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나노기술에 관한 드렉슬러-스몰리 논쟁
분자 나노기술에 관한 드렉슬러-스몰리 논쟁[1]은 분자 나노기술 개념의 창시자로 꼽히는 K. 에릭 드렉슬러와 199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리처드 스몰리 사이에서 벌어진 공개 논쟁이다. 쟁점은 개별 원자·분자를 조작해 물질과 장치를 제조하는 분자 조립기(molecular assembler)라는 분자 머신이 물리 법칙상 가능한가였다. 조립기 개념은 드렉슬러의 분자 나노기술 구상에서 핵심이었으나, 스몰리는 근본 물리 제약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두 사람은 서로의 나노기술 관점이 대중 인식에 해를 끼치고 연구 지원을 위협한다며 비판을 주고받았다.
논쟁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기고문과 공개 서한을 통해 전개되었다. 2001년 스몰리가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기고한 글에서 시작되어, 그해 말 드렉슬러와 동료들의 반론, 2003년 초 드렉슬러의 두 통의 공개서한이 이어졌다. 2003년 말 《케미컬 앤드 엔지니어링 뉴스》의 ‘포인트–카운터포인트’ 특집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논쟁은 당사자들의 명성과 기술·사회적 논점을 함께 다뤘다는 점에서 나노기술사에서 자주 인용된다. 반면 어조가 지나치게 공세적이었다는 비판도 많았으며, 일부 평론가는 이를 ‘소위 "오줌싸움"’[2]이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풍자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3]
당사자
[편집]K. 에릭 드렉슬러
[편집]드렉슬러는 나노기술 주제에 관한 최초의 학술 논문을 쓴 인물로 흔히 평가되며,[4] 여러 저작과 공론 활동을 통해 개념 대중화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4][5] 공학 훈련을 받은 그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1959년 강연 〈아래에는 넓은 공간이 있다〉에서 영감을 얻었고, 재조합 DNA 등 분자생물학의 성과에도 주목했다. 1981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는 리보솜 같은 생물학적 체계가 이미 원자 수준의 조립을 수행한다는 점을 들어, 인공 기계도 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서 《창조의 엔진》(1986)과 공학서 《나노시스템》(1992)을 펴냈고, 분자 나노기술의 공익적 담론을 촉진하기 위해 포어사이트 연구소를 공동 설립했다.[4]
그의 비전은 원자 단위로 분자를 제조하는 분자 조립기에 기반한다. 그는 생물학적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습식 나노기술’과, 기계공학 원리에 가까운 기계 합성(positional mechanosynthesis)에 의존하는 ‘2세대 건식 나노기술’을 구분했다. 드렉슬러와 지지자들은 주로 후자에 방점을 찍었으나, 두 경로 모두 분자기계 시스템으로 가는 타당한 길이라고 언급했다.[4]
리처드 스몰리
[편집]리처드 E. 스몰리는 라이스 대학교의 화학자로, 1985년 탄소의 C₆₀ 동소체인 버크민스터풀러렌을 해리 크로토, 로버트 컬 등과 함께 공동 발견한 업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풀러렌과 탄소 나노튜브 연구는 나노재료·나노전자 분야를 크게 이끌었고, 스몰리·크로토·컬은 1996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6]
스몰리는 또한 나노기술의 공공정책 담론에서 두드러졌고, 에너지 저장·전송과 표적 약물전달 등 인류의 에너지·보건 문제 해결에 나노기술을 활용하자고 옹호했다. 그는 탄소 나노튜브 상업화에도 참여했으며, 2005년 10월 백혈병으로 별세했다.[7][8]
논쟁의 전개
[편집]스몰리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고(2001)
[편집]스몰리는 2001년 9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나노기술 특집호에 〈화학, 사랑, 그리고 나노봇〉을 기고했다. 그는 화학 반응을 사랑의 춤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9]
