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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 원자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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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톰슨이 상상했던 오각형 쌍뿔 구조로 배열된 7개의 전자를 가진 원자

톰슨 원자 모형, 플럼 푸딩 모형(plum pudding model) 또는 푸딩 모형(pudding model)은 폐기된 원자의 과학적 모형이다. 이 모형은 1897년 전자를 발견한 조지프 존 톰슨이 1904년에 처음 제안했으며, 1911년 어니스트 러더퍼드원자핵을 발견하면서 폐기되었다. 이 모형은 당시 알려진 원자의 두 가지 속성, 즉 전자가 존재한다는 것과 원자가 순 전하를 띠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려 했다. 논리적으로 전자의 음전하를 상쇄할 만큼의 양전하가 존재해야 했다. 톰슨은 이 양전하의 근원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원자 전체에 분포되어 있으며 원자가 구형이라고 잠정적으로 제안했다. 이는 사용 가능한 증거, 또는 증거 부족에 가장 적합한 수학적으로 가장 단순한 가설이었다. 이러한 구 안에서 음전하를 띤 전자들은 서로 반발하면서 동시에 양전하를 띤 구의 중심에 끌려 원자 전체에 다소 고르게 분포될 것이다.[1]

톰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형은 방출 스펙트럼원자가를 설명할 수 없었다. 금박 실험에서 알파 입자 산란에 대한 실험적 연구를 바탕으로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양전하가 밀집된 핵을 특징으로 하는 대안적인 원자 모형을 개발했다.

톰슨의 모형은 전자들이 크리스마스 푸딩에 건포도가 박혀 있듯이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개념으로 "푸딩 모형"이라고 흔히 불린다. 톰슨이나 그의 동료들은 이 비유를 사용한 적이 없다.[2] 이 비유는 대중 과학 작가들이 일반인들이 모형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 비유는 톰슨이 양전하를 띤 구를 고체라기보다는 액체에 비유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는 전자가 그 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3]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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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의 모형은 원자의 내부 구조를 설명한 최초의 원자 모형이었다. 이전에는 원자가 화학 원소가 결합하는 기본적인 무게 단위였으며, 그 유일한 속성은 원자가와 수소에 대한 상대적 무게였다. 이 모형에는 전하, 자기 모멘트, 부피 또는 절대 질량과 같이 물리학자들과 관련된 속성이 없었으며, 이 때문에 일부 물리학자들은 원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의심했다.

톰슨은 원자 내 전자의 양, 배열 및 운동이 방출 스펙트럼, 원자가, 반응성 및 이온화와 같은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가설을 세웠다. 그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었지만, 그의 접근 방식은 고전역학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양자화된 에너지를 통합할 통찰력이 없었다.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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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내내 화학 및 통계역학의 증거가 축적되어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원자의 구조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세기말에는 제1대 켈빈 남작 윌리엄 톰슨이 1867년에 제안한 원자의 소용돌이 이론이 주요 모형이었다.[4]:175[5] 1890년까지 J.J. 톰슨은 "성운 원자" 가설이라고 불리는 자신만의 버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가설에 따르면 원자는 비물질적인 소용돌이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용돌이의 배열과 화학 원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주기적인 규칙성 사이에 유사성을 제시했다.[6]

톰슨이 1897년에 전자를 발견하면서 그의 견해가 바뀌었다. 톰슨은 이들을 "코퍼스클(corpuscles)"(입자)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1891년에 G. J. 스토니가 "전기의 기본 단위량"을 위해 만들어낸 이름인 "전자"로 더 일반적으로 불렸다.[7] 그러나 1899년 후반까지도 아원자 입자를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었다.[8]:I:365

19세기에 또 다른 중요한 과학적 주제는 방사능의 발견과 연구였다. 톰슨은 음극선을 연구하여 전자를 발견했고, 1900년 앙리 베크렐은 우라늄에서 나오는 방사선, 현재 베타 입자라고 불리는 것이 음극선과 동일한 전하/질량 비를 가진다는 것을 밝혀냈다.[8]:II:3 이 베타 입자들은 고속으로 이동하는 전자라고 여겨졌다. 이 입자들은 톰슨이 원자 이론의 증거를 찾기 위해 원자를 탐색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원자 모형 시대에 중요한 다른 형태의 방사선은 알파 입자였다. 베타 입자보다 무겁고 느린 이들은 러더퍼드가 톰슨 모형에 반하는 증거를 찾는 데 사용된 핵심 도구였다.

