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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조제프 다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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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본명봉조제프 다시에
로마자 표기프랑스어: Bon-Joseph Dacier
출생명봉조제프 다시에
출생1742년 4월 1일
프랑스 왕국의 기 프랑스 왕국 노르망디 (레지옹) 망슈 발로뉴
사망1833년 3월 5일 (90세)
7월 왕정의 기 7월 왕정 일드프랑스 센주 (프랑스) 파리의 아롱디스망 메트로폴 뒤 그랑 파리 파리 (프랑스) 파리 2구
국적프랑스 식민제국의 기 프랑스 식민제국
근세 프랑스의 기 근세 프랑스
프랑스 왕국의 기 프랑스 왕국
프랑스 입헌왕국의 기 프랑스 입헌왕국
프랑스 제1공화국의 기 프랑스
프랑스 제1제국의 기 프랑스
부르봉 왕정복고의 기 부르봉 왕정복고
7월 왕정의 기 7월 왕정
민족프랑스 식민제국의 기 프랑스 식민제국
근세 프랑스의 기 근세 프랑스
프랑스 왕국의 기 프랑스 왕국
프랑스 입헌왕국의 기 프랑스 입헌왕국
프랑스 제1공화국의 기 프랑스
프랑스 제1제국의 기 프랑스
부르봉 왕정복고의 기 부르봉 왕정복고
7월 왕정의 기 7월 왕정
성별남성
언어프랑스의 기 프랑스
직업작가, 문학가, 번역가, 사학자, 수필가, 역사가, 저술가, 고전학자, 문헌학자, 역사학자, 서양고전학자
학력아카데미 프랑세즈(1822~1833)
모교아카데미 프랑세즈(1822~1833)
경력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제16대 의장(1822~1833)
종교프랑스의 로마 가톨릭교회
필명봉조제프 다시에
등단1772년 클라우디우스 엘리우스의 다양한 역사들의 작품들
활동기간1772년 ~ 1833년
장르수필
사조고전주의
수상프랑스 제1제국의 남작
스승에티엔 로로 드 퐁마뉴
배우자마리 마르그리트 올림프 페디에르(1769~)
동거인장자크 바르텔레미, 펠릭스 비크다지르
자녀보네 올림프 다시에, 봉에드메에티엔 다시에, 에티에네트 잔 마르그리트 다시에
주요 작품
엘리엔의 여러 이야기들: 그리스어 번역 및 주석 포함, 제논폰의 키루스의 교육 또는 키루스 이야기 ‒ 다시에 번역본, 장 프루아사르의 연대기들, 1789년 이후 고대 역사 및 문학의 진보에 대한 역사적 보고서, 그리고 그것들의 현재 상태, 프랑스 왕립연구소 역사 및 회고록: 금석문·문예 아카데미
영향
영향 받은 인물에티엔 로로 드 퐁마뉴
영향 준 인물장프랑수아 샹폴리옹
서명

묘비
묘소페르 라셰즈 묘지
Grave of Dacier

봉조제프 다시에(프랑스어: Bon-Joseph Dacier, 1742년 4월 1일 ~ 1833년 3월 5일) 프랑스의 역사학자자 고대 그리스어 학자, 번역가로서, 18세기와 19세기 초 프랑스 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특히 고전문헌의 번역과 학술기관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르망디의 발로뉴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신학을 공부했으나, 파리의 콜레주 드 다르퀴르 학문을 이어가며 에티엔 로로 드 퐁마뉴 신부의 제자가 되어 그의 조수로 활동했다. 1772년에는 클라우디우스 엘리아누스의 히스토리아를 번역하여 학계에 알려졌으며, 같은 해에의 금석문·문예 아카데미의 준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1782년부터 1830년까지 금석문·문예 아카데미의 영구 비서직을 맡으며, 기관의 역사와 발전을 기록했다. 또한, 1777년에는 제논의 사이로페디아를 번역하여 고대 그리스 문헌의 보급에 기여했다. 1790년에는 파리 시청의 의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799년에는 프랑스 혁명 중에 트리뷔나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1800년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고문서 담당 책임자로 임명됐으며, 1822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정회원으로 선출되어 당시 가장 나이가 많은 회원이 됐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프랑스 왕립학술원의 역사와 회고록과 프랑스 혁명 이후 고대 역사와 문학의 발전에 관한 역사적 보고서가 있다. 특히 후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의뢰로 작성되어 프랑스 혁명 이후 고대사와 고대문학의 발전을 다루고 있다. 또한, 그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의 해독에 중요한 기여를 한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 1822년에 보낸 유명한 봉조제프 다시에 편지에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음성 문자 알파벳을 발견한 내용을 보고받았다. 이러한 학문적 업적을 통해 봉조제프 다시에 프랑스의 고전학의 발전과 학술기관의 강화에 기여했으며, 1833년 3월 5일 파리에서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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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 초기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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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조제프 다시에 1742년 4월 1일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발로뉴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는 당시 프랑스의 북서부 지역으로, 오늘날에는 망슈 지역에 속한다. 그의 부모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의 교육환경과 가족의 지원이 그의 학문적 경로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력 및 초기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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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파리의 콜레주 다르쿠르에서 학습했으며, 이후 고전문헌학자자 역사학자인 에티엔 로로 드 퐁마뉴의 제자자 조수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그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았으며, 이는 그의 후속연구의 번역작업에 중요한 기초가 됐다.

학문적 지위와 사회적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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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조제프 다시에 1772년에 금석문·문예 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됐으며, 1782년에는 이 기관의 회장 겸 상임비서로 선출됐다. 그는 1784년부터 1830년까지 이 기관의 역사를 편찬했으며, 이는 프랑스의 고전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 1790년에는 파리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799년에는 프랑스 통령정부 아래의 트리뷔나의 의원으로 선출됐다. 1800년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원고 부서장으로 임명됐으며, 1822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1822년 당시 가장 나이가 많은 회원으로, 학문적 권위와 경험을 바탕으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망과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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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 라셰즈 묘지 제29구역에 있는 봉조제프 다시에 무덤

봉조제프 다시에 1833년 3월 5일 파리에서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매장지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 제29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사망 당시, 그는 프랑스 고전 연구의 권위자로서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업적은 후대 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줬다. 그의 유산은 고대 문헌의 보존과 번역, 그리고 고전학의 발전에 기여한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그의 연구와 작품은 프랑스 고전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의 학문적 열정과 헌신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주요 업적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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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1772년에 발표한 클라우디오스 엘리아누스의 히스토리아의 번역이다.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중요한 자료로, 당시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또한, 1777년에는 제논의 사이로페디아를 번역하여 고대 그리스 철학과 정치이론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이러한 번역 작업은 프랑스어권 독자들에게 고대문헌을 소개하고, 고전연구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또한 1788년에 장 프루아사르의 연대기를 편집했으며, 1810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의뢰로 역사와 고대문학의 진전과 현재상태에 대한 역사적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프랑스 혁명 이후 고대역사와 문학연구의 발전 상황을 정리한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된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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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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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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