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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제프 에스페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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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제프 에스페리외
Jean-Joseph Espercieux
다비드 당제가 조각한 에스페리외, 1840년
다비드 당제가 조각한 에스페리외, 1840년
신상정보
출생 1757년 7월 22일(1757-07-22)
마르세유
사망 1840년 7월 6일(1840-07-06)(82세)
파리
직업 조각가
국적 프랑스
성별 남성
학력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
사조 신고전주의
주요 작품
영향
묘소 몽파르나스 묘지

장조제프 에스페리외(프랑스어: Jean-Joseph Espercieux, 1757년 7월 22일~1840년 7월 6일)는 프랑스의 조각가이다.[1]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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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76년 파리로 이주하여 조각가 샤를앙투안 브리당의 아틀리에에서 수학했으며, 장조제프 푸쿠, 피에르 쥘리앵, 필리프로랑 롤랑의 아틀리에에서도 비정기적으로 공부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자크루이 다비드였던 것으로 추측되나, 프랑스 혁명 이전의 경력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혁명 기간 동안 그는 공화주의 성향이 강했으며, 프랑스 예술공화협회의 회장 중 한 명으로서 고대 복식과 애국적 주제의 사용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1793년부터 파리 살롱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출품했으며, 주로 초상 흉상을 선보였다.

평화의 분수

그의 경력은 프랑스 통령정부프랑스 제1제정 시기에 국가로부터 여러 의뢰를 받으며 절정을 맞았다. 대표작으로는 퐁텐블로궁에 있는 키케로의 석고 흉상(1803), 뤽상부르궁을 위한 미라보의 석고상(1804–5; 현 소재지 불명), 카루젤 개선문에 있는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승리》라는 명칭의 대리석 부조(1810, 현존), 그리고 파리 생제르맹 시장의 평화의 분수(Fontaine de la Paix)를 위한 대리석 상징 부조들(1810; 현재는 보나파르트 거리 소재) 등이 있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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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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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an Joseph Espercieux (11961) | Musée d'Orsay”. 《www.musee-orsay.fr》. 2022년 9월 19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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