들어냄에 따라 군주의 완전한 통제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이러한 계몽주의 사상가들 대부분은 공화제보다 입헌 군주제 사상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는데, 크롬웰 정권은 공화주의의 신뢰를 떨어뜨렸고,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공화제가 무정부 상태나 폭정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 볼테르와 같은 철학자들은 반절대주의와 동시에 군주제를 강력히 지지하였다.
장 자크 루소와 몽테스키외는 공화국을 찬양하며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모델로 삼았으나, 두 사람 모두 인구 2천만 명의 프랑스와 같은 국가는 공화국으로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루소는 코르시카 공화국의 공화주의 실험을 높이 평가하며, 소규모 자치 공동체라는 이상적인 정치 구조를 제시하였으며, 몽테스키외는 도시 국가는 이상적으로는 공화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더 큰 영토를 가진 국가에는 제한된 군주제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
미국 독립전쟁은 영국 의회가 식민지에 대해 행사하는 권위에 대한 거부에서 시작되었을 뿐, 군주제 자체에 대한 거부는 아니었다. 영국 군주는 식민지 주민들이 대표 정부에 대한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여기는 일로부터 식민지 주민들을 보호하지 못했고, 구제를 요청하는 사람들을 반역자로 몰아붙였으며,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전투 부대를 파견하는 것을 지지했기 때문에 영국 군주제가 폭군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미국 독립 선언과 함께 반란 지도자들은 군주제를 단호히 거부하고 공화주의를 받아들였으며, 혁명 지도자들은 프랑스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저서와 고전 공화국의 역사에 정통했다. 존 애덤스는 역사 전반에 걸쳐 공화국에 관한 저서를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널리 배포되어 대중에게 읽혀졌던 토머스 페인의 저서 『상식』은 공화주의 이상과 독립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1789년에 발효된 미국 헌법은 1781년에 비준된 연합규약과 영구 연합을 통해 당시 연방 정부를 수립하려는 시도가 비교적 약했던 연방제를 대체하여 비교적 강력한 연방 공화국을 수립하였으며, 미국 권리 장전이라 불리는 헌법의 첫 10개 수정 조항은 혁명을 정당화하는 공화주의 이상에 근본적인 자연권을 보장하였다.
프랑스 혁명 역시 처음부터 공화주의적이지 않았다. 바렌으로의 피신으로 왕에 대한 지지가 대부분 사라진 후에야 공화국이 선포되었고, 루이 16세는 단두대에 올랐다. 프랑스 혁명 전쟁에서 프랑스가 눈부신 성공을 거두면서 유럽 대륙 전역에 무력으로 공화국들이 확산되었고, 대륙 전역에 여러 종속 공화국들이 세워졌다.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프랑스 제1공화국과 자매 공화국들이 종식되었고, 각각은 인민 군주국으로 대체되었다. 나폴레옹 시대 내내 승자들은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네덜란드 공화국을 포함하여 유럽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들을 다수 멸망시켰스며, 이 공화국들은 이후 군주국으로 전환되거나 이웃 군주국에 흡수되었다.
프랑스 제2공화국은 1848년에 수립되었으나, 1852년 스스로 황제를 선포한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막을 내렸고, 1870년 보불전쟁 중 시민혁명위원회가 나폴레옹 3세의 항복을 거부하면서 프랑스 제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스페인은 1873년에서 1874년 사이에 잠시 스페인 제1공화국이 되었지만, 곧 군주제가 복고, 20세기 초에는 프랑스와 스위스, 산마리노만이 유럽의 유일한 공화국으로 남았다. 1908년 리스본 국왕 시해 사건 이후, 1910년 10월 5일 혁명으로 포르투갈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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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군주국 (55개)
공화국 (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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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군주국 (22개)
공화국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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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군주국 (20개)
공화국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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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군주국 (13개)
공화국 (2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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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군주국 (12개)
공화국 (3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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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 동안 중국 내에서 상당한 반청 감정이 형성되었고, 입헌군주제를 요구하는 여러 시위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는 쑨원이었는데, 그는 미국과 유럽, 중국의 사상을 결합한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주창, 그의 지도 아래 1912년 1월 1일을 기해 중화민국이 선포되었다.

