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7월 4일 나가노현고모로시에서 2녀 1남 중 차녀로 태어났다.[1] 그의 집안은 종이와 문구를 도매하는 일에 종사했으며 아버지는 개신교 신자였다.[2] 고모로시립 노기시 소학교 5학년 때 NHK 전국학생음악대회에 나가노현 대표로 출장했다.[3] 이후 고모로시립 고모로히가시 중학교와 나가노현 노자와키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합창에 몰두했다. 특히 고등학교 땐 주세페 베르디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레퀴엠 등을 자주 불렀고 3년 연속 문화제에서 《사랑의 묘약》, 《노르마》, 《진주조개잡이》 등 오페라를 열었다.[4]
1984년 와세다 대학 제1문학부에 입학했다. 대학의 혼성합창단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5] 입학한 해에 대학에서 재정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신입생의 등록금을 물가 변동에 맞춰 조정하는 슬라이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5] 이때 다무라의 친구가 일본공산당의 하부 조직인 일본민주청년동맹(민청)의 멤버였고 그는 대학의 결정에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실패로 끝났고 슬라이드 시스템이 도입되었지만 다무라는 이를 보고 민청에 가입했다.[6][5] 그리고 1985년 10월엔 공산당에도 입당했다.[7]
1988년 3월 대학을 졸업한 뒤[8]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민청 종사 직원으로 취업했다.[9][10] 이후 중앙위원회에서 일했으며 기관지인 《고교생 우리》, 《민주청년신문》 편집장을 거쳐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이 되었다.[11] 그리고 민청에서 알게 된 남성과 결혼했다.[12] 1995년에 출산한 뒤 민청에서 공산당 국회의원단 사무국으로 전보됐다. 1997년 1월 중의원 의원 이시이 이쿠코의 비서가 되었고 2002년 1월엔 참의원 의원 이노우에 미요의 비서가 되었다.[12]
2010년 7월에 치러진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때 비례구에 출마해 개인득표 2위에 올라 처음 당선됐다. 다만 현역 의원 2명이 낙선하는 등 자신을 포함해 비례구에서 3명만 당선되었기에 다무라는 크게 기뻐하지 못했다고 술회했다.[13][14] 2015년 1월 공산당 중앙위원 겸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9] 2016년 4월엔 공산당 부위원장 겸 상임간부회위원으로 선출되었고[11] 7월에 재선에 성공했다. 2020년 1월 공산당 정책위원회 책임자로 선출됐으며[11] 2022년 7월 3선 고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