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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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편집]- "백제 전성시대에는 강병이 100만이었다. 남으로 월을 치고 북으로는 유, 연, 제, 노를 경계로 하였다. 커다란 중원국가 건설을 추진하였다." 『삼국사기』 「최치원전」
사용자:WonYong님이 올린 이 삼국사기 인용은 인위적으로 내용을 조작하기 위해 오역한 것입니다.
-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한 군사가 백만이어서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幽州)의 연(燕)과 제(齊), 노(魯)나라를 휘어 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습니다. -- 삼국사기 권46 최치원전 (원문의 한 글자가 euc-kr서포트가 안되서 이미지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실제 원문의 주어는 분명 '고려'와 '백제'가 전부 제기되어 있어 이 인용은 백제만에 대한 내용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인용들도 내용상 validity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삭제했습니다. 또한 원문에서도 위 내용은 역사서로서의 삼국사기의 일부가 아니라 최치원 개인의 서한에서 인용한 것으로, 사료로서 가치가 떨어집니다. -- Caffelice 2006년 1월 12일 (목) 15:55 (KST)
- 최치원 서한의 내용이 사료로서 가치와 진실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검증할 다른 기록이나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 이전에는 역사서(삼국사기)에 실렸다해서 사실(史實)은 아니고, 교차 검증이 있기 전까지는 검토할 대상일 뿐입니다. 원용님이 저 내용을 사실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사실이냐 여부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남경학살과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인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죠. 일본서기부터 역사 왜곡을 당연시 해온 일본이긴 합니다만.--WaffenSS 2006년 1월 12일 (목) 16:40 (KST)
쿠다라
[편집]- [1]에서 옮겨옴. --Puzzlet Chung 2007년 1월 21일 (일) 02:30 (KST)
먼저, 백제의 고유명칭에 대해서
일 본어의 쿠다라가 우리말 큰나라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런 표현은 삼갔으면 좋을 것 같아, 참고로 아직 만주와 남시베리아에는 고구려 또는 고려라는 이름과 비슷한 코리라는 종족이 있으며, 백제의 다른 면칭인 부여(남부여)와 비슷한 부리앝이라는 사람들이 있고, 일본의 쿠다라라는 명칭과 관련하여 쿠다리라는 종족이 적은 수나마 아직 존재하고 있읍니다. 이런데도 우리말 큰나라와 관련이 있을까요?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Balgunnuri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 더구나 금강 유역에는 "구다라"라는 나루터가 있습니다. 이것도 일본어 어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신전도시이자 무역항이었던 "아이기프토스"(창조신 프타하의 성역)가 "이집트"로 바뀌었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일본어 "쿠다라"의 어원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보아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Knight2000 2007년 4월 17일 (수) 23:34 (KST)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일부를)
[편집]덧붙여 간무 천황의 어머니인 다카노노 니이가사(高野新笠)는 무령왕을 조상으로 하는 도래인 야마토(和)씨의 출신이다. 라는 내용은 현재 천황이 인정 했다고 하는데 여기의 내용에는 필요 없는 내용 같습니다.--Nt (토론) 2007년 5월 26일 (일) 15:53 (KST)
-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에서 유의미한 내용이죠. 충분히 넣을 가치가 있습니다.--Hun99 2007년 5월 26일 (일) 15:55 (KST)
- 제 생각에는 백제#백제의 쇠망 항목에 넣을 내용이 아니라 따로 항목을 만들어야 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Knight2000 2007년 8월 3일 (금) 17:27 (KST)
요서정벌 관련 내용 삭제 사유
[편집]한편 삼국사기는 지리지의 백제편에 신당서와 구당서를 인용해 백제의 서쪽 경계가 월나라지역에 이름을 들어서 사실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출처 : 新唐書云 百濟西界越州, 南倭, 皆踰海, 北高麗37卷-志6-地理4-05
위 내용이 추가되었으나, 저 문장은 이미 자체적으로도 사실이 아님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서쪽 경계가 越州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바로 다음에는 남쪽은 倭라고 서술하고 있지요. 또한 그 다음에는 "모두 바다 너머이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왜가 백제와 바다를 격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저 문장은 기본적으로 바다를 건너서 어떤 지역과 마주하고 있다는 내용이지 그 지역이 영토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월주나 혹은 왜까지 영토라고 해석한다면 바로 그 다음줄의 북쪽의 고구려 역시 백제의 영토라고 해석해야 올바릅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백제의 영토가 아님이 분명하므로 월주나 왜 역시 영토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삭제하였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해당 구절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른 것으로 기본적인 출처는 네이트 한국학에 공개된 삼국사기 번역본을 출처로 하였습니다. --Xakyntos (토론) 2009년 11월 19일 (목) 15:53 (KST)
중립성 문제로 삭제합니다.
[편집]백과사전적 서술도 아니고 내용도 중립성에 문제가 있어 삭제하였습니다. 이곳에 보존합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3월 13일 (토) 20:26 (KST)
[참고]백제가 당연히 우리민족이고 우리역사이지만 현재, 중국은 우리의 역사마저 삼키려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뿐만아니라 백제마저도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2]
中国の教科書では、高等教育出版社の『世界古代史』は、古朝鮮・高句麗・扶余は韓国の歴史ではないと、韓国史の始まりは統一新羅からとの主旨で記述しており、中国の100余りの大学で使用されている福建人民出版社の『中国古代史』では、扶余・高句麗・沃沮・穢貊は中国・漢代の東北地区の少数民族だと記述している
[내용요약]중국 고등교육출판 교과서 고조선,고구려,부여 한국의 역사가 아니다. 통일신라부터 한국의 역사다. 100여개가넘는 대학에서 채택, 고구려,부여,옥저, 예맥은 동북지구의 소수민족으로 기술.