새롭게 등장하는 원자론, 전자, 방사선 외에도 역사상 마지막 요소는 19세기 후반에 발표된 원자 스펙트럼에 대한 수많은 연구였다. 소용돌이 모형의 매력 중 하나는 전자기 복사에 대한 진동 반응으로서 스펙트럼 데이터를 설명하는 데 가능한 역할이었다.[4]:177 톰슨의 모형도, 그 후속인 러더퍼드의 모형도 원자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는 닐스 보어가 최초의 양자 기반 원자 모형을 만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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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의 모형은 원자에 특정한 내부 구조를 부여한 최초의 모형이었다.[9]:9 비록 그의 초기 설명에는 수학 공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2] 1897년부터 1913년까지 톰슨은 원자에 대한 일련의 점점 더 상세한 다전자 모형을 제안했다.[4]:178 그의 첫 버전들은 1906년 논문과 후속 요약에서 정성적인 내용을 정점으로 삼았다. 톰슨의 모형은 초기 발표 과정에서 변화하여, 정적인 구조라기보다는 양전하의 밀집된 장에서 전자가 회전하는 훨씬 더 이동성이 있는 모형이 되었다. 톰슨은 여러 원소에 대해 실험적으로 알려진 주요 스펙트럼선 중 일부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모형을 재구성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10]

1897년 원자 내부의 미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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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극선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11] 톰슨은 음극선이 빛이 아니라 자신이 코퍼스클이라고 부르는 음전하를 띤 입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음극선이 전기장과 자기장에 의해 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관찰했는데, 이는 빛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었다. 이 긴 논문의 끝 부분 몇 단락에서 톰슨은 원자가 이 코퍼스클로 구성될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며 이를 원초 원자라고 불렀다. 톰슨은 음극 주변의 강한 전기장이 주변 기체 분자를 구성 코퍼스클로 분리시켜 음극선을 생성한다고 믿었다. 톰슨은 이로써 원자가 분할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지만, 이 시점에서 그 구조를 설명하려 시도하지는 않았다.

톰슨은 원자가 분할될 수 있다고 제안한 최초의 과학자가 아니라는 점을 언급하며, 1815년에 여러 원소의 원자량이 수소 원자량의 배수임을 발견하고 모든 원자가 수소 원자가 융합되어 만들어졌다고 가설을 세운 윌리엄 프라우트를 언급했다.[9] 프라우트의 가설은 1830년대에 일부 원소가 정수가 아닌 원자량을 가지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화학자들에게 기각되었다. 예를 들어, 염소는 약 35.45의 원자량을 가진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과학자들의 흥미를 계속 끌었다. 이러한 불일치는 1912년 동위 원소의 발견으로 결국 설명되었다.

톰슨의 논문이 발표된 지 몇 달 후, 조지 프랜시스 피츠제럴드는 톰슨이 음극선에서 확인하고 원자의 일부로 제안한 코퍼스클이 물리학자 조지프 라모어헨드릭 로런츠가 설명한 "자유 전자"라고 제안했다. 톰슨은 이 용어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이 연결은 다른 과학자들에게 음극선이 입자라는 것을 확신시켰고, 이는 아원자 입자를 기반으로 한 원자 모형의 궁극적인 수용에 중요한 단계였다.[12]

1899년 톰슨은 금속에 자외선이 닿았을 때 생성되는 음전기(현재 광전 효과로 알려짐)가 음극선과 동일한 질량 대 전하 비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논문에서 자신의 원자 모형을 다시 강조했다. 그런 다음 그는 이전에 이온의 전하를 결정하는 데 사용했던 방법을 자외선으로 생성된 음전하 입자에 적용했다.[4]:86 그는 전자의 질량이 수소 이온의 0.0014배(분수로 1/714)라고 추정했다.[13] 이 논문의 결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9]

나는 원자가 수많은 작은 몸체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이것들을 코퍼스클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코퍼스클들은 서로 같으며, 코퍼스클의 질량은 저압 기체 속 음이온의 질량, 즉 약 3 × 10−26 그램이다. 정상 원자에서, 이 코퍼스클들의 집합은 전기적으로 중성인 시스템을 형성한다. 음전하 효과는 코퍼스클들이 퍼져 있는 공간이 코퍼스클의 음전하 총합과 같은 양전하를 띠는 것처럼 작용하게 하는 어떤 것에 의해 상쇄된다.