공화주의 사상은 특히 아시아에서 확산되었는데, 미국은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며, 개신교 선교사들이 중심 역할을 했고, 서양의 자유주의·공화주의 작가들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들은 오랫동안 천명을 잃은 부당한 정부를 국민이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 온 토착 유교 사상에 영향을 받은 정치 철학과 결합되었다. 이 시기에 동아시아에는 에조 공화국, 대만민주국, 필리핀 제1공화국이라는 세 개의 단명한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여러 거대 제국이 붕괴되면서 공화주의가 크게 확대되었다. 러시아 제국(1917년), 독일 제국(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1918년), 오스만 제국(1922년)은 모두 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새로운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했고, 아일랜드, 폴란드, 핀란드, 체코슬로바키아와 같은 많은 국가들이 공화주의 정부 형태를 선택하였다. 그리스-튀르키예 전쟁(1919~22)에서 그리스가 패배한 후, 군주제는 잠시 그리스 제2공화국(1924~35)으로 대체되었다.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1931~39)이 선포되면서 스페인 내전이 발발, 프랑코 정권이 수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이탈리아는 경제 파괴, 사회 분열, 파시스트 정권을 지지한 군주제에 대한 분노 등의 문제를 안게 되었고, 이는 이탈리아 공화주의 운동의 부활에 기여하였다. 움베르토 2세 국왕은 자국이 군주제로 남을지 공화국이 될지 결정하기 위한 1946년 이탈리아 국가형태 국민투표를 실시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1946년 6월 2일, 공화파는 54.3%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이탈리아는 공식적으로 공화국이 되었다. 현재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해방 당시 나치와 파시스트 세력의 패배에 기여한 모든 반파시스트 세력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제헌 의회의 활동으로 탄생한 성문 민주주의 헌법을 가지고 있다.[21][22]
탈식민지화
[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남아 있던 유럽 식민지 대부분은 독립을 쟁취했고, 대부분은 공화국이 되었다. 가장 큰 식민지 강국은 프랑스와 영국이었다. 공화정을 유지했던 프랑스는 이전 식민지에 공화국을 수립하도록 장려하였으며, 영국은 이전 정착 식민지에서 사용했던 모델을 따라, 같은 군주 아래 여전히 연결된 독립적인 영연방을 구성하려 하였다. 대부분의 정착 식민지와 카리브해·태평양 지역의 소국들은 이 체제를 유지했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신생 독립국들은 이를 거부, 헌법을 개정하여 공화국으로 전환하였다. 영국은 중동에서 다른 모델을 따랐다. 이라크, 요르단,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예멘, 리비아를 포함한 여러 식민지와 위임통치령에 지방 군주제를 도입, 이후 수십 년 동안 혁명과 쿠데타로 여러 군주가 전복되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국가원수
[편집]
의원내각제: 정부 수반은 입법부에 의해 선출·지명되며 입법부에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제: 정부수반은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며 입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혼합 체제:
기타:
군주가 없는 대부분의 현대 공화국에서는 국가원수를 대통령이라는 칭호로 사용한다. 이 칭호는 원래 영국에서 위원회나 통치 기구의 의장과 13개 식민지의 지도자들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평의회 의장'(President of the Council)이다. '대통령' 칭호를 최초로 채택한 공화국은 미국이다. 공화국의 국가원수가 정부수반이기도 한 형태도 있는데, 이는 대통령제에 해당한다.[23]
독일, 이탈리아, 인도, 트리니다드 토바고처럼 입법부가는 의원내각제 국가인데, 군주의 권한이 상당히 제한된 의원내각제를 갖춘 입헌군주제와 유사하게 운영된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정부수반(대부분 총리)이 가장 실질적인 정치 권력을 행사한다. 준대통령제는 대통령이 중요한 권한을 가진 국가원수이지만, 총리 역시 중요한 권한을 가진 정부수반이다. 프랑스에서는 집권 내각 구성원과 대통령이 서로 다른 정파 출신인 경우, 이러한 상황을 '동거'라고 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산마리노, 스위스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국가원수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위원회(평의회)이다. 