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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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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16년 전 (Uoyylno님) - 주제: 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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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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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 (소설인물) 링크를 클릭하면 관평으로 넘어가는데요(넘겨주기). 정작 관평 문서에는 관정이 왜 소설인물인지에 대한 소개가 없으며 관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본문대로라면 관정이 소설인물이 아니고 실존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넘겨주기 문서를 없애든지, 관정이 왜 소설인물인지 대한 내용이 좀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cott Rhee (토론) 2009년 5월 8일 (금) 14:24 (KST)답변

관평, 관흥, 장포의 출생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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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제전(獻帝傳) - 여포가 포위되었을 때, 관우(關羽)는 두씨를 아내로 삼고 싶다고 조조에게 여러 차례 청하자, 조조는 두씨가 얼마나 미인인지 관심이 생겼다. 그러나 여포를 멸망시킨 이후, 두씨가 미인임을 알게 된 조조는 (관우와의) 약속을 어기고 그녀를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 정사 삼국지 위서 명제기 주석 헌제전

《화양국지》의 기록에서는 관우가 두씨를 청하면서 자기 처(아내)가 자식이 없다고 덧붙인다. (初,羽隨先主從公圍呂布於濮陽,時秦宜祿為布求救於張楊。羽啟公:「妻無子,下城,乞納宜祿妻。」公許之。及至城門,復白。公疑其有色,李本作他。自納之。)

관흥의 자는 안국(安國)이고 어려서 영문(令問-명성, 좋은 평판)이 있었고 승상 제갈량은 그를 심히 기이(器異-높이 평가하고 중시함)하게 여겼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시중(侍中), 중감군(中監軍)이 되었다가 몇 해 뒤에 죽었다. - 정사 삼국지 촉서 관우전

당초 건안 5년(200년), 하후패의 사촌여동생(從妹)이 13세일 때 고향 집에 있었는데, 땔나무를 줏으러 나갔다가 장비에게 사로잡혔었다. 장비는 그녀가 양가의 딸임을 알아채고 아내로 삼아 딸을 낳았는데 뒤에 그 딸이 유선의 황후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하후연이 죽었을 때 장비의 처는 청하여 하후연을 매장했었다. - 위략

종합하면 여포가 처형당하는 198년 음력 12월까지 관우의 아내가 자식을 얻지 못하였는데 관흥은 20세의 나이에 촉한의 시중과 중감군에 임명됐는데 촉한이 중감군이란 관직을 설치한 년도는 221년(촉한 장무 원년)이므로 종합하면 관평은 199~201년 사이에 출생했고 관흥은 202년에 출생했고 그리고 장포는 200년 이후에 출생했다. 촉서 장비전에 의하면 장비의 자식들(아들 2명, 딸 2명)중에 장포가 가장 먼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장비가 하후씨와 결혼한것이 200년이므로 장포는 정황상 200~201년 사이에 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실제 역사에서도 장포가 관흥보다 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