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목욕탕
터키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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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Le Bain tur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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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제목 | The Turkish Bath |
작가 |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
연도 | 1852년~1859년, 1862년에 수정 |
매체 | 캔버스에 그린 유화를 목재에 부착 |
크기 | 110 x 108 cm , 43 5/16 × 42 1/2 in |
위치 | 프랑스 파리 |
소장처 | 루브르 박물관 |
《터키탕》(프랑스어: Le Bain turc, 영어: The Turkish Bath)은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유화로, 1852년에서 1859년 사이에 처음 완성되었으나 1862년에 수정되었다.[1] 이 그림은 하렘의 수영장에서 알몸의 여성 무리를 묘사하고 있다.[1] 작품은 근동을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신화적 주제와 관련된 서양의 초기 양식들을 불러일으키는 에로틱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이 그림은 특히 1808년의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과 1814년의 《그랑드 오달리스크》에서 앵그르가 탐구했던 여러 모티프를 확장시킨 것으로,[1] 낭만주의의 한 예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1862년이라는 서명과 날짜가 있으며, 당시 앵그르는 약 82세였다. 그는 원래의 직사각형 구도를 변경하여 톤도(원형) 구도로 바꾸었다. 사진가 샤를 마르빌이 촬영한 원래 상태의 사진이 지금도 남아 있다.[2]
설명
[편집]
이 그림은 섬세한 색채 처리로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목욕 공간의 은밀한 공간에 기대어 있는 여성들의 매우 창백한 피부가 돋보인다. 인물들은 거의 추상적이고 “가늘고 유연한” 형태를 지니며, 때로는 뼈대가 없는 듯 보인다. 인물들은 매우 조화롭고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 곡선의 배열은 그림의 에로틱함을 더욱 고조시킨다. 그 효과는 암시적인 동양 향수의 아지랑이, 꽃병, 흐르는 물, 과일, 보석 등의 모티프, 그리고 창백한 흰색에서 분홍, 아이보리, 연한 회색, 다양한 갈색에 이르는 팔레트의 사용을 통해 부분적으로 구현된다.[3]
그림을 원형으로 바꾸려는 선택은 구도를 중심화시키는 동시에 관람자가 오큘루스를 통해 나체의 여인들을 엿보는 듯한 관음적 요소를 더한다. 앵그르는 유럽을 벗어난 여행 경험이 없었기에, 목욕하는 여인들의 장면은 전적으로 이상화된 낭만적 비전이다.[4]
앵그르는 자신의 노년에 에로틱한 작품을 제작한다는 아이러니를 즐겼으며, 작품에 자신의 나이를 라틴어로 “AETATIS LXXXII”(82세 때)라고 새겨 넣었다. 그는 1867년에 여전히 “서른 살 남자의 불꽃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5][6] 그는 이 작품을 살아 있는 모델을 두고 그린 것이 아니라 크로키와 자신이 과거에 제작한 여러 그림을 참고해, 침대 위나 목욕탕 옆에 단독으로 앉아 있는 “목욕하는 여인”이나 “오달리스크” 도상들을 재사용했다.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속 뒷모습의 인물은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터키탕》 속 중심에 위치하며, 바닥에 앉아 만돌린을 연주하고 있다. 뒤쪽에서 팔을 뻗어 컵을 들고 있는 여성은 1856년 그의 초상화 《무아테시에 부인》의 모델을 닮았다. 오른쪽 전경에서 양팔을 머리 위로 치켜든 여성의 얼굴은 1818년 아내 델핀 라멜을 그린 크로키와 유사하지만,[7] 그녀의 오른쪽 어깨는 낮춰져 있고 오른팔은 들어 올려져 있다. 다른 인물들은 조명이 닿지 않는 여러 공간 속에 배치되어 있다.