또한 가야-신라(변한-진한) 사람들만을 “한국인”으로 정의를 하고, 고구려-백제인은 (부여) 퉁구스인으로 정의한다. 고구려를 한국 역사에서 제거하고 한국인을 한반도 남부의 삼한 사람들로 한정시키려는 것은 일본 또한 동일하다.
- 현재 일본 위키에 게재된 내용입니다。참고 바랍니다。또한 중립성에 문제에 대한 문구를 수정하였습니다。 수정후에도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면 삭제 무방합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123.230.178.91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 다른분이 내용도 남기않고 삭제했네요。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켜줬으면 좋겠건만--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123.230.178.91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해당 내용은 중립성도 문제이지만, 백과사전적 서술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입니다. 카테고리도 맞지 않고, 내용도 백과사전의 문체가 아닙니다. 게다가 사실 독자연구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백제 문서에 중국의 한국사 흡수 기도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는 것은 애시당초 주제 자체가 틀린 것이기도 합니다. 해당 내용을 서술하고 싶으시다면, 백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부분은 모두 제외하고, 문장과 내용을 좀 더 가다듬어서 별도의 카테고리를 신설하여 서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0년 3월 13일 (토) 21:45 (KST)
화천서 200년대 대규모 백제마을 유적 발굴
[편집]화천서 200년대 대규모 백제마을 유적 발굴, 강원도 화천 일대까지 진출한 증거입니다. Komitsuki (토론) 2010년 9월 16일 (목) 16:37 (KST)
일본 = 백제 ???
[편집]“일본은 원래 백제땅 일컫는 말이었다”, 일본의 도노 하루유키 나라대 교수의 주장입니다. Komitsuki (토론) 2012년 8월 19일 (일) 20:32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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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종족 구성 교차검증 토론
[편집]부여 종족 구성에 대한 기존 문서는 한국 고고학계의 거목인 노중국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였으며, 그 논문은 기존의 학설들에 근거하여 종족 구성을 재구성한 논문입니다. 그런데 교차검증이 안되었다는 이유로 문서가 통채로 되돌려 졌는데, 교차 검증이 안된 부분만을 되돌리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상술했듯이 일반적인 통설에 근거한 논문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교차검증이 된 논문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노중국 교수 개인의 견해가 있다면 그부분만 삭제하는것이 맞다고 봅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2일 (월) 17:34 (KST)
- 백제 종족이 아니라 부여 종족 구성을 언급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2일 (월) 19:30 (KST)
- 일단 각설하고 핵심 문제부터 짚어드리겠습니다. 지금 종족 구성이라고 하셨는데, 백제의 경우 '민족' 구성 집단이 맞겠죠. 표현 자체부터 오류가 있다고 보고요. 둘째, 개인의 논문이 신뢰할 수 있다는 근거로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옮겨서 올리는 것은 위키백과에서 권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일단 노중국 교수가 '권위가 있다'라 할지라도, 그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위키백과:저작권'에 어긋나는 것이며, 해당 내용이 사실이 아닌 통설에 의거한 논문을 그대로 가져다는 쓰는 것은 위키백과:비주류 이론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키백과의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 정책에 저촉될 수도 있습니다.
- 사용자님의 주 기여가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는 것임은 압니다만, 해당 학설들이 제가 링크를 걸어놓은 정책에 위배되지 않는지 살피면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는 모든 가설이나 학설을 다 수용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2일 (월) 19:45 (KST)
- 부여 종족구성은 오타입니다. 백제 종족구성에 대한 문서로 정정합니다.
- 노종국 교수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은 아니구요, 해당 논문 자체가 완전히 노교수만의 독단 연구가 아닌 대부분 기존 학설들을 기반으로 한 견해인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말씀하신 교차검증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되는건지 설명부탁드려도 될가요? 몇개 이상 논문이라던가 그런 기준이 있는건지요?
- 결론은 교차검증에 대한 정의가 우선 제시되어야 할것이며, 그 후 그 기준에 위배되는 문장만 삭제하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09:26 (KST)
- 위에서 이미 노중국 교수님의 논문을 그대로 가져다쓰는 것이 위키백과의 어떤 원칙에 위배되는 지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것에 대해 '교차검증'이 무엇이냐고 정의를 내려달라는 것으로 토론을 이끌어가시면 저로서도 토론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 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09:40 (KST)
- 제가 궁금한 것은 위키백과의 많은 문장들이 1~2명의 인용, 혹은 전혀 출처 없는 서술도 많습니다. 제가 인용한 "百濟의 姓氏와 貴族家門의 出自"의 경우 KCI 피인용 횟수 : 26 나 될 정도로 다수가 받아들이는 학설로 판단되어 서술한 것입니다.
- 내용을 보아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사서나 통설을 인용하여 분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어떠한 부분에 대한 교차검증이 안된 것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셔야 그 부분을 수정해서 반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0:00 (KST)
- 제가 걸어드린 링크를 읽어보셨나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0:25 (KST)
- 네 비주류이론도 아니며 독자연구는 더더욱 아닙니다. 어떤 부분에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술했다시피 피인용 횟수 26건이면 상당한 수준입니다. 참고로 KCI 기관별 피인용수