1904년 원자의 역학적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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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은 1904년 논문 <원자의 구조에 대하여>에서 원자에 대한 첫 상세한 설명을 제공했다.[14] 톰슨은 자신의 모형에 대한 짧은 설명으로 시작한다.

... 원소의 원자는 균일한 양전기의 구 안에 갇힌 다수의 음전하를 띤 미립자로 구성된다 ...[14]

주로 전자에 초점을 맞춘 톰슨은 1년 전 켈빈의 원자 모형에서 제안된 양전하 구를 채택했다.[10][15] 그는 이어서 그러한 시스템에 대한 상세한 역학적 분석을 수행하며, 전자들을 원형 고리 주위에 균일하게 분포시켰다. 양전하의 인력은 전자들의 상호 반발력에 의해 균형을 이룬다. 그의 분석은 안정성에 초점을 맞추며, 위치의 작은 변화가 복원력에 의해 상쇄되는 경우를 찾았다.

안정성에 대한 그의 많은 공식들을 논의한 후, 그는 안정적인 구성의 다양한 동심원 고리에 있는 전자들의 수에서 나타나는 패턴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톰슨은 이러한 규칙적인 패턴들이 주기율표의 구조 뒤에 있는 화학의 주기율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아원자 입자에 기반한 모형이 화학적 경향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이 개념은 톰슨의 모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톰슨의 전자 배치 세부 사항이 부정확한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16]:135

톰슨은 이 시점에서 원자의 모든 질량이 전자에 의해 운반된다고 믿었다.[17] 이는 작은 원자조차도 수천 개의 전자를 포함해야 하며, 그들을 감싸는 양전하에는 질량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18]

1905년 전자 배열에 대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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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J. 톰슨이 1905년에 그린, 1개에서 8개까지의 전자를 가진 원자 내 가상 전자 배열을 보여주는 그림.
전자 배열을 탐색하기 위한 메이어의 실제 실험에 대한 톰슨의 다이어그램.

1905년 영국 왕립 연구소에서 행한 강연에서[19] 톰슨은 양전하 구 내부의 수많은 전자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실용적인 실험을 제안했다. 이 실험은 자화된 핀을 코르크 원반에 박고 물이 담긴 대야에 띄우는 것이었다. 핀들은 서로 반발하도록 배열되었다. 대야 중심 위에는 핀들을 끌어당기는 전자석이 매달려 있었다. 핀들이 취한 평형 배열은 톰슨에게 원자 내 전자들이 어떤 배열을 취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예를 들어, 그는 다섯 개의 핀은 중심 주위에 안정적인 오각형을 형성하지만, 여섯 개의 핀은 안정적인 육각형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관찰했다. 대신, 한 핀이 중심으로 이동하고 나머지 다섯 개의 핀이 중심 핀 주위에 오각형을 형성했으며, 이 배열이 안정적이었다. 핀을 더 추가할수록, 그들은 중심 주위에 동심원 고리를 형성했다.

이 실험은 3차원 대신 2차원에서 작동했지만, 톰슨은 원자 내 전자들이 동심원 껍질에 배열되며, 이 껍질 내에서 움직일 수 있지만, 원자에 전자가 추가되거나 제거될 때를 제외하고는 한 껍질에서 다른 껍질로 이동하지 않는다고 추론했다.

1906년 원자당 전자의 수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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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전 톰슨은 원자량이 전자의 질량(그는 계속해서 "코퍼스클"이라고 불렀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신의 전자 질량 추정치에 따르면, 원자의 질량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원자에 수만 개의 전자가 필요할 것이었다. 1906년 그는 X선 산란, 베타선 흡수, 또는 기체의 광학적 특성이라는 세 가지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코퍼스클의 수가 원자량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추정했다.[20][21]:{{{1}}} 이는 전자의 수를 수십 개 또는 많아야 수백 개로 줄였고, 이는 다시 톰슨 모형의 양전하 구가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이것은 톰슨의 1904년 기계적 안정성 연구와 주기율표와의 비교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4]:186 또한, 러더퍼드의 원자 이론에 대한 다음 진전에 매우 중요한 알파 입자는 더 이상 수천 개의 전자를 포함하는 원자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었다.[21]:269

1907년 톰슨은 <물질의 미립자 이론>을 발표하여[22] 원자 구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고 추가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

6장에서는 물 속에서 자화된 핀을 사용한 자신의 실험을 더욱 상세히 설명하며 확장된 표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59개의 핀이 물웅덩이에 놓이면, 그들은 20-16-13-8-2 순서(가장 바깥쪽에서 가장 안쪽으로)의 동심원 고리에 배열될 것이다.