소년과 소녀가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흔히 그들 사이의 ‘화학’이 좋다고 말한다. 인간관계에서의 이 흔한 표현은 분자의 결합이라는 더 일상적인 사건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미묘함에 근접한다. 두 ‘합의’한 분자 사이의 화학 반응에서, 원자들 사이에는 보통 다차원적 운동이 얽힌 복잡한 춤이 일어난다… 화학이 정말, 정말 좋다면 반응하는 분자들은 모두 정확히 원하는 산물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는 개별 원자를 조작하는 나노봇인 분자 조립기의 생산 속도를 가정해 자기복제 가능성, ‘그레이 구’ 시나리오, 집단 지능 등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언급했다.[9]
이어 스몰리는 화학 결합의 상호의존성을 들어 조립기가 동시에 다수의 원자를 정밀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두 가지 반대를 제시했다. 즉 ‘살찐 손가락(fat fingers)’ 문제와 ‘끈적한 손가락(sticky fingers)’ 문제다.[9]
조작기의 손가락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크기를 더 줄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나노미터 규모의 반응 영역에는 필요한 모든 조작기의 모든 손가락을 다 집어넣을 공간이 없다… 또한 조작기의 손 원자들은 옮기는 원자에 달라붙는다. 그러니 건축 블록을 정확한 자리에서 떼어놓는 것이 종종 불가능하다. 두 문제 모두 근본적이며 피할 수 없다. 자기복제하는 기계적 나노봇은 우리 세계에서 가능하지 않다.
드렉슬러의 반론(2001–2003)
[편집]드렉슬러는 분자제조연구소(IMM) 웹사이트에 반론을 게재했다. 공동저자는 로버트 프레이타스, J. 스토스 홀, 랠프 머클 등이다. 이들은 다수의 반응이 두 반응물(그중 하나는 표면 고정, 다른 하나는 단일 “손가락”에 부착)만으로도 일어나며, 주사터널링현미경(STM) 팁 등의 반응 구조를 이용해 위치 제어 및 표면 결합 분자 조작이 가능하다는 실험·이론 결과를 제시했다. 또한 최종 산물의 원자 정밀도가 곧 모든 반응 변수를 완전 제어해야 함을 뜻하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끈적한 손가락’ 문제는 일부 반응에 해당하지만,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라고 반박했다.[10]
이들은 리보솜을 자연계의 분자 조립기 사례로 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10]
널리 존재하는 생물학적 분자 조립기인 리보솜은 ‘살찐 손가락’도 ‘끈적한 손가락’도 겪지 않는다. 두 문제가 ‘근본적’이라면, 왜 생물학적 조립기는 가능하고 기계적 조립기는 불가능한가? 단백질이라는 분자 계열이 위치 제어로 합성될 수 있다면, 왜 다른 분자 계열은 불가능하다고 보는가?
또한 스몰리가 제시한 원자 배치 빈도(1 GHz)는 《나노시스템》의 가정(1 MHz)과 세 자릿수 차이가 나며, 그 빈도로는 다이아몬드계 나노기계가 과열되어 분해된다고 비판했다. 이는 ‘허수아비 때리기’에 가깝고, 실현 가능성은 이론·실험으로 가늠해야 한다고 맺었다.[10]
드렉슬러는 이어 2003년 4월과 7월 두 통의 공개서한을 발표하며, 스몰리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스몰리의 손가락’이라는 허구적 모델로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11]
‘스몰리의 손가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연구자 누구에게도 우려가 되지 않았다. 그 손가락은 어떤 문제도 풀지 못하며, 어떤 제안에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허수아비에 의존하는 모습은, 나의 작업에 대한 유효한 비판이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7월 서한에서 그는 논쟁의 핵심은 ‘나노기술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라며, 스몰리의 발언이 공적 인식을 바꾸는 데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었다고 적었다.[12]
〈케미컬 앤드 엔지니어링 뉴스〉의 서한 교환(2003)
