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이란 관계
이란 |
아프가니스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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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는 모하마드 자히르 샤의 통치 시기이자 팔라비 제국의 레자 샤 팔라비 치하였던 1935년에 수립되었다. 그러나 두 나라 간의 관계는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 결과,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페르시아어를 구사하며, 다리어 (페르시아어의 동부 방언)는 아프가니스탄의 공용어 중 하나이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많은 사람들은 페르시아의 새해인 노루즈를 함께 기념한다.
양국 관계는 1978년의 사우르 혁명과 1979년의 이란 혁명,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내 분쟁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 아프간 난민, 탈레반)과 관련된 문제들, 이란의 수자원 분쟁,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내 미국의 영향력 확대 등으로 인해 악화되었다.[1]
2019년 7월, 이란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새로운 체류 기회를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과학적, 전문적 성취를 이룬 아프가니스탄인들, 그리고 이란인 배우자나 자녀를 둔 이들은 이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2] 2021년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에도 일부 견해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는 더욱 발전하였다.[3]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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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이란 (1935년 이전 서방에서 페르시아로 불림)과 비교적 긴 역사를 공유하며, 아케메네스 왕조와 사산 왕조 등 여러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였다. 사실, 현대 아프가니스탄을 구성하는 지역들은 11세기 시인 피르다우시가 그의 서사시 샤나메에서 이란 (페르시아)의 필수적인 일부로 여겼으며, 자불리스탄은 이란의 영웅 로스탐의 고향으로까지 여겨졌다.[4]
사파비 왕조가 페르시아에서 건국되었을 때,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일부 지역은 부하라 칸국과 카불리스탄의 바부르의 지배하에 있었다. 사파비 왕조의 초대 군주 이스마일 1세는 제국의 영토를 사방으로 확장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대부분 지역을 정복했다. 수세기 동안 사파비 왕조는 이 지역을 지배했으며, 처음에는 제국의 동쪽 끝 영토를 다스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시아파 지역 주민들에 대한 정책이 점차 악화되었다. 그 결과 시아파 사파비 왕조와 수니파 세력 간의 전쟁이 발생했으며, 특히 구 칸다하르 지역에서 그 갈등이 심화되었다. 17세기 말에 이르러 사파비 왕조는 급격히 쇠퇴하였고, 이란은 조지아 출신의 종속민 구르긴 칸을 칸다하르 총독으로 임명해 아프가니스탄의 수니파 주민들을 강제로 시아파로 개종시키려 했다. 이로 인해 광범위한 억압과 폭력이 발생하였다.
이 상황은 존경받던 수니파 길자이 파슈툰인 추장 미르와이스 호타크의 등장까지 이어졌다. 미르와이스는 일련의 전투에서 쇠퇴하던 사파비 왕조를 격파하고 남부 아프가니스탄의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의 아들 마흐무드 호타크는 1722년, 내분과 오스만 제국 및 러시아 제국 등 외세의 간섭으로 혼란에 빠진 페르시아를 잠시 정복하였으며, 곧 사파비 왕조는 멸망하였다.[5]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간에는 수천 년에 걸친 문화적 유대가 존재한다. 그 결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페르시아어의 동부 방언인 다리어가 공용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 이전의 이란 봄맞이 축제인 노루즈를 기념하며, 특히 북부의 발흐주는 그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현대 시대
[편집]아프가니스탄은 1921년 아마눌라 칸 국왕 통치 시기에 카자르 왕조 하의 이란과 우호 조약을 체결하였다.[6] 1961년 9월, 양국의 외교 관계는 단절되었으나 1963년 5월에 복원되었다.[7] 《데일리 파이오니어》에 따르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간의 지속적인 협정으로 인해 양국 관계는 제3자의 영향에 의해 조종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8]
도이체 벨레는 2018년 보도에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역에서 탈레반 활동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이란군과 탈레반 간의 협력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언급하였다.[9]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같은 해 아프가니스탄군은 이란이 탈레반에게 무기와 자금을 제공했다고 비난했으나, 이란은 이를 부인하였다.[10]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Mashal, Mujib (2012년 12월 2일). “What Iran and Pakistan Want from the Afghans: Water”. 《Time》 (Kabul).
- ↑ “Why and How to Get Iran's Residency”. 《IFP News》. 2019년 7월 4일.
- ↑ Lamm, Birgit; Winter, Theresa Caroline (2024년 1월 12일). “Iran-Afghanistan relations - the geostrategic importance of Afghanistan”. Friedrich Naumann Foundation. 2024년 1월 12일에 확인함.
- ↑ Rostam und Sohrab: Eine Heldengeschichte in zwölf Büchern - Neuausgabe, by Friedrich Rückert
- ↑ Romano, Amy (2003). 《A Historical Atlas of Afghanistan》. The Rosen Publishing Group. 28쪽. ISBN 978-0-8239-3863-6. 2010년 10월 17일에 확인함.
- ↑ Clements, Frank (2003). 《Conflict in Afghanistan: A historical encyclopedia》. ABC-CLIO. 8쪽. ISBN 1-85109-402-4. 2012년 2월 22일에 확인함.
- ↑ “Ties with Kabul resumed. 50 Years ago Today”. 《Dawn》. 2013년 5월 29일. 2013년 11월 29일에 확인함.
- ↑ Hamyani, Masoud (2018년 6월 29일). “Afghanistan-Iran relations”. 《Daily Pioneer》.
- ↑ Saifullah, Masood (2018년 10월 25일). “Iranian support of Afghan Taliban targeted by new US sanctions.”. 《Deutsche Welle》.
- ↑ “Iran in talks with Afghan Taliban: Iranian state media report.”. 《Reuters》. 2018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