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맨사 파워
서맨사 파워
Samantha Pow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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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대 유엔 주재 미국 대사 | |
임기 | 2013년 8월 5일 ~ 2017년 1월 20일 |
전임 | 수전 라이스 |
후임 | 니키 헤일리 |
대통령 | 버락 오바마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70년 9월 21일 | (55세)
출생지 | 잉글랜드 런던 |
국적 | 미국 |
학력 | 예일 대학교 B.A. 하버드 로스쿨 J.D. |
정당 | 민주당 |
배우자 | 캐스 선스타인 |
자녀 | 2 |
종교 | 로마 가톨릭 |
서맨사 제인 파워(Samantha Jane Power, 1970년 9월 21일 ~ )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언론인, 외교관이자 공무원이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미국 국제개발처의 행정관을 지냈다. 그 전에 그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다. 파워는 민주당원이다.
그녀는 종군 기자로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하여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보고하였다. 이후에 그녀는 학계에서 일했다. 1998년 그녀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카 인권 정책 센터를 시작하는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또한 버락 오바마 상원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를 조언하기도 했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에 가입한 파워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일하면서 인권에 전념하였다. 유엔 대사로서 그녀는 여성의 권리, 성소수자 권리, 종교의 자유, 난민과 인권 같은 문제들에 일했다. 그녀는 또한 2011년 리비아에서 민간인들을 보호하는 데 군사 조치를 취하는 결정에서 주요 역할을 했다.
2003년 파워는 자신의 저서 〈지옥으로부터 문제:아메리카와 대량 학살의 시대〉로 퓰리처 상을 수상하였다. 이 책은 미국이 어떻게 대량 학살로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2015년 바너드 우수 메달을 포함하여 자신의 업무로 다른 상들을 받았다. 2016년 포브스 잡지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들 중의 하나로 지정하였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국제개발처를 이끄는 데 파워를 선택하였다. 그해 4월 28일 미국 상원은 그녀의 지명을 확정하였다.
초기 생애와 교육
[편집]잉글랜드 런던에서 아일랜드인 부모에게 태어났다. 그녀의 모친은 신장 질환 전문 의사이자 필드하키 선수였으며 부친은 치과의사이자 피아노 연주자였다. 그녀는 9세때까지 아일랜드에서 자라왔다. 1979년 그녀의 모친은 서맨사와 함께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로 이주하였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크로스컨트리와 농구 팀들의 일부였다. 이후에 그녀는 예일 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위를 얻었다. 또한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 학위를 따기도 했다.
경력 하이라이트
[편집]대학 졸업 후, 파워는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연구인으로서 일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그녀는 종군 기자였으며 몇몇의 언론사를 위하여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보고하였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을 다녔다. 그녀의 첫 저서 〈지옥으로부터 문제:아메리카와 대량 학살의 시대〉는 그녀가 로스쿨에서 쓴 논문으로부터 왔다. 이 책은 국가들이 대량 살인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국가들이 의무가 있는 것을 의미하는 "보호책임"의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2003년 퓰리처상 일반 논픽션 부문을 수상하였다. 파워는 항상 대량 학살을 멈추는 데 군사력을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지지하였다.
2004년 타임 잡지는 그녀를 100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로 지정하였다. 그녀는 또한 2007년 시작에 타임을 위하여 정규적 시사 평론을 쓰기도 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파워는 버락 오바마 상원을 위하여 일했다. 그녀는 그가 다르푸르 분쟁에 전념하는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오바마의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위한 연장 외교 정책 조언자였다. 이후에 그녀는 캠페인으로부터 사임하였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를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으로 임명하였다. 2013년 그는 그녀를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만들었다.
오바마 행정부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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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통령 선거 후, 서맨사 파워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팀에 가입하였다. 그녀는 미국 국무부를 위하여 이행과 함께 도움을 주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역할
[편집]2009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은 파워를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로 임명하였다. 그녀는 대통령에게 특별 보자관을 지냈으며 또한 다자 관계와 인권을 위한 수석 이사이기도 했다.
이 역할에서 파워는 민족적 우월감에 반대하는 유엔 세계 회의에서 미국을 제외시키는 도움을 주었다. 이 회의는 이스라엘의 부정적 견해에 너무 전념한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파워는 제1차 리비아 내전이 일어난 동안 리비아에서 군사 조치를 지지하였다. 그녀는 그것이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중요했다고 믿었다. 그녀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수전 라이스 유엔 대사와 함께 일했다. 그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얻는 데 오바마를 확신시켰다. 이 결의안은 리비아의 민간인들을 보호하는 데 국제군대를 허용하였다.
2013년 2월 파워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떠났다.
유엔 주재 미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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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서맨사 파워를 새로운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되는 데 후보로 지명하였다. 많은 상원들은 그녀의 후보 지명을 지지하였다. 이들은 공화당 상원들 존 매케인과 린지 그레이엄을 포함하였다. 그녀는 또한 다른 외교관들과 유대인 조직들로부터 지지를 얻기도 했다.