[편집]2003년 12월 1일자 《케미컬 앤드 엔지니어링 뉴스》 표지 특집 ‘포인트–카운터포인트’는 드렉슬러의 4월 공개서한을 먼저 싣고, 스몰리의 답신, 드렉슬러의 재반박, 스몰리의 최종 답변을 차례로 게재했다.[13] 스몰리는 먼저 2001년 글이 불쾌했다면 사과한다며, 드렉슬러의 《창조의 엔진》이 자신의 관심을 촉발했다고 했다. 그는 ‘스몰리의 손가락’은 작동할 수 없음을 인정하되, 원자 제어가 불가능하다면 더 큰 빌딩 블록을 조작할 때도 분자의 여러 원자를 동시에 제어해야 한다는 같은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13]
스몰리는 효소·리보솜류가 정밀 화학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나노봇이 그런 효소를 어떻게 확보·제어·수리할지, 물 기반 생물학과 양립하지 않는 반응(예: 실리콘·금속 결정 제조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 물었다. 그는 ‘비수계 효소 유사 화학’은 수세기 동안 미해결의 광대한 영역이라고 했다.[13]
드렉슬러는 파인먼의 강연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구상은 생물학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본질적으로 ‘기계적’이며 화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공학의 과제라고 반박했다. 용매나 열적 운동에 의존하지 않고, 위치 제어를 통해 부반응을 억제하며, 메가헤르츠급 빈도로 디지털 스위칭에 준하는 신뢰도로 합성이 가능하다는 분석은 《나노시스템》에 제시되어 10년간의 검증을 견뎌냈다고 말했다.[13]
그는 용액상 조립기로 더 정교한 조립기를 ‘부트스트랩’하고, 거시적 산물을 원자 정밀도로 조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3]
스몰리는 최종 답변에서 다시 사랑의 은유를 꺼내 들며, 단순한 기계적 운동만으로 원하는 정밀 화학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했다. 기계 합성으로는 대부분 잘못된 산물이 생길 것이며, 소수만 성공할 것이라고 보았다. 결국 로봇 팔 끝에는 효소 유사 도구가 필요하고, 이는 액체 매질(현실적으로 물)을 전제하므로 산물 범위는 생물학의 재료에 머문다고 주장했다. 그는 드렉슬러가 ‘컴퓨터 프로그램이 지시하니 원자가 그리로 간다고 가정하는 가상 세계’를 만든다고 비판했다.[13]
또한 중·고교생 에세이에서 상당수가 자기복제 나노봇을 믿고 두려워한다는 점을 우려하며, ‘아이들을 겁주었다’고 질타했다.[13]
비평
[편집]어조에 대한 평가
[편집]데이비드 버루베는 《나노-하이프》에서 이 논쟁을 ‘서로 말 끊고 말 위에 말하는 두 사람’의 비생산적 공방으로 보았다. 나노기술 블로거 하워드 로비는 ‘논쟁의 정조(테너)는 자존심·명성·위상 경쟁’이라고 평했다.[8] 자이벡스 창업자 제임스 본 에어는 ‘노벨상 수상자와 "오줌싸움"에 들어가는 건 드렉슬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2] 《뉴욕 타임스》는 이를 ‘진지한 정치 이슈를 다루면서도 서로 모욕을 주고받는 〈위크엔드 업데이트〉 스케치’를 연상시킨다고 평했다.[3]
기술적 논평
[편집]스티븐 A. 에드워즈는 ‘분자 조립기’의 사양·정의가 모호해 논점 평가가 어렵고, 《나노시스템》도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조작기 팔이 ‘400만 개의 원자’로 구성된다고는 하지만 구체적 원자 구성·조립법은 없다며, ‘기계 합성’ 논쟁은 당사자들에게는 거대하나 대다수 연구자에게는 학술적 여흥에 가깝다고 평했다.[2]
반면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드렉슬러의 손을 들어주며, 스몰리가 드렉슬러의 생각을 왜곡했고, 그의 반론은 구체 인용과 최신 연구가 빈곤하며 은유에 의존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수계 효소 활성, 정밀 위치 제어 합성의 연구 진전을 인용하며, 생물학을 넘어선 인간 기술(항공기·컴퓨터 등)의 전례를 들었다.[14][15]
대중 인식에 관한 논평
[편집]정치 블로거 글렌 레이놀즈는 ‘고급 나노기술 논의가 으스스해 보이고, 그러한 논의가 공포를 자극해 시장 진입을 막을까 우려하는 산업계 심리를’ 지적했다.[16] 로런스 레식은 과학계 주류(스몰리)가 ‘위험해 보이는 나노기술을 여름 영화쯤으로 치부해 잊히게 만들면 막대한 자금 지원과 함께 진지한 연구는 계속될 수 있다’는 태도를 비판했다.[16][17] 커즈와일은 ‘위험과 이익을 모두 부정하는 접근은 오히려 역효과’라고 평했다.[14]
각주
[편집]- ↑ Johnson (2007년 6월 11일). “혁신적 나노기술: 습식인가, 건식인가?” (영어). 《IEEE Spectrum》.