앵그르는 19세기 아카데미 미술, 신고전주의, 후기 매너리즘 등 다양한 화풍에서 영향을 받았다. 색채 처리는 “차갑게 절제된” 느낌을 주며, 인물들이 서로 융합되어 성적 긴장감을 환기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합리적 원근법을 거스르는 앵그르의 기교를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8]
오리엔탈리즘의 영향
[편집]앵그르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다시 부흥한 오리엔탈리즘 유행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1806년 이탈리아로 떠날 때, ‘무함마드의 세라글리오의 목욕탕’을 찬미하는 글을 자신의 노트에 베껴 적었다. 그 글에는 “소파로 둘러싸인 방에 들어가면 많은 여인들이 술타나(sultana)의 목욕을 시중들기 위해 모여들고,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닦고 가장 부드러운 향수를 문질러 주며, 이후 그녀는 관능적인 휴식을 취해야 한다”라는 묘사가 있었다.[9][10]

1825년, 그는 영국 외교관 남편을 따라 오스만 제국을 방문했던 메리 워틀리 몬태규 여사의 여행기를 베껴 적기도 했다. 그녀의 편지는 1763년부터 1857년까지 프랑스에서만 여덟 차례 출판되며 오리엔탈리즘 열풍을 더욱 부추겼다. 앵그르가 옮겨 적은 대목은 “아드리아노플의 여성 목욕탕 묘사”라는 제목으로, “그곳에는 200명의 여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자세의 아름다운 나체 여인들이 있었고… 어떤 이는 대화를 나누고, 어떤 이는 일을 하며, 또 어떤 이는 커피나 소르베를 마셨고, 많은 이는 느긋하게 누워 있었으며, 그들의 노예(대개 17세나 18세의 매혹적인 소녀들)가 환상적인 모양으로 그들의 머리를 땋아주고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11][12] 문학비평가 루스 예이젤은 《터키탕》의 분위기가 몬태규가 묘사한 공공 목욕탕과는 거의 유사성이 없다고 평가한다.[13]
알제리 하렘을 직접 방문한 외젠 들라크루아와 달리, 앵그르는 아프리카나 중동을 여행한 적이 없었고, 그림 속 여성들은 중동이나 아프리카 여성이라기보다 백인 유럽인에 가까운 모습이다.[14] 앵그르에게 동양적 주제는 무엇보다 여성 누드를 수동적이고 성적인 맥락에서 표현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작품 속 이국적인 요소는 악기, 향로, 몇 가지 장식품 정도에 그친다.
소장 역사
[편집]이 그림의 첫 구매자는 나폴레옹 3세의 친척이었으나, 며칠 뒤 아내가 이를 “부적절하다”(peu convenable)고 여겨 돌려주었다.[15] 1865년 전직 터키 외교관 할릴 베이가 이를 구입해 자신의 에로틱 회화 컬렉션에 추가했다.[16]
에드가 드가는 《터키탕》을 1855년 만국 박람회에 전시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따른 반응은 엇갈렸다. 예를 들어 폴 클로델은 이를 “구더기로 가득 찬 케이크”에 비유했다.[17] 20세기 초, 후원자들이 이 작품을 루브르에 기증하려 했으나 박물관 이사회는 두 차례 거부했다.[18] 뮌헨 국립 컬렉션이 이를 매입하겠다고 나서자, 루브르는 마침내 1911년에 ‘루브르 박물관 친구 협회’의 기부 덕분에 작품을 받아들였다.[18] 이때 후원자 모리스 페나유는 이 목적을 위해 15만 프랑을 3년간 무이자로 빌려주었다.
