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S. 사이더
로널드 사이더 Ronald James Sid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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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로널드 제임스 사이더 |
로마자 표기 | Ronald James Sider |
출생 | 1939년 9월 17일 캐나다 |
사망 | 2022년 7월 27일 |
성별 | 남성 |
국적 | 미국 |
직업 | 복음주의 사회운동가, 신학자 |
로널드 사이더(Ronald James Sider, 1939년 9월 17일~2022년 7월 27일)는 캐나다 태생의 미국의 복음주의 사회운동가이며 신학자가이다. 그는 복음주의 좌파싱크탱크인 Evangelicals for Social Action의 창립자였다. 그는 환경을 위한 전국 종교 파트너십(National Religious Partnership for the Environment)의 창립 이사였다. 그는 펜실베니아 주 세인트 데이비드에 있는 팔머 신학교에서 신학, 전체론적 사역 및 공공 정책 분야의 석좌 교수였다.
경력
[편집]로널드 사이더는 1939년 9월 17일 온타리오주 스티븐스빌에서 농부이자 그리스도 형제 연합교회(Brethren in Christ Church)목사인 아이다 클라인과 제임스 사이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교단은 재세례파 전통을 따르며, 평화주의와 공동체 중심의 신앙을 강조한다. 여덟 살 무렵, 가정 예배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부모와 교회는 복음 전도와 사회 정의 사이에 간극이 없는 신앙을 가르쳤으며, 이는 사이더의 평생 신학적 방향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신앙 교육의 영향으로 그의 아버지는 믿음과 삶의 모범이었으며, 사이더는 그로부터 성경적 정의와 공동체적 책임에 대한 깊은 감수성을 배웠다. 교회 역시 단순한 교리 교육을 넘어서, 실천적 신앙을 강조하는 환경이었다. 교회에서의 경험은 사회 운동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는 1953년 온타리오주 포트 이리에 있는 Niagara Christian College(현 Niagara Christian Collegiate)에서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Sider는 온타리오주 워털루에 있는 워털루 루터교 대학교에 다녔고 1962년에 유럽사 학사 학위를 받았다. 워털루에 있는 동안 그는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에 가입하여 학계에서 경력을 쌓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예일 대학교와 같은 대학교 신학부에서 역사(Ph. D.)와 신학을 공부했다. 1968년 인종차별과 빈곤으로 고통받는 흑인 기독교인들의 어려움을 알게 되면서 1973년부터 칼 헨리, 짐 윌리스, 사무엘 에스코바와 함께 주말집회에서 사회문제들을 주로 다루었다.팔머 신학교에서 신학자로 활동했으며, “사회 참여를 위한 복음주의 운동”(Evangelicals for Social Action, ESA)회장,미국 동부 침례교회 신학교(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기독교 윤리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선언》(영어: 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영어: Rich Christians in an Age of Hunger),《이것이 진정한 기독교다!》(영어: Genuine Christianity)(모두 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IVP에서 역간)가 있다.
사이더는 옥스퍼드 서클 메노나이트 교회에 다녔고 세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은퇴한 가족 상담사인 아내 아부투스와 함께 펜실베니아 주 랜스데일에 살았다. 그들은 2011년에 결혼 50주년을 맞았고 여섯 명의 손녀를 두었다. 사이더의 아들 시어도어( Theodore)는 럿거스 대학의 철학 종신 교수로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50편 이상의 학술 논문과 3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주요 신학 및 사상
[편집]- 복음주의자로서 성경적 기반을 중시하면서, 복음전도와 사회정의의 동시 실천을 강조한다.
- 복음주의 신앙이 개인 구원뿐 아니라 가난, 불의, 평화, 인권 등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함을 주장한다.
“복음 전도와 사회 정의는 그리스도인의 동등한 사명”임을 선포하며, 1970년대 시카고 선언(Chicago Declaration), 로잔 선언(Lausanne Covenant) 등 복음주의의 사회참여 문서와 운동을 주도했다.
- 평화주의(비폭력)와 경제정의(불평등·빈곤 해소)에 깊게 헌신하며, “Evangelicals for Social Action(복음주의자의 사회참여)” 단체를 설립했다.
어록
[편집]로널드 사이더는 2005년 한국을 방문하여 머무는 동안 《복음과 상황》과의 인터뷰를 했다. 당시 《복음과 상황》 편집장이었던 양희송씨와 로널드 사이더간의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발췌하였다.
- 양희송: 최근 번역된 당신의 책 <그리스도인의 양심선언>은 미국 복음주의의 현실을 개탄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실제로 비관적으로 보는가?
- 로널드 사이더: 나는 사실 낙관주의자이다. 그 책은 아마 나의 가장 비관주의적 전망을 담았을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에는 다양한 흐름이 있다. 물론 크게 봐서 이 전통은 16세기 종교개혁의 가르침과 18세기 부흥운동의 흐름,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신학적 자유주의와의 대립 등을 공유하고 있다. 나는 전 생애에 걸쳐 대중적인 복음주의의 여러 측면을 비판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음주의 내부에서 제출한 비판이었다. 나는 매우 헌신된 복음주의자이다. 어떤 행위가 성서의 가르침에 충실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측면에서 나오는 비판이다. 성서는 개인만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 공동체를 함께 말하는 복음을 가르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책에서는 복음주의자들의 이혼율이나 혼전관계 비율이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다든지, 별반 차이가 없는 삶을 살고 있음을 지적했다. (종교 통계 전문가인)조지 바나(George Barna) 같은 이들의 통계자료 분석을 보면 실망스런 내용도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의 경우는 상당히 차별성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1]
평가
[편집]사이더는 복음 전도와 사회정의를 동시에 강조한 진보 복음주의의 선구자이자 양심으로 평가 받는다. 복음주의, 평화주의, 경제정의운동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미쳤으며, 신학적 지성과 실천적 사역의 균형으로 존경받는다. 론 사이더는 현대 복음주의 내에서 사회참여와 정의 실천, 복음적 평화주의의 길을 실천적으로 개척해온 대표적 신학자이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외부 링크
[편집]위키미디어 공용에 로널드 S. 사이더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ESA 누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