7장에서 톰슨은 원자 내 전자의 수에 대한 1906년 결과를 요약했다.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수정을 포함했는데, 베타 입자 분석을 아우구스트 베커의 음극선 실험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대체하여 문제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과 더 잘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다.[21]:273 이 분야의 다른 과학자들의 실험은 원자가 톰슨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수의 전자를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톰슨은 이제 원자 내 전자의 수가 원자량의 작은 배수라고 믿었다. 즉, "어떤 원소의 원자 내 미립자의 수는 원소의 원자량에 비례하며, 원자량의 배수이지만 큰 배수는 아니다."[23] 이것은 원자 질량의 거의 대부분이 양전하 구(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에 의해 운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톰슨은 이 책에서 수소 원자가 전자보다 1,700배 무겁다고 추정했다(현재 측정치는 1,837배이다).[24] 톰슨은 아직 수소 이온보다 작은 양전하 입자를 발견한 과학자가 없다고 언급했다.[25] 그는 또한 원자의 양전하가 전자의 음전하와 동일한 기본 양전하 단위의 배수라고 썼다.[26] 톰슨은 기본 양전하 단위가 수소 이온의 질량과 같다는 결론으로 성급하게 점프하기를 거부하며, 과학자들이 먼저 원자가 몇 개의 전자를 포함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27] 그가 아는 한, 수소 이온은 여전히 몇 개의 전자, 아마도 두 개의 전자와 세 개의 양전하 단위를 포함할 수 있었다.

1910년 다중 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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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톰슨이 겪었던 베타 산란의 어려움은 그가 이 주제에 다시 관심을 갖게 했다. 그는 J. 아널드 크라우더에게 얇은 박막을 통한 베타 산란 실험을 권장했고,[28] 1910년 톰슨은 베타 산란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발표했다.[29] 이 논문의 두 가지 혁신은 원자의 양전하 구로부터의 산란 도입과 다중 또는 복합 산란이 최종 결과에 중요했다는 분석이었다.[21]:273 이 이론과 크라우더의 실험 결과는 러더퍼드의 이론과 가이거와 마즈든의 알파 입자 새 실험에 의해 맞서게 될 것이었다.

톰슨의 1910년 논문에서 또 다른 혁신은 그가 원자의 양전하가 동일하지만 임의의 크기를 가진 이산적인 단위로 존재하며, 원자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고 빈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각 단위가 전자의 음전하와 동일한 양전하를 가질 때 원자가 들어오는 베타 입자를 어떻게 편향시킬 수 있는지 모형화했다는 것이다.[30] 따라서 톰슨은 양성자의 존재를 추론하는 데 근접했는데, 이는 러더퍼드가 결국 해낸 일이다.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에서는 양성자가 매우 작은 핵에 밀집되어 있지만, 톰슨의 대안 모형에서는 양전하 단위가 원자 전체에 퍼져 있었다.

톰슨의 1910년 베타 산란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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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은 1910년 논문 "빠르게 움직이는 대전 입자의 산란에 대하여"에서 베타 입자가 원자와 충돌할 때 어떻게 산란되는지를 모형화하는 방정식을 제시했다.[31][21]:277 그의 연구는 제임스 크라우더의 베타 산란 연구를 기반으로 했다.

양전하 구에 의한 부분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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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은 일반적으로 원자 내 양전하가 그 부피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되어 전자를 감싸고 있다고 가정했다. 1910년 논문에서 톰슨은 이 양전하 구의 효과를 분리한 다음 방정식을 제시했다.[31][21]:278

여기서 k는 쿨롱 상수, qe는 베타 입자의 전하, qg는 양전하 구의 전하, m은 베타 입자의 질량, R은 구의 반지름이다. 원자는 베타 입자보다 수천 배 무겁기 때문에 반동에 대한 보정은 필요 없다.

