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
|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 |
|---|---|
상부 벨베데레 | |
| 약칭 | Das Belvedere |
| 유형 | 미술관 |
| 소재지 | Prinz Eugen-Straße 27, 빈, 오스트리아 |
| 개관일 | 1903년 |
| 방문객 수 | 1,154,031 (2016)[1] |
| 좌표 | 북위 48° 11′ 29″ 동경 16° 22′ 51″ / 북위 48.19139° 동경 16.38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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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www.belvedere.at/en |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은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박물관이다.
벨베데레 궁전은 외젠 드 사부아 공자(1663–1736)의 여름 거주지였다. 이 단지는 18세기 초 유명한 바로크 건축가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상부 벨베데레와 하부 벨베데레, 오랑주리와 궁정 마구간, 그리고 넓은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벨베데레는 오스트리아 최초의 공공 박물관이었으며, 현재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오스트리아 미술의 위대한 컬렉션 중 하나를 소장하고 있으며, 추가로 전세계 예술가들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2] 상부 벨베데레에서는 500년간 이상의 예술 작품을 만날 뿐만 아니라 웅장한 국빈실도 경험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은 하부 벨베데레와 상부 벨베데레 외에도, 외젠 공자의 겨울궁전과 21er 하우스 그리고 구스티누스 암브로시 박물관에 추가로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벨베데레의 미술 컬렉션을 살펴보면 오스트리아 예술 발전을 거의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세계 최대의 구스타프 클림트 컬렉션은 상부 벨베데레에서 전시되는 1900년경 예술 전시의 핵심을 이룬다. 주요 작품으로는 클림트의 회화 키스 (1908)와 유디트 1 (1901), 그리고 에곤 실레와 오스카르 코코슈카의 걸작들이 있다. 프랑스 인상주의의 주요 작품들과 빈 비더마이어 시대 예술의 최대 컬렉션 또한 박물관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역사
[편집]

벨베데레 정원 궁전은 외젠 드 사부아 공자의 지시로 1723년에 완공되었다. 건축가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는 벨베데레를 여름 거주지로 설계했다. 내부는 프란체스코 솔리메나, 카를로 칼로네, 자코모 델 포에게 의뢰했다. 1776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호프부르크 궁전의 <제국 회화 갤러리>를 벨베데레로 옮기고 일반 대중에게 공개했다.[3] 이후 1781년부터 제국 미술 컬렉션이 벨베데레에 전시되기 시작했다. 1903년에는 오스트리아 국립 "근대 갤러리"가 하부 벨베데레에 문을 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 이후, 상부 벨베데레와 오랑주리도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다. 1921년에 오스트리아 갤러리(Österreichische Galerie)로 이름을 바꾸면서, 1923년에 문을 연 하부 벨베데레의 바로크 박물관, 1924년에 문을 연 상부 벨베데레의 19세기 미술 갤러리, 1929년에 문을 연 오랑주리의 현대 갤러리를 포함하게 되었다. 벨베데레의 중세 미술 컬렉션은 1953년에 하부 벨베데레 옆 오랑주리에서 처음 전시되었다.
1950년 3월, 제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으로 이미 손상되었던 상부 벨베데레 북동쪽 코너 파빌리온의 "골드 캐비닛"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4] 그 화재로 파괴된 일부 방과 예술품들은 20세기 초에 내부와 장식을 그렸던 예술가들, 예를 들어 현재 제국 보물 컬렉션의 일부로 전시된 요제프 푀글(1867-1956)과 같은 화가들의 작품에 묘사되어 있다.[5][6]
1955년, 수년간의 재건 및 개조 끝에 상부 벨베데레가 대중에게 다시 공개되었고,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르 코코슈카 및 기타 주요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년간 많은 작품이 수집되었고 박물관은 확장되고 현대화되었다.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은 오늘날 오스트리아 연방 박물관(Bundesmuseen) 중 하나이며 2000년부터 법적으로 독립된 공공 연구/과학 기관이 되었다.
