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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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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 康, 强, 江, 剛)씨는 중국과 한국의 성씨이다.

성 강 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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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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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姜, 중국병음 jiāng, / 영어 Kang, Gang, / 일본어 カン, かん, Kyo)씨는 인구 600만명으로 중국 성씨 인구 순위 51위이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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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姜)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321,575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6위이다. 본관은 문헌상으로 114본이 전하나, 현존하는 본관은 진주, 등 단본이며, 이 중에서 시조가 기록되어 있는 본관은 진주(晋州), 금천(衿川), 2본이다.

진주 강씨(晋州 姜氏)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한다. 시조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 병마도원수이다. 강이식은 중국 수나라때 중국 천수강씨의 지파인 광동강씨(廣東姜氏)의 일족이다. 597년(고구려 영양왕 8년)에 수 문제가 무례한 국서를 보내오자 영양왕은 군신을 모아 놓고 이에 회답할 것을 논의할 때 강이식은 "이와 같은 무례한 글은 붓으로 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양왕이 이에 수긍하고 싸울 것을 명하자 군사 정병 5만을 이끌고 임유관(臨楡關)에서 수나라 군사 30만을 단번에 격퇴하고, 603년에 수 양제가 군사 100만으로 다시 침략할 때 중신회의에서 강화할 것을 논의했으나 이에 반대하고 싸울 것을 주장하여 을지문덕과 함께 요동성 살수(청천강) 등의 싸움에서 수군을 대파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현재 중국 만주 심양현 원수림 역앞에 강이식 장군의 묘비가 있다. 강이식의 후손 중에 신라 헌강왕 때 판내이령 강진(姜縉)이 진양후에 봉해지며 본관을 진주(晋州)로 하였다고 한다. 진주 강씨(晋州 姜氏)의 파는 박사공파, 인헌공파, 은열공파, 관서공파, 소감공파가 있다. 박사공파는 강사첨의 자녀에 따라 통정공파와 통계공파로 나뉜다.

금천 강씨(衿川 姜氏)의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본관으로 성씨이다. 시조이자 강이식 대장군의 후손 강여청(姜餘淸)의 5대손인 강궁진(姜弓珍)은 금천(衿川)의 호족으로서 고려 통일에 협력한 공으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랐다. 강궁진의 아들인 강감찬(姜邯贊)이 983년(고려 성종 3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요나라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1030년(현종 21)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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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姜(京), きょう, Kyo)씨는 일본에도 존재하며, '쿄'로 발음한다. 이들은 대략적으로 두 부류 중 하나인데, 하나는 중국 춘추시기 제나라 왕족이었던 강씨들이 일본으로 대거 이주하여 정착한 케이스이고 나머지 하나는 재일교포 출신들이다.

편안할 강 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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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康)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1,625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56위이다. 본관은 신천(信川), 곡산(谷山), 재령(載寧),등 3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에 전하나 현존하는 3본이 대종을 이룬다. 평안남도, 평안북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 신천 강씨(信川 康氏)의 비조 강후(康候)는 중국 주나라 무왕의 아우 강숙(康叔)의 둘째 아들로서 기원전 198년에 고조선 평양에 들어와 왕실을 교화한 공으로 기자로부터 강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강후(康侯)의 67세손 고구려 유민 출신인 성골장군(聖骨將軍) 강호경(康虎景)을 시조로 하고 있다. 중시조 강지연(康之淵)은 강호경의 14세손으로 고려 고종 때 호성공신에 오르고 신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신천 강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5명을 배출하였다. 2015년 인구는 52,945명이다.
    • 곡산 강씨(谷山 康氏)의 시조 강서(康庶)는 신천 강씨의 중시조인 강지연(康之淵)의 6세손으로 상산백(象山伯)에 봉해졌다. 2015년 인구는 29,107명이다.
    • 재령 강씨(載寧 康氏)의 시조 강득룡(康得龍)은 신천강씨의 중시조인 강지연(康之淵)의 8세손으로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는 그의 친누이동생이다. 강득룡은 고려 공민왕 때 삼사우사(三司右使)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결심, 관악산에 들어가 암자에 살면서 매일같이 산에 올라 개성을 향해 통곡하였는데, 이곳이 연주대(戀主臺)와 연주암으로 전해지고 있다. 태조는 그를 안릉부원군(安陵府院君)에 봉하여 안정공(安靖公)이란 시호를 내렸고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재령으로 하였다. 2015년 3,401명이다.
  • 영강 강씨(永康 康氏) 시조 강증(康拯)은 고려 예종 때 병마판관(兵馬判官)을 지냈는데 여진정벌(女眞征伐)에 공이 있어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강할 강 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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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強)씨는 강씨(姜氏)에서 분성된 성씨로 천수(天水) 진(晋)의 대부 강일(强釰)의 후손으로 전한다. 송나라 휘종(徽宗) 때 사람으로, 강일의 후손인 강준명(強浚明)에 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강(強)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770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충주(忠州) 668명, 괴산(槐山) 57명, 상산 21명 등이 있다. 강(強)씨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충청도 충주목 괴산군의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다.[1]

『삼국사기』에 중원소경(中原小京 : 현 충주(忠州)) 출신의 강수(强首)가 673년(문무왕 13) 사찬(沙湌)의 벼슬에 오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괴산 강씨(槐山強氏) 강의립(强義立)의 아들 강이민(强以敏, 1638년 ~ ?)이 우림위(羽林衞)로서 1670년(조선 현종(顯宗) 11년) 별시(別試) 무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2] 강이민(强以敏)은 1680년 서천만호(舒川萬戶)를 지내고, 1703년(숙종 29년) 어유간 첨사(魚游澗僉使)가 되었다.

강 강 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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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江)씨는 중국의 성씨이다. 인물로는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이 있다.

강(江)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34명으로 조사되었다.

굳셀 강 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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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剛)씨는 중국(中國) 청(淸)나라 덕종 광서제(德宗 光緖帝) 치세 시기 만주족 관료 출신 강의자(剛毅字)의 아들이었던 강량(剛良)의 후손으로 전한다. 강의자(剛毅字)와 강량(剛良) 부자는 만주인으로 공부상서를 지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0년 국세조사에서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에 강응룡(剛應龍) 1가구가 처음 나타났다. 그에 따르면 1908년(융희 2) 민적부(民籍簿)에 기재할 때 강(强)을 강(剛)으로 잘못 기록했다고 한다.

강(剛)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괴산(槐山)이 6명이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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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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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종실록 149권, 지리지 충청도 충주목 괴산군
  2. 『경술추문무과별시방목(庚戌秋文武科別試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