톰슨은 이 방정식이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았지만, 역사가 존 헤일브론은 그가 "직선" 근사라고 부르는 교육적 추측을 제시했다.[32] 중심으로부터 측면 거리 b만큼 떨어진 초기 궤적으로 양전하 구를 통과하는 베타 입자를 고려하자. 경로는 매우 작은 편향을 가지므로 여기서는 직선으로 취급된다.

도면은 축척에 맞지 않는다. 베타 입자의 편향은 실제로 매우 작아서, 경로는 거의 직선이다.

균일하게 분포된 양전하 구 내부에서 구를 통과하는 경로의 어느 지점에서든 베타 입자에 가해지는 힘은 반지름 r을 따라 다음과 같은 크기를 가질 것이다.[33][34]:106

궤적에 수직이며 입자의 경로를 편향시키는 힘의 성분은 다음과 같다.

결과적인 운동량의 측면 변화 py는 다음과 같다.

결과적인 각 편향 는 다음과 같이 주어진다.

여기서 px는 들어오는 운동량과 같다고 간주되는 평균 수평 운동량이다. 편향이 매우 작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와 같게 취급할 수 있다.

평균 편향 각도 를 찾기 위해, 각 b 값에 대한 각도와 해당 L이 구의 면을 따라 합산된 다음, 단면적으로 나뉜다. 피타고라스 정리에 따라 이다.[21]:278

이는 톰슨의 1910년 논문의 공식과 일치한다.

전자에 의한 부분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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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은 베타 입자와 원자의 전자 사이의 충돌을 모형화하기 위해 한 번의 충돌에 의한 편향을 계산한 다음, 입자가 원자를 가로지르는 동안의 충돌 횟수에 대한 인수를 곱했다.

베타 입자의 경로에서 임의의 거리 s 이내에 있는 전자의 평균 거리는 s/2이다. 따라서 전자당 평균 편향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qe기본 전하, k는 쿨롱 상수, m과 v는 베타 입자의 질량과 속도이다.

충돌 횟수에 대한 인수는 경로를 따라 가능한 전자 수의 제곱근으로 알려져 있었다. 전자의 수는 입자 경로를 따라 전자의 밀도에 경로 길이 L을 곱한 값에 따라 달라진다. 베타 입자 경로 주변의 이 임의의 효과 실린더 내의 모든 전자에 의해 발생하는 순 편향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N0은 단위 부피당 전자 수이고 은 이 실린더의 부피이다.

톰슨은 편향이 매우 작을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에 L을 직선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b가 중심으로부터의 의 거리일 때 이다. 의 평균은 다음 적분으로 주어진다.

이제 방정식에서 을 대체하여 평균 편향 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N은 원자 내 전자 수이며, 와 같다.

이산 단위의 양전하에 의한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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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은 1910년 논문에서 원자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된, 빈 공간으로 분리된 이산적인 단위로 양전하가 존재하는 대안적인 모형을 제안했다.

이 개념에서 베타 입자의 평균 산란 각도는 다음으로 주어진다.

여기서 σ는 양전하가 차지하는 부피와 전체 원자 부피의 비율이다. 톰슨은 이 방정식을 어떻게 얻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순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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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전하와 전자가 베타 입자의 경로에 미치는 결합된 효과를 찾기 위해, 톰슨은 다음 방정식을 제공했다.

푸딩 모형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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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입자 산란실험의 결과와 원자론에 대한 시사점
왼쪽: 톰슨의 모형이 정확했다면, 모든 알파 입자는 최소한의 산란으로 박막을 통과했을 것이다.
오른쪽: 가이거와 마즈든이 관찰한 것은 알파 입자의 작은 부분이 강한 편향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톰슨은 베타 입자 산란을 통해 원자의 구조를 탐색했지만, 그의 전 학생인 어니스트 러더퍼드알파 입자 산란에 관심이 있었다. 베타 입자는 방사성 붕괴로 방출되는 전자이고, 알파 입자는 기본적으로 붕괴 과정에서 방출되는 헬륨 원자이다. 알파 입자는 베타 입자보다 훨씬 더 많은 운동량을 가지고 있으며, 러더퍼드는 물질이 톰슨의 푸딩 모형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알파 입자를 산란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1908년에서 1913년 사이에 어니스트 러더퍼드, 한스 가이거, 어니스트 마즈든은 얇은 금속박에 알파 입자 빔을 쏘고 입자의 강도 대 산란 각도를 측정하는 일련의 실험에 협력했다. 그들은 금속박이 알파 입자를 90° 이상 산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35]:4 이는 톰슨 모형에 따르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큰 각도로의 산란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았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타 입자가 90° 이상 산란될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작으며, 알파 입자는 일반적으로 베타 입자보다 훨씬 더 많은 운동량을 가지므로 그 편향은 훨씬 더 작았어야 한다.[36] 톰슨 모형은 그러한 큰 편향을 일으킬 만큼 충분히 강한 정전기력을 생성할 수 없었다. 톰슨 모형의 전하들은 너무 확산되어 있었다. 이는 러더퍼드가 원자의 양전하가 미세한 핵에 집중되어 있는 새로운 모형을 위해 톰슨 모형을 폐기하게 만들었다.

