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앤 베넷 케네디
버지니아 조앤 케네디 Virginia Joan Kenned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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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니지아 조앤 케네디 (1971년) | |
본명 | 버지니아 조앤 베넷 |
로마자 표기 | Virginia Joan Kennedy |
출생 | 1936년 9월 2일 뉴욕주 뉴욕시 |
사망 | 2025년 10월 8일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 (89세)
성별 | 여성 |
국적 | 미국 |
직업 | 사교계 명사 |
배우자 | 에드워드 M. 케네디 |
버지니아 조앤 케네디(혼전성 베넷(Bennett), 영어: Virginia Joan Kennedy, 1936년 9월 2일 ~ 2025년 10월 8일)는 미국 상원의원 에드워드 M. 케네디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미국의 사교계 명사이다.
생애
[편집]버지니아 조앤 베넷(Virginia Joan Bennett)은 1936년 9월 2일 뉴욕시의 마더 카브리니 병원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뉴욕 브롱크스 교외의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부모는 버지니아 조앤 스티드(Virginia Joan Stead)와 해리 위긴 베넷 주니어(Harry Wiggin Bennett Jr.)였다. 부친은 코넬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뉴욕의 광고 회사인 조지프 카츠 컴퍼니(Joseph Katz Company)의 사장으로 재직하였다.
베넷은 1938년에 태어난 여동생 캔디스(“캔디”)와 함께 성장하였다. 그녀는 뉴욕 퍼체이스(Purchase)에 위치한 맨해튼빌 칼리지(Manhattanville College, 당시 세이크리드 하트 칼리지)에서 수학하였다. 이 대학은 훗날 그녀의 시어머니가 될 로즈 케네디(Rose Kennedy)와 시누이 진 케네디 스미스(Jean Kennedy Smith), 에설 스케이컬 케네디(Ethel Skakel Kennedy)의 모교이기도 하였다.
1982년 베넷은 레슬리 칼리지(Lesley College, 현 레슬리 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청소년 시절에는 텔레비전 광고 모델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결혼, 가족 및 이혼
[편집]1957년 10월, 맨해튼빌 칼리지에서 열린 체육관 헌정식에서 버지니아 조앤 베넷은 테드 케네디를 처음 만났다. 이 행사는 항공기 사고로 사망한 또 다른 케네디 자매, 캐슬린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진 케네디 스미스는 당시 버지니아 대학교 로스쿨 학생이던 동생 에드워드(별칭 ‘테드’) 케네디에게 조앤을 소개하였다. 두 사람은 빠르게 약혼하였으며, 조앤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점에 다소 불안감을 느꼈다. 테드의 부친 조지프 P. 케네디 시니어는 결혼을 강력히 권유하였고, 두 사람은 1958년 11월 29일 뉴욕 브롱크스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은 가족 중심의 소규모 행사로 진행되었으며, 테드의 형 존 F. 케네디가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재선 승리를 거둔 직후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세 자녀가 있었다. 첫째는 카라 케네디(1960–2011), 둘째는 에드워드 M. 케네디 주니어(1961년생), 셋째는 패트릭 J. 케네디(1967년생)이다. 이들 중 두 명은 암으로 고통받았다. 테드 주니어는 12세 때 골암 진단을 받아 오른쪽 다리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고, 카라는 2003년 폐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2011년 9월 16일 심장마비로 5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테드 케네디는 1964년 첫 상원의원 임기 중 항공기 사고로 심각한 허리 부상을 입었다. 이에 따라 조앤은 그의 재선 운동 기간 동안 대외 활동을 대신 수행하였다. 테드는 1962년 11월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여 형 존 F. 케네디의 상원의원 잔여 임기를 채웠으며, 존은 1960년 11월 미국 제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69년 7월, 테드 케네디는 매사추세츠주의 차파퀴딕 섬 다리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켜 동승자 메리 조 코페크니가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다. 당시 조앤은 임신 중이었으며, 이전 두 차례의 유산 이후 병상에 있던 상태였다. 그녀는 코페크니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으나, 사고 사흘 후 남편이 법정에서 현장 이탈 혐의를 인정할 때 곁에 있었다. 이후 조앤은 또 한 차례의 유산을 겪었다.
부부는 20년의 결혼 생활 끝에 1978년 별거에 들어갔다. 이 시기 조앤 케네디는 《피플》(People) 및 《맥콜》(McCall’s)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알코올 중독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였다. 그녀는 사회적 압박과 불행을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음주를 사용했다고 고백하였으며, 이후 알코올중독자 자조모임(Alcoholics Anonymous)의 12단계 프로그램을 통해 회복의 길을 걸었다. 부부는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까지 법적으로는 혼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1982년에 이혼이 최종 확정되었다.
말년과 죽음
[편집]1992년, 조앤 케네디는 《고전음악의 기쁨: 당신과 가족을 위한 안내서》(The Joy of Classical Music: A Guide for You and Your Family)를 출간하였다. 그녀는 아동 복지 단체들과 협력하였으며,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어린이들에게 고전음악을 가르쳤다.
케네디의 후반 인생은 만성적인 알코올 중독으로 점철되었다. 결혼 생활 중 시작된 음주 문제는 금주와 재음주가 반복되었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체포, 법원의 재활 명령, 그리고 다시 음주로의 회귀로 이어졌다. 장기간의 음주는 신장 손상을 초래하였고, 투석(dialysis)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2004년 7월 장남 테드 주니어가 법원의 결정에 따라 그녀의 법정 후견인으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그녀의 자녀들은 임시 후견권을 부여받았다. 그 해 말, 케네디는 자택 인근 보스턴 거리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어 뇌진탕과 어깨 골절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
2005년 그녀의 사촌이자 재정 설계사인 웹스터 E. 얀센(Webster E. Janssen)은 그녀의 자산 관리를 위해 신탁을 설립하였으나, 이는 자녀들의 후견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지적되었다. 이후 자녀들은 얀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그를 신탁 관리인 자리에서 해임시켰다. 또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에 그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였다. 같은 해 10월, 케네디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자산을 새 신탁으로 이관하였으며, 이는 두 명의 법정 신탁 관리인의 감독 아래 운영되었다.
이혼 이후 그녀는 잠시 짧은 교제를 제외하고 재혼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 테드의 장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장례식은 보스턴의 ‘영원한 도움의 성모 대성당(Our Lady of Perpetual Help Basilica)’에서 거행되었다.
그녀의 마지막 공식 석상 등장은 사망 석 달 전, 케네디 가문의 독립기념일 행사(7월 4일 모임)에서였다.
조앤 케네디는 2025년 10월 8일, 89세의 나이로 보스턴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일반 조문은 10월 14일 보스턴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장례 미사는 10월 15일 보스턴의 세인트 앤서니 성당(St. Anthony Shrine)에서 거행된 후 비공개로 매장될 예정이다.
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편집]- (영어) 조앤 베넷 케네디 -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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