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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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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정
1939년 당시 도모정의 중심부를 그린 우표
1939년 당시 도모정의 중심부를 그린 우표
한자 표기鞆町
가나 표기ともちょう
폐지일1956년 9월 30일
폐지 이유편입합병
이후 자치체후쿠야마시
폐지 당시의 정보
나라일본의 기 일본
지방주고쿠 지방(산요지방)
도도부현히로시마현
누마쿠마군
면적5.40 km2
인구17,219명
(1956년 9월 30일)

도모정(일본어: 鞆町)은 일본 히로시마현 누마쿠마군에 있던 정이다. 1956년에 후쿠야마시에 편입되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도모노우라가 유명하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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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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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는 고대부터 세토 내해의 조수를 기다리는 항구로서 번영하고 있으며, 에도시대의 빈고 후쿠야마번의 영내에서는 성시의 후쿠야마 다음으로 규모를 가지는 정이였다. 이 시대에는 인구 5000-7000명을 거느린 빈고 후쿠야마번 최대의 상도였다.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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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가 되면 교통 수단의 근대화에 수반해 거점성을 잃게 되었다. 이는 해운이 선박의 동력화로 인해 조수 대기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 데다 대형 선박이 입항할 수 없는 것, 또 입지가 누마쿠마 반도의 선단에 있어 산요 철도(현재의 JR산요 본선)가 통과하지도 않기 때문에 육해의 교통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개발 가능한 평야부가 부족했기 때문에, 대규모의 공업이 발전하지 않고, 예전의 번영을 잃게 되었다. 1913년 도모경편 철도가 개통되어 편리성은 향상되었으나 도모항의 지위 저하와 도모쪽 터미널이었던 도모역이 시가지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실적은 좋지 않았다. 도모또한 제2차 대전 후까지는 이용객도 많았지만, 전후 대두해 온 자사의 버스에 손님이 빼앗겨 채산 악화를 이유로 폐지되었다

메이지 시대에 오노미치는 근대적 항만으로서 대발전을 이루어 히로시마현에서는 히로시마시에 이어 빈고 지방에서 최대의 도시가 되지만, 도모정은 근대화의 물결로부터 남겨져 갔다. 그래도 당시의 도모는 여전히 빈고 지방에서는 유력한 도시 중 하나이며, 1889년의 시정촌제 시행에서는 누마쿠마군 도모정이 되어 군청이 설치되었다.

쇼와 초기에는, 오노미치시나 순조로운 발전을 이루는 후쿠야마시로부터 완전히 낙오되어 1942년에는 주위의 다지리촌, 하시리시마촌과 합병해 정역이 확대되지만, 누마쿠마반도의 중심지로서의 지위에 머물 뿐이 되었다. 또한 예전에는 누마쿠마 반도의 중심지였으나 이웃 누마쿠마정에 있는 조석조선이 전후 대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 지위마저 잃게 되었다. 그 때문에 히로시마현의 강력한 시정촌 합병 정책에 의해 1956년 후쿠야마시에 편입되어 후쿠야마시 도모지구가 되었다.

  • 1889년 4월 1일 - 정촌제 시행에 의해 누마쿠마군 2촌의 구역을 가지고 도모정이 발족하였다.
  • 1942년 7월 1일 - 다지리촌, 하시리지마촌과 합병해 (신) 도모정이 신설하였다.
  • 1956년 9월 30일 - 도모정과 주변 정촌과 함께 후쿠야마시에 편입되었다.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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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모 철도
    • 도모 철도선 (1913년 11월 ~ 1954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