러더퍼드는 더 설득력 있는 발견들을 계속했다. 톰슨의 모형에서 양전하 구는 단지 추상적인 구성 요소였지만, 러더퍼드는 양전하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양성자"라고 명명한 입자들이었다. 톰슨은 전자 수가 대략 원자량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지만, 러더퍼드는 (중성 원자에서) 그것이 원자 번호와 정확히 같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톰슨은 원자 내 전자의 배열이 화학 원소의 스펙트럼선을 결정한다고 가설을 세웠다. 그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었지만, 그것은 원자가 양전하 구 내에서 어떻게 순환하는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과학자들은 결국 그것이 전자가 에너지를 이산적인 양으로 흡수하고 방출하며, 방출 및 흡수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에너지 준위를 통해 이동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톰슨은 당시 매우 새로운 물리학 분야였던 양자 역학을 자신의 원자 모형에 통합하지 않았다. 닐스 보어에르빈 슈뢰딩거는 나중에 양자 역학을 원자 모형에 통합했다.

러더퍼드의 핵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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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더퍼드의 1911년 알파 입자 산란에 대한 논문은 톰슨의 산란 모형이 큰 각도 산란을 설명할 수 없었으며, 데이터 설명을 위해 다중 산란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논문 발표 직후 몇 년 동안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4] 산란 모형의 예측은 톰슨의 푸딩 모형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로 간주되지 않았다. 톰슨과 러더퍼드는 산란을 원자를 탐색하는 기술로 개척했지만, 그 신뢰성과 가치는 입증되지 않았다. 러더퍼드의 논문 이전에는 알파 입자가 압축된 질량이 아니라 원자로 간주되었다. 왜 그것이 좋은 탐침이 되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또한 러더퍼드의 논문은 화학이나 원자 분광학과 같은 실제 문제에 필수적인 원자 전자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21]:300 러더퍼드의 핵 모형은 닐스 보어의 연구 이후에야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수학적 톰슨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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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톰슨 문제는 구 표면에 동일한 점전하를 최적으로 분포시키는 방법을 찾는다. 원래 톰슨 원자 모형과 달리, 이 순수하게 수학적인 모형의 구는 전하를 띠지 않으며, 이로 인해 모든 점전하가 상호 반발력에 의해 구 표면으로 이동한다. 양전하 구 내부에 전자가 어떻게 배열되는지에 대한 톰슨의 원래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해법은 여전히 없다.[37][38]

별명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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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의 원자 모형에 대한 그가 선호하지 않았던 비유인 크리스마스 푸딩

톰슨의 모형을 크리스마스 푸딩에 비유한 최초의 작가는 1906년 8월 영국 제약 잡지 더 케미스트 앤 드러기스트(The Chemist and Druggist)의 기사에 실린 익명의 기자였다.

음전하가 극히 작은 코퍼스클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양전하(positive electricity)는 상당한 부피에 분포되어 있다. 따라서 원자는 마치 인색한 푸딩에 건포도가 박혀 있는 것처럼, 음전하를 띤 미세한 점들인 코퍼스클들이 양전하 구 안에서 헤엄치는 형태로 구성되며, 음전하 단위는 중심을 향해 끌리면서 동시에 서로 반발한다.[39]