- ↑ 가 나 다 Edwards (2006). 《나노기술 개척자들: 그들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영어). 바인하임: Wiley-VCH. 201쪽. ISBN 9783527312900.
- ↑ 가 나 Chang (2003년 12월 9일). “그들은 할 수 있다! 아니다, 할 수 없다: 나노봇 논쟁에서 오가는 공방” (영어). 《뉴욕 타임스》.
- ↑ 가 나 다 라 Edwards, 쪽 15–21, 27.
- ↑ Toumey (2008년 가을). “나노기술 속의 파인먼 읽기: 새로운 과학을 위한 텍스트” (PDF) (영어). 《Techné》 12 (3): 133–168. doi:10.5840/techne20081231.
- ↑ Edwards (2006). 《나노기술 개척자들: 그들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영어). 바인하임: Wiley-VCH. 27, 64쪽.
- ↑ Edwards (2006). 《나노기술 개척자들: 그들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영어). 바인하임: Wiley-VCH. 132, 184쪽.
- ↑ 가 나 Berube (2006). 《나노-하이프: 나노기술 열풍의 진실》 (영어). 앰허스트 (뉴욕): 프로메테우스 북스. 69–73쪽.
- ↑ 가 나 다 Smalley (2001년 9월). “화학, 사랑, 그리고 나노봇” (영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285 (3): 76–77. Bibcode:2001SciAm.285c..76S. doi:10.1038/scientificamerican0901-76. PMID 11524973.
- ↑ 가 나 다 Drexler; Forrest; Freitas; Hall; Jacobstein; McKendree; Merkle; Peterson (2001). “물리·기초·나노봇: ‘자기복제 기계적 나노봇은 불가능’이라는 스몰리 주장에 대한 반박” (영어). 《Institute for Molecular Manufacturing》.
- ↑ Drexler (2003년 4월). “조립기에 관한 공개서한” (영어). 《Foresight Institute》.
- ↑ Drexler (2003년 7월 2일). “마무리를 향하여” (영어). 《Foresight Institute》.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나노기술: ‘분자 조립기’를 둘러싼 드렉슬러와 스몰리의 찬반 논거” (영어). 《케미컬 앤드 엔지니어링 뉴스》 81 (48): 37–42. 2003년 12월 1일. doi:10.1021/cen-v081n036.p037.
- ↑ 가 나 Kurzweil (2005). 《특이점이 온다: 인간이 생물학을 초월할 때》 (영어). 뉴욕: 펭귄 북스. 236–241쪽. ISBN 978-0-14-303788-0.
- ↑ “분자 조립을 둘러싼 드렉슬러–스몰리 논쟁” (영어). 《KurzweilAI》.
- ↑ Lessig (2004년 7월). “좋은 과학을 짓밟기” (영어). 《와이어드》.
참고 문헌(추가)
[편집]- Pelesko (2007). 《자가 조립: 스스로 모이는 것들의 과학》 (영어). 뉴욕: Chapman & Hall/CRC. 8쪽. ISBN 978-1-58488-687-7.
- Toumey (2008년 가을). “나노기술 속의 파인먼 읽기: 새로운 과학을 위한 텍스트” (PDF) (영어). 《Techné》 12 (3): 133–168. doi:10.5840/techne200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