잘츠부르크 루페르티눔과 묀히스베르크의 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낸 아그네스 후슬라인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벨베데레의 관장을 역임하였다. 그녀는 벨베데레를 국제적 맥락에서 오스트리아 미술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오스트리아 연방 미술 큐레이터를 지낸 스텔라 롤리그는 2017년부터 벨베데레의 총괄 관장을 맡고 있다.[7] 그녀와 크리스티안 후머는 2023년에 박물관과 그 컬렉션의 300주년을 기념하는 독일어 원본을 영어로 번역한 책을 편집했다.[8]
대대적인 개조 및 리모델링을 거쳐, 2008년 봄부터 중세 및 바로크 미술 컬렉션의 주요 작품(이전에는 하부 벨베데레에 있었음)이 상부 벨베데레에 이전 전시되었다. 이로써 처음으로 중세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영구 컬렉션 전체를 한 지붕 아래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부 벨베데레와 오랑주리의 개조된 공간은 이제 임시 전시회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갤러리
[편집]-
야콥 판 쉬판, 외젠 (1663–1736), 사부아 공자,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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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Knapp, 자킨에게 바치는 경의, 182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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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엘프사암산맥의 바위 풍경, 1822/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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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게오르크 발트뮐러, 엘리자베스 발트뮐러, 화가의 어머니,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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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폴 신부의 초상화, 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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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게르스틀, 웃는 자화상, 1908
나치 약탈 미술 논란 및 반환
[편집]- 1959년 8월 26일, 홀로코스트 생존자 앨리스 모르게른(Josef Morgenstern)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살해된 남편 요제프 모르게른의 미망인으로, 빈, 니더외스터라이히, 부르겐란트 주 지방세무서(Finanzlandesdirektion für Wien, Niederösterreich und das Burgenland)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출했다. "우리 소유였던 에곤 실레의 그림 '네 그루 나무'가 지금 상부 벨베데레에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 그림을 팔지 않았고, 친구이자 빈 궁펜도르퍼슈트라세의 변호사인 로베르트 뢰를에게 안전 보관을 위해 맡겼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사망했고, 저는 그 그림이 벨베데레의 19세기 [정정: 20세기] 컬렉션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릅니다.[9]" 2020년 3월 20일, 오스트리아 자문위원회는 실레의 그림을 모르게른의 상속인에게 반환할 것을 권고했다.[10][11]
- 2006년 11월, 50년 이상에 걸친 법적 분쟁 끝에 패널은 벨베데레 갤러리에 전시된 에드바르 뭉크의 "해변의 여름밤"을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인 알마 말러의 손녀이자 유일한 상속인인 마리나 피스툴라리-말러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12][13]
- 2006년 오스트리아는 벨베데레에 소장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다섯 점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상속인에게 반환했다.[14][15]
- 2006년 오스트리아 중재 패널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말리에 추커칸들 초상화"가 나치에 의해 약탈된 것이 아니므로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16] 이 결정은 아말리에 추커칸들이 딸과 함께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MSNBC가 보도했듯이 "명백히 약탈된 이 그림을 반환하는 대신, 오스트리아 중재 패널은 벨베데레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는 점도 한몫했다.[17]
- 2009년 오스트리아 중재 패널은 벨베데레가 요한 페터 크라프트의 "남성 초상화"(또한: 그의 형제의 초상화 또는 초상화)를 막스 만들-말데나우의 법적 후계자에게 반환할 것을 권고했다.[18]
- 2012년 다큐멘터리 "발리의 초상화"는 에곤 실레의 유명한 초상화는 빈의 미술상인 레아 본디의 소유였는데, 나치 프리드리히 벨츠가 1939년에 그녀의 개인 컬렉션에서 압류하였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벨베데레 박물관의 실수로 다른 상인에게 반환된 과정을 이야기한다.[19]
- 2014년 벨베데레는 막스 리버만의 미망인인 마르타 리버만(Martha Liebermann)의 상속인에게 빌헬름 라이블의 "농부의 부엌 / 부엌 내부"를 반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20]
각주
[편집]- ↑ “Visitor Figures 2016” (PDF). The Art Newspaper Review. April 2017. 14쪽. 2018년 3월 23일에 확인함.
- ↑ Britannica, The Editors of Encyclopaedia. "Belvedere Museum". Encyclopedia Britannica, 8 Mar. 2023, https://www.britannica.com/topic/Belvedere-Museum.
- ↑ Christian Huemer; Stella Rollig 편집 (2023). 《The Belvedere: 300 Years a Venue for Art》. Belvedere. 13–14쪽. ISBN 978-3-11-118651-1.
- ↑ Hainisch, E (1955). Zum Baugedanken des Oberen Belvedere-Schlosses. In: Wiener Jahrbuch für Kunstgeschichte 16.
- ↑ Holaus, Bärbel (ed.)/ Hülmbauer, Elisabeth (ed.)/ Wöhrer, Claudia (ed.): Art of the 19th century. Bestandskatalog der Österreichischen Galerie des 19. Jahrhunderts, vol. 3: L-R, ed. by the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1998, p. 198.
- ↑ Was schätzen Sie? | 300 Jahre Belvedere | Gustav Klimt‘s Kuss | Folge 110. https://www.youtube.com/watch?v=6WfYGDx7NnY
- ↑ “Stella Rollig, Belvedere General Director | Belvedere Museum Vienna”.
- ↑ Rollig S & Humer C (2023). The Belvedere: 300 Years a Venue for Art. Vienna: Walter de Gruyter GmbH & Co KG. 398 pages.
- ↑ “CASE STUDIES Egon Schiele, Four Trees/Autumn Allée” (PDF).
- ↑ “Morgenstern_Josef_2020-03-06 BESCHLUSS” (PDF). 《provenienzforschung.gv.at》. 2021년 1월 26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Der Beirat sieht es demnach als erwiesen an, dass sich das Gemälde seit spätestens 1924 und – wie nunmehr durch den ausgewerteten Akt nach dem Kriegs- und Verfolgungssachschädengesetz gesichert ist – bis zumindest nach dem „Anschluss“ 1938 im Eigentum von Dr. Josef Morgenstern befand, und kommt zum Ergebnis, dass der Tatbestand des § 1 Abs. 1 Z 2 Kunstrückgabegesetz erfüllt ist. Dem Bundesminister ist daher die Übereignung des Gemäldes an die Rechtsnachfolgerinnen und Rechtsnachfolger nach Dr. Josef Morgenstern zu empfehlen.