이 비유는 톰슨이나 그의 동료들이 사용한 적이 없다. 이 비유는 대중 과학 작가들이 일반인들이 이 모형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2]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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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omson 1907, 103쪽 "원자 안에 양전기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여, 우리는 양전기가 수학적 계산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분포하는 경우, 즉 균일한 밀도의 구로 존재하고 그 안에 미립자들이 분포되어 있는 경우를 고려할 것이다."
  2. Giora Hon; Bernard R. Goldstein (2013년 9월 6일). 《J. J. Thomson's plum-pudding atomic model: The making of a scientific myth》. 《Annalen der Physik》 525. A129–A133쪽. Bibcode:2013AnP...525A.129H. doi:10.1002/andp.201300732. 
  3. 1904년 4월 11일자 J. J. 톰슨이 올리버 로지에게 보낸 편지, Davis & Falconer 1997, 153쪽에서 인용:
    "양전기에 관해서는 일정한 응집력을 가진 액체에 대한 조악한 비유를 사용해 왔습니다. 이 응집력은 자체 반발력으로 인해 흩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양전기의 물리적 개념을 배경에 두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항상 양전기를 독립적인 개체 없이 설명하고, 그것을 미립자의 어떤 속성으로 대체할 수 있기를 희망해 왔기 때문입니다(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4. Pais, Abraham (2002). 《Inward bound: of matter and forces in the physical world》 Reprint판. Oxford: Clarendon Press [u.a.] ISBN 978-0-19-851997-3. 
  5. Thomson, William (1869). 《On Vortex Atom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of Edinburgh6. 94–105쪽. doi:10.1017/S0370164600045430. 
  6. Kragh, Helge (2002). 《Quantum Generations: A History of Physics in the Twentieth Century》 Reprint판.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 43–45쪽. ISBN 978-0691095523. 
  7. O'Hara, J. G. (March 1975). 《George Johnstone Stoney, F.R.S., and the Concept of the Electron》. 《Notes and Record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29. 265–276쪽. doi:10.1098/rsnr.1975.0018. JSTOR 531468. S2CID 145353314. 
  8. Whittaker, E. T. (1989). 《A history of the theories of aether & electricity》. New York: Dover Publications. ISBN 978-0-486-26126-3. 
  9. Helge Kragh (Oct. 2010). Before Bohr: Theories of atomic structure 1850-1913. RePoSS: Research Publications on Science Studies 10. Aarhus: Centre for Science Studies, University of Aarhus.
  10. Fowler, Michael. “Models of the Atom”. 《University of Virginia》. 
  11. Thomson 1897.
  12. Falconer, Isobel (July 1987). 《Corpuscles, Electrons and Cathode Rays: J.J. Thomson and the 'Discovery of the Electron' (영어). 《The British Journal for the History of Science》 20. 241–276쪽. doi:10.1017/S0007087400023955. ISSN 0007-0874. 
  13. J. J. Thomson (1899). 《On the Masses of the Ions in Gases at Low Pressures.》. 《Philosophical Magazine》. 5 48. 547–567쪽. 
    "...이 음전하의 크기는 약 6 × 10−10 정전기 단위이며, 용액의 전기분해에서 수소 원자가 운반하는 양전하와 같다. [...] 저압 기체에서는 이 음전하 단위가 항상 특정 질량의 운반체와 결합되어 있다. 이 질량은 매우 작아, 수소 이온 질량의 약 1.4 × 10−3에 불과하며, 지금까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질량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음전기 생성은 원자의 분해를 포함하며, 원자 집합에서 단일 원자보다 질량이 적은 어떤 것이 분리된다."
  14. Thomson 1904.
  15. Kumar, Manjit (2008). 《Quantum Einstein, Bohr and the Great Debate》. W. W. Norton. ISBN 978-0393339888. 
  16. Kragh, Helge (2001). 《The first subatomic explanations of the periodic system》. 《Foundations of Chemistry》 3. 129–143쪽. doi:10.1023/A:1011448410646. 
  17. Thomson 1904: "우리는 원자의 질량이 그것이 포함하는 코퍼스클 질량의 합이라고 가정하므로, 원소의 원자량은 그 원자 내 코퍼스클의 수로 측정된다."
  18. Baily, C. (January 2013). 《Early atomic models – from mechanical to quantum (1904–1913)》 (영어). 《The European Physical Journal H》 38. 1–38쪽. arXiv:1208.5262. Bibcode:2013EPJH...38....1B. doi:10.1140/epjh/e2012-30009-7. ISSN 2102-6459. 
  19. Thomson, J. J. (1905년 3월 10일), 《The Structure of the Atom》 (PDF) . Reprinted in Davis & Falconer 1997
  20. Thomson, J.J. (June 1906). 《LXX. On the number of corpuscles in an atom》 (영어). 《The London, Edinburgh, and Dublin Philosophical Magazine and Journal of Science》 11. 769–781쪽. doi:10.1080/14786440609463496. ISSN 1941-5982. 
  21. 존 헤일브론 (1968). 《The Scattering of α and β Particles and Rutherford's Atom》. 《Archive for History of Exact Sciences》 4. 247–307쪽. doi:10.1007/BF00411591. ISSN 0003-9519. JSTOR 41133273. 
  22. Thomson 1907.
  23. Thomson 1907, 27쪽
  24. Thomson 1907, 162쪽: "미립자의 질량이 수소 원자 질량의 약 1,700분의 1에 불과하므로, 수소 원자 내에 미립자가 소수만 존재한다면 원자 질량은 주로 다른 구성 요소인 양전하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다."
  25. Thomson 1907, 23, 26쪽.
  26. J. J. Thomson (1907). The Corpuscular Theory of Matter. p. 26-27: "대전되지 않은 원자에는 음전하 단위만큼의 양전하 단위가 존재한다; 양전하 단위 하나를 가진 원자는 하나의 미립자를 잃은 중성 원자이고, 음전하 단위 하나를 가진 원자는 추가적인 미립자가 부착된 중성 원자이다."
  27. Thomson (1907), p. 27: "수소 원자보다 질량이 적은 양전하를 띤 물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로부터 양전기 단위 전하의 질량이 수소 원자의 질량과 같다고 추가 조사 없이 추론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하계에 대해 아는 것은 양전기가 음전기보다 한 단위 초과한다는 것뿐이며, n개의 양전기와 (n-1)개의 미립자를 포함하는 어떤 시스템이든 n의 값에 관계없이 이 조건을 충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전기 단위의 질량에 대해 어떤 결론을 도출하기 전에 우리는 시스템 내 미립자의 수에 대해 알아야 한다."
  28. Crowther, J. A. (1910년 9월 15일). 《On the scattering of Homogeneous β-Rays and the number of Electrons in the Atom》 (영어).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Series A, Containing Papers of a Mathematical and Physical Character》 84. 226–247쪽. Bibcode:1910RSPSA..84..226C. doi:10.1098/rspa.1910.0074. ISSN 0950-1207. 
  29. Thomson, Joseph J. "On the scattering of rapidly moving electrified particles". Cambridge Philosophical Society, 1910.
  30. Thomson (1910): " (2)로 인한 편향의 양은 양전기가 원자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지, 아니면 각각 코퍼스클이 차지하는 부피보다 훨씬 큰 유한한 부피를 차지하는 동일한 단위로 나뉘어 있다고 가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31. J. J. Thomson (1910). 《On the Scattering of rapidly moving Electrified Particles》. 《Proceedings of the Cambridge Philosophical Society》 15. 465–471쪽. 
  32. Heilbron (1968). p. 278
  33. “Electric Field, Spherical Geometry”. 
  34. Beiser (1969). Perspectives of Modern Physics, p. 109
  35. Belyaev, Alexander; Ross, Douglas (2021). 《The Basics of Nuclear and Particle Physics》 (영어). Undergraduate Texts in Physics.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Bibcode:2021bnpp.book.....B. doi:10.1007/978-3-030-80116-8. ISBN 978-3-030-80115-1. 
  36. Rutherford (1911): "이 산란은 α 입자보다 β 입자에서 훨씬 더 두드러지는데, 이는 후자의 입자가 훨씬 더 작은 운동량과 에너지를 갖기 때문이다."
  37. Levin, Y.; Arenzon, J. J. (2003). 《Why charges go to the Surface: A generalized Thomson Problem》. 《Europhys. Lett.》 63. 415–418쪽. arXiv:cond-mat/0302524. Bibcode:2003EL.....63..415L. doi:10.1209/epl/i2003-00546-1. S2CID 250764497. 
  38. Roth, J. (2007년 10월 24일). 《Description of a highly symmetric polytope observed in Thomson's problem of charges on a hypersphere》 (영어). 《Physical Review E》 76. Bibcode:2007PhRvE..76d7702R. doi:10.1103/PhysRevE.76.047702. ISSN 1539-3755. PMID 17995142. Although Thomson's model has been outdated for a long time by quantum mechanics, his problem of placing charges on a sphere is still noteworthy. 
  39. 《What is Matter?》. 《The Chemist and Druggist》 69. 1906년 8월 25일. 329–330쪽.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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