유산
[편집]《터키탕》은 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펠릭스 발로통의 1907년 작품 《터키탕》,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타마라 드 렘피카의 1922년 작품 《목욕하는 여인들》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19] 특히 1960년대 이후 수많은 차용을 통해 그 영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앵그르의 《터키탕》에 대한 가장 뚜렷한 오마주로는 마르시알 레이스의 《메이드 인 재팬, 터키풍의 믿을 수 없는 그림》(1965),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리볼버 I》(1967), 해리 내들러의 《터키탕》(1968), 그리고 팝 스타일의 로버트 발라의 《앵그르 이후의 터키탕》(1970) 등이 있다.[19]
수많은 작가들이 이를 참조했기 때문에, 페루 태생 화가 헤르만 브라운-베가는 앵그르를 고전과 현대 회화 사이의 중추적 인물로 주목하게 되었다.[20] 그는 1972년 뉴욕 러너-헬러 갤러리에서 전시하기 위해 15점의 변주 연작 《뉴욕의 터키탕》을 제작했다.[21] 브라운-베가는 앵그르의 그림을 현대적 맥락으로 옮겨와, 뉴욕의 일상 장면이나 거리, 해변 속에 앵그르의 목욕하는 여인들을 배치하거나, 우유 상자, 신문 등 현대적 요소로 둘러싸여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시도는 고전 명화의 유산이 현대 미술에서 어떻게 계승되는지 탐구하는 그의 작업의 일부였다.[22] 《카라암바!》(Caramba!)라는 작품에서 그는 벨라스케스, 고야, 렘브란트, 앵그르, 세잔, 마티스, 피카소의 후계자임을 선언하며, 앵그르는 《터키탕》으로 대표된다.[23] 그는 때로 앵그르의 원형 구도를 활용해 예술적 계승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사회적 비판을 표현하기도 했다. 예컨대 ‘르 방 아 바랑코(앵그르)’에서는 ‘터키탕’의 고전적 인물들이 페루 원주민과 대비되며 문화적·경제적 불평등을 부각한다.[24] 그 밖에도 ‘라 빠빠이 오 방(피카소, 앵그르, 엘 그레코)’,[25] ‘르 방 아 칸톨라오 혹은 8,7 = 커튼(앵그르)’,[25] ‘에타 크리티크(앵그르, 피카소)’,[26] ‘화가와 그의 모델들(앵그르)’, ‘마티스는 가위로 색과 빛을 지배한다’ 등 여러 작품에서 ‘터키탕’은 다시 등장한다.[27][28]
1973년, 웨일스 출신 미국 페미니스트 화가 실비아 슬레이는 앵그르의 남성적 시선을 반박하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제목도 똑같이 ‘터키탕’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터키탕’은 성별이 뒤바뀐 것으로, 나체의 남성들이 등장하며 일부는 앵그르 원작 속 여성들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29]
각주
[편집]- ↑ 가 나 다 “The Turkish Bath”. 《Louvre》. 2018년 7월 18일에 확인함.
- ↑ Rosenblum, Robert (2024). 〈Ingres's Portraits and their Muses〉. Tinterow, Gary; Conisbee, Philip. 《Portraits by Ingres: Image of an Epoch》.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of Art. 128쪽.
- ↑ Magi, Giovanna (1998). 《The Grand Louvre and the Musée D'Orsay》. Casa Editrice Bonechi. 50쪽.
- ↑ Loughery, John (2002). “The Romantic Impulse”. 《The Hudson Review》 54 (4): 645–652. doi:10.2307/3853323. ISSN 0018-702X. JSTOR 3853323.
- ↑ Hagen, Rose-Marie; Hagen, Rainer (2000). 《Les dessous des chefs-d'oeuvre》. Köln: Taschen. 410–415쪽.
- ↑ Pach, Walter (1973). 《Ingres》. New York: Hacker Art Books. 158쪽.
- ↑ Rosenblum, Robert (2024). 〈Ingres's Portraits and their Muses〉. Tinterow, Gary; Conisbee, Philip. 《Portraits by Ingres: Image of an Epoch》.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of Art. 128쪽.
- ↑ Rosenblum, Robert (2024). 〈Ingres's Portraits and their Muses〉. Tinterow, Gary; Conisbee, Philip. 《Portraits by Ingres: Image of an Epoch》.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of Art. 128쪽.
- ↑ Hagen, Rose-Marie; Hagen, Rainer (2000). 《Les dessous des chefs-d'oeuvre》. Köln: Taschen. 410–415쪽.
- ↑ 《Catalogue de l'exposition du Louvre: Le Bain turc d'Ingres》. Paris. 1971. 4–5쪽.
- ↑ Hagen, Rose-Marie; Hagen, Rainer (2000). 《Les dessous des chefs-d'oeuvre》. Köln: Taschen. 410–415쪽.
- ↑ Montagu, Lady Mary (1981). 《L'islam au péril des femmes, une Anglaise en Turquie au XVIIe siècle》. Paris. 133쪽.
- ↑ Yeazell, Ruth Bernard (Spring 1994). “Public Baths and Private Harems: Lady Mary Worley Montagu and the Origins of Ingres's Bain Turc”. 《Yale Journal of Criticism》 7: 116.