유엔 주재 대사 존 볼턴 같은 어떤이들은 그녀의 후보 지명을 비판하였다. 그들은 2003년 그녀가 쓴 기사를 지적하였다. 하지만 파워는 8월 1일 미국 상원에 의하여 승인되었다. 투표는 87 대 10 이었고 그녀는 하루 후에 취임 선서를 했다.
주요 문제 및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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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는 인권의 강한 지지자로 지내왔다. 그녀는 인권 침해를 막는 데 군사력을 이용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어떤 비평가들은 리바아에서 같이 그녀가 지지한 군사 조치는 더욱 많은 문제들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관해서 파워는 이스라엘이 국가 자신을 방어하는 데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진술하였다. 2016년 그녀는 이스라엘의 합의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멈추지 않는 데 오바마 행정부의 결정을 지지하였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합의 활동은 평화의 기회들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말했다.
대사로서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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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파워는 시리아에서 화학무기의 이용에 관하여 연설하였다. 그녀는 시리아 정부를 보여준 증거가 책임적이였다는 것을 말했다. 그녀는 시리아에서 폭력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판하였다. 그녀는 그런 위협들과 다루는 데 디자인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4년 존엄의 혁명이 일어난 동안 파워는 크림반도로부터 군사력을 제거하는 데 러시아를 촉구하였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에서 상황을 해결하는 도움을 주는 데 독립적 국제 단체를 요구하였다.

2014년 7월 파워는 성소수자 권리에 관하여 연설하였다. 그녀는 미국에서 진전이 이루어진 동안 많은 국가들이 동성애에 반대하는 법률들을 아직도 가졌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2015년 3월 파워는 유럽에서 국방 삭감에 관한 근심을 표현하였다. 그녀는 이 삭감들은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으로부터 위협 같은 지구촌 도전들이 주어진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파워는 예멘에서 후티들을 상대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끈 중재를 지지하였다.
2016년 파워는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조치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녀는 러시아가 병원과 민간인들에게 폭탄 투하를 하면서 "야만성"을 지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러시아가 기존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수상과 영예
[편집]그녀의 저서 〈지옥으로부터 문제:아메리카와 대량 학살의 시대〉는 2003년 퓰리처상 일반 논픽션 부문을 수상하였다. 바너드 칼리지는 파워에게 그 높은 상인 2015년 바너드 우수 메달을 주었다. 이것은 대량 학살을 방지하는 데 그녀의 책과 노력을 위해서였다. 2016년 그녀는 또한 헨리 키신저 상을 받았다. 2017년 그녀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에 의하여 율리시스 메달이 수여되었다. 2019년 그녀는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헌 상을 받았으며 또한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졸업 연설을 했다.
오바마 행정부 이후의 경력
[편집]2017년 4월 파워는 하버드 로스쿨과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학부에 가입하였다. 그녀는 카 센터와 벨퍼 센터와 함께 연루되었다. 그녀는 또한 국제 평화와 안전 프로젝트에 일하기도 한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변화가 어려울 때 변화를 만들어내요"라고 불린 클래스를 가르쳤다.
파워는 오로라 인류 각성상을 위하여 선발 위원회에 지내기도 한다. 그녀는 국제 난민 보조 프로젝트를 위하여 이사회 구성원이다. 그녀는 또한 렛 아메리카 보우트를 위하여 자문위원회에 있다.
2018년 10월 파워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사망에 대해 논평하였다. 그녀는 그의 사망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변화하는 설명들을 비판하였다.
바이든 행정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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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국제개발처를 이끄는 데 파워를 후보 지명하였다. 그녀는 4월 28일에 확신되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3월 3일에 그녀에게 선서하게 했다. 파워는 코로나19 범유행이 일어난 동안 대외 원조를 마련하는 데 그 노력들 동안 미국 국제개발처를 이끌었다. 미국 국제개발처 행정관으로서 그녀의 기간은 2025년 1월 20일에 끝났다.
개인 생활
[편집]2008년 7월 4일 서맨사 파워는 법학 교수 캐스 선스타인에게 결혼하였다. 그들은 오바마의 선거 운동에 일했던 동안 만났다. 그들은 아일랜드에서 결혼하였다. 부부는 슬하 1남 1녀를 두었다. 파워는 가톨릭 신자이다.
저서
[편집]- 〈지옥으로부터 문제:아메리카와 대량 학살의 시대〉(2002년)
- 〈불꽃을 쫓아서:세르지우 비에이라 지 멜루와 세계를 구하기 위한 싸움〉(2008년)
- 〈조용하지 않은 미국인:세계에서 리처드 홀브룩〉(2011년 데릭 숄렛과 공동 편집)
- 〈이상주의자의 교육:회고록〉(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