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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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치공 南致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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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남치공 |
로마자 표기 | Nam Chigong |
출생 | ? 조선 |
사망 | 1497년 조선 |
국적 | 조선 |
경력 | 용양위부사직, 사정, 서부주부(미부임), 공조좌랑(미부임) |
직업 | 무신 |
남치공(南致恭, ? ~ 1497년)은 조선 전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영양(英陽)이다. 세조의 왕권 찬탈에 반발하여 낙향했으며, 세조가 주는 벼슬을 모두 거절하였다.
남홍보(南洪甫)의 8대손으로 증조부는 고려 말 기철(奇轍), 권겸(權謙) 등의 역모를 토벌하고 공민왕 때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역임한 남휘주(南暉珠)이고, 할아버지는 고려 말 위위소윤(衛尉少尹)을 지내고 조선 건국 후 평해군사(平海郡事)를 지낸 남민생(南敏生)이며, 아버지는 병조참판, 회령도호부사, 명나라 주문사(奏聞使) 등을 역임한 남우량(南佑良)이다.
용양위부사직을 거쳐 사정(司正)으로 재직 중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발하여 안동으로 낙향했다. 이후 세조가 주는 벼슬을 모두 거절하였다. 서부주부(西部主簿), 공조좌랑에 임명됐지만 모두 거절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1478년(성종 9) 현감 이증(李增) 별시위 권숙형(權叔衡), 권곤 등 안동 지역의 선비 13명이 결성한 우향계(友鄕契)에 일가 남치정(南致晶), 남경신(南敬身)과 남경인(南敬仁) 등과 함께 가입, 참여하였다. 그는 세조의 찬탈을 미워하여 죽은 뒤 자신의 비석에 군직만 적을 것을 유언했다 한다. 1497년(연산군 3) 사망했다.
가족 관계
[편집]- 조부 : 남민생(南敏生)
- 아버지 : 남우량(南佑良)
- 아들 : 남의원(南義元), 음군수(蔭郡守)
참고 문헌
[편집]- 嶠南誌
- 權文海, 大東韻玉
- 英陽南氏世譜
- 南譜 4권
관련 서적
[편집]- 안동민속박물관, <안동의 계(1, 2)> (안동민속박물관, 2006)
- 이수건, <嶺南士林派의 形性>,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1980)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문서집성>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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