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독일 관계
네덜란드 |
독일 |
|---|---|
| 외교 공관 | |
| 주독일 네덜란드 대사관 | 주네덜란드 독일 대사관 |
네덜란드-독일 관계는 국경을 접한 네덜란드와 독일 간의 외교적, 군사적, 문화적 유대를 의미한다. 현대 국가 간의 관계는 1871년 독일이 통일된 이후 시작되었다.[1] 그 이전에는 네덜란드가 프로이센과 기타 소규모 독일어 사용 국가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두 나라는 모두 유럽 평의회, 유럽 연합,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정회원국이다.
역사
[편집]초기 역사
[편집]오늘날의 독일과 네덜란드 지역 중 상당 부분은 로마 제국의 게르마니아 속주를 형성하였으며, 이로 인해 영어에서 독일(Germany)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프랑크인은 로마 제국 이후 중요한 역할을 한 게르만족으로, 현재의 독일과 네덜란드 지역에서 기원하였다. 프랑크 제국의 계승 분할은 동프랑크 왕국, 아우스트라시아, 서프랑크 왕국 지역 간의 문화적, 정치적 계층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과 네덜란드 지역은 카롤루스 대제 시대부터 중세 후반까지 가톨릭 신성 로마 제국의 핵심 지역으로서 공통 역사를 공유하였다.
또한 한자동맹의 발달은 오늘날 독일과 네덜란드 도시 간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공식적인 길드 관계와 발트해 및 북해를 통한 무역을 촉진하고 규제하였다.
15세기에 부르고뉴 공작령 명목상 공작 부인인 부르고뉴의 마리는 부르고뉴 국가를 다스리다가, 1477년 오스트리아의 대공 막시밀리안과 결혼하였다. 막시밀리안은 이후 신성 로마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된다.[2] 네덜란드 17주는 부르고뉴령 네덜란드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발루아부르고뉴가가 소유하던 여러 봉토를 1482년 합스부르크가가 상속받으면서 형성되었다. 1512년부터 이 지방들은 부르고뉴 서클의 주요 부분을 구성하였다. 황제 카를 5세가 위트레흐트 주교후국을 세속화한 뒤, 1555년 10월부터 여러 왕관의 점진적 퇴위를 시작하자, 그의 아들 펠리페 2세가 합스부르크 네덜란드로 알려진 공국, 백작령, 기타 봉토들의 집합체에 대한 종주권을 이어받았다.[3]
현대
[편집]독일은 헤이그에 대사관을 두고 암스테르담, 아른험, 에인트호번, 엔스헤데, 흐로닝언, 레이우아르던, 마스트리히트, 노르트베벨란트, 로테르담에 영사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베를린에 대사관을 두고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뮌헨, 슈투트가르트에 영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두 나라는 모두 유럽 연합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회원국이다.
네덜란드 정부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양국 관계는 현재 "우수하다"고 평가되며, "긴밀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행정적, 개인적 유대"를 누리고 있다. 또한 독일은 네덜란드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수입과 수출 모두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다.[4]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Amry Vandenbosch, Dutch Foreign Policy since 1815 (1959).
- ↑ Kendall, Paul Murray (1971). 《Louis XI》. W.W. Norton Co. Inc. 319쪽. ISBN 978-0393302608.
- ↑ Technically they formed the Burgundian Circle that, under the Pragmatic Sanction of 1549, was to be transferred as a unit in hereditary succession in the House of Habsburg.
- ↑ “Relations between the Netherlands and Germany | International relations | Government.nl”. 2016년 2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월 12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