- ↑ “Art Restitution Advisory Council Recommends Restitution of Egon Schiele Painting at the Belvedere” (미국 영어). 《Jewish News From Austria》. 2021년 4월 28일에 확인함.
- ↑ “Munch painting stolen by Nazis is returned to Mahler heir”. 《www.lootedart.com》. 2021년 4월 28일에 확인함.
- ↑ Riding, Alan (2006년 11월 9일). “After 60 Years, Austria Will Return a Munch Work to a Mahler Heir” (미국 영어). 《The New York Times》. ISSN 0362-4331. 2018년 5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4월 28일에 확인함.
The painting, which shows the moon reflecting off a calm sea before a rocky beach and is sometimes referred to as “Seascape With Moon,” has been hanging since 1940 in the Austrian Gallery, known as the Belvedere, in Vienna. The Austrian government had rejected all previous claims to the painting, most recently in 1999, on the ground that the Belvedere had legitimate title to it. Wednesday’s ruling followed a recommendation earlier that day by the country’s Art Restitution Commission, which followed the spirit of a new law adopted in 2001 aimed at easing the way for the return of art unjustly acquired under Nazi rule.
- ↑ Waxman, Sharon (2006년 4월 6일). “A Homecoming, in Los Angeles, for Five Klimts Looted by Nazis” (미국 영어). 《The New York Times》. ISSN 0362-4331. 2016년 8월 1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4월 28일에 확인함.
Mr. Bloch-Bauer hung her portraits and the other Klimts in a special room in his palace as a kind of shrine to his beloved wife. But after Germany annexed Austria in March 1938, he fled without any of his belongings. The new Nazi government levied a bogus tax bill on the industrialist, and confiscated his property, placing threeof the Klimt paintings in the Austrian Gallery, and selling the rest.
- ↑ “Austria to Return Art Stolen by Nazis”. 《www.lootedart.com》. New York Times. 2010년 11월 2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4월 28일에 확인함.
Her husband fled to Switzerland after the Nazis took over Austria. The Nazis then took the paintings and a Belvedere gallery was made the formal owner.
- ↑ “Arbitration panel decides Klimt portrait was not looted by the Nazis”. 《www.lootedart.com》. 2021년 4월 28일에 확인함.
- ↑ “The last prisoners of war: Inside the battle to recover Nazi-stolen artwork” (영어). 《MSNBC.com》. April 2015. 2020년 11월 2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4월 28일에 확인함.
Portrait of Amalie Zuckerkandl by Gustav Klimt. Rather than return this obviously looted painting, an Austrian arbitration panel concluded that it should stay in the Belvedere. The arbitrators said they were not certain exactly how the painting left Ferdinand’s home, and believed (despite a mountain of evidence concerning the Nazi liquidation of Ferdinand’s entire estate) that Ferdinand might have decided to give the painting to Amalie’s family. How this could have been accomplished while Ferdinand was in exile, the arbitrators did not explain.
- ↑ “Bericht” (PDF).
Aus der Österreichischen Galerie Belvedere • Johann Peter Krafft, Männliches Bildnis (auch: Portrait seines Bruders oder Portrait) an die RechtsnachfolgerInnen von Todes wegen nach Max Mandl-Maldenau. Max Mandel-Maldenau musste verfolgungsbedingt im Sommer 1939 seine Kunstsammlung, darunter das gegenständliche Portrait, pauschal an die Salzburger Galerie Welz verkaufen, von welcher die Österreichische Galerie das Portrait noch im selben Jahr erwarb
- ↑ Carroll, Marisa (2012년 5월 24일). “The Painting That Launched a Thousand Lawsuits” (미국 영어). 《Hyperallergic》. 2012년 10월 2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4월 28일에 확인함.
Rudolph Leopold, an Austrian ophthalmologist, had accumulated a staggering number of Schiele pieces in his lifetime — but not always honestly, as the documentary Portrait of Wally forcefully argues. The painting originally belonged to a Viennese art dealer named Lea Bondi, but in 1939 Friedrich Welz, a member of the Nazi Party, confiscated it from her private collection. By mistake, the painting was restituted to the Belvedere Museum in Austria after World War II as part of another dealer’s collection. In 1954, Bondi asked Leopold, a known Schiele collector, to help her track down the painting. Instead, he bartered with the museum for it and made it his own.
- ↑ “Belvedere muss Bild an Liebermann-Erben restituieren – Belvedere must restitute a painting to the Liebermann heirs”. 《www.lootedart.com》. Der Standard. 2021년 4월 28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편집]-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 - 공식 웹사이트 (독일어/영어)
- 구글 아트 앤드 컬처가 제공하는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 가상 투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