- ↑ Ali, Isra (2015). "The Harem Fantasy in Nineteenth-Century Orientalist Paintings". Dialectical Anthropology. 39 (1): 33–46.
- ↑ Hagen, Rose-Marie; Hagen, Rainer (2000). 《Les dessous des chefs-d'oeuvre》. Köln: Taschen. 410–415쪽.
- ↑ Haskill, Francis (1982). “A Turk and His Pictures in Nineteenth-Century Paris”. 《Oxford Art Review》 5: 40–47. doi:10.1093/oxartj/5.1.40.
- ↑ Hagen, Rose-Marie; Hagen, Rainer (2000). 《Les dessous des chefs-d'oeuvre》. Köln: Taschen. 410–415쪽.
- ↑ 가 나 . Taschen GmbH.
|제목=
이(가) 없거나 비었음 (도움말) - ↑ 가 나 (프랑스어). Mengès/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
|제목=
이(가) 없거나 비었음 (도움말) - ↑ Case, William D. (November 1972). “Herman Braun”. 《Arts Magazine》: 76.
Braun has concluded that Ingres is, in a sense, the principal figure behind contemporary art, a pivotal figure who marks the break with the old, established language of art and heralds the period of invention that has continued to our own day. Le Bain Turc first attracted his attention precisely because so many other artists has made reference to it
- ↑ “Braun en el "Baño Turco"”. 《El Comercio》 (스페인어) (Lima).
- ↑ “Herman Braun”. 《Art News》: 73. December 1972.
At Lerner-Heller, painter Herman Braun showed a series of works exploring the art historical idea that "modern art is a direct and lineal descendant of all so-called classic art that preceded it." Braun explored this concept with a group of paintings, painted constructions and sketches all based, to varying degrees, on Ingres' famous Turkish Bath. In Braun's 15 incarnations of the latter the viewer saw Ingres' voluptuous female bathers at the beach, on the streets of New York [...], and in some Surreally updated versions of their natural Turkish bath habitat, complete with pop/style cartons of milk and yesterday's newspaper.
- ↑ Chalumeau, Jean-Luc (2004). 《La Nouvelle Figuration》 (프랑스어). Paris: Cercle d’Art. 169쪽. ISBN 978-2702206980.
Caramba!, tableau de groupe, réunion de famille. Dans le fond à droite, expliqua-t-il, à côté de la porte, un pan de mur recouvert d'un papier peint de Matisse, sur lequel on peut voir accroché Le Bain Turc d'Ingres.
- ↑ Chalumeau, Jean-Luc (2008). 《Coca-Cola dans l'art》 [Coca-Cola in art] (프랑스어). Paris: éd. Du Chêne. 180–185쪽. ISBN 978-2-842-77916-0.
Ingres et Coca-Cola représentent tous deux, pour Braun-Vega, des « colonisations culturelles » : il laisse entendre quelle est celle, à tout prendre, qui aurait ses préférences. Mais les choses sont ainsi (es así) et il n'y a pas à y revenir. En tant qu'artiste, il « métisse » les deux colonisations culturelles pour en donner une version synthétique personnelle : une nouvelle culture en somme.
- ↑ 가 나 Salmon, Dimitri; Cuzin, Jean-Pierre; Viguier-Dutheil, Florence (2008). 《Ingres et les modernes》 (프랑스어). Montauban: Somogy. 215, 264–265쪽. ISBN 978-2-7572-0242-5.
- ↑ Braun-Vega, Herman (2000). “Etat critique (Ingres, Picasso)”. 《braunvega.com》 (Acrylic on canvas, 162 x 130 cm). 2025년 4월 18일에 확인함.
- ↑ Capdevila, Lauro (November–December 2012). “Entretien avec le critique Lauro Capdevila”. 《Espaces Latinos》 (273): 18.
- ↑ Noorbergen, Christian (2018). 《Herman Braun-Vega : Fenêtres d'art, d'âme et de vie》 (exhibition catalog). Paris: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Peru – Representation of Peru to UNESCO. 78쪽.
- ↑ Sleigh, Sylvia (2012). “Turkish bath: the human figure and artistic process”. University of Chicago, via YouTube. 2025년 4월 23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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