로마 공화국에는 두 명의 집정관이 있었는데, 이들은 시민권을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성인 자유민 남성으로 구성된 켄투리아 민회에서 1년 임기로 선출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거나 의회나 평의회에 의해 간접 선출된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제와 준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거나 미국처럼 간접 선출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각주에서 선출하는 선거인단에 의해 공식적으로 선출된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약 50만 명의 귀족이 폭넓은 투표권을 가진 선거군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황금의 자유로도 알려져 있으며, 강력한 지주들이 왕권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발전하였다. 이 제도의 지지자들은 고전적인 사례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저술들을 참고하여 자신들의 선거군주제를 '공화정'에 기반한 '제치포스폴리타'라고 불렀다.
형태
[편집]형태에 따라 대체로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공화제를 표방한 독재제도 등을 들 수 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표준국어대사전
- ↑ “Republic”. 《Merriam Webster》. Merrium-Webster Inc. 2019년 6월 5일에 확인함.
- ↑ Cullen, Daniel (2014). 〈Republics〉. 《The Encyclopedia of Political Thought》. 3243–3248쪽. doi:10.1002/9781118474396.wbept0887. ISBN 9781118474396.
- ↑ Lewis, Charlton T.; Short, Charles (1879). 〈res, II.K〉. 《A Latin Dictionar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년 8월 14일에 확인함.
- ↑ “Republic | Encyclopedia.com” (영어). 《www.encyclopedia.com》. 2018년 10월 20일에 확인함.
- ↑ Rubinstein, Nicolai. "Machiavelli and Florentine Republican Experience" in Machiavelli and Republican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 ↑ http://weekly1.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09/2009060900964.html 보관됨 2018-04-14 - 웨이백 머신 republic과 공화제(共和制)]
- ↑ Nippel, Wilfried. "Ancient and Modern Republicanism". The Invention of the Modern Republic ed. Biancamaria Fontan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p. 6
- ↑ Reno, Jeffrey. "republic".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p. 184
- ↑ Paine, Thomas (1776). 〈On the Origin and Design of Government in General, With Concise Remarks on the English Constitution〉. 《Common Sense》.
- ↑ Pocock, J.G.A. The Machiavellian Moment: Florentine Political Thought and the Atlantic Republican Tradition (1975; new ed. 2003)
- ↑ Medlej, Youmna Jazzar; Medlej, Joumana (2010). 《Tyre and its history》. Beirut: Anis Commercial Printing Press s.a.l. 1–30쪽. ISBN 978-9953-0-1849-2.
- ↑ Jidejian, Nina (2018). 《TYRE Through The Ages (3rd ed.)》. Beirut: Librairie Orientale. 57–99쪽. ISBN 9789953171050.
- ↑ Diodorus 2.39틀:Full citation needed
- ↑ Larsen, 1973, pp. 45–46틀:Full citation needed
- ↑ de Sainte, 2006, pp. 321–3틀:Full citation needed
- ↑ Finer 1999, 950–955쪽.
- ↑ Finer 1999, 1020쪽.
- ↑ "Republicanism". Encyclopedia of the Enlightenment p. 435
- ↑ "Introduction". Republicanism: a Shared European Heritage. By Martin van Gelderen and Quentin Skinne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p.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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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myth, Howard McGaw Italy: From Fascism to the Republic (1943–1946) The Western Political Quarterly vol. 1 no. 3 (pp. 205–222), September 1948.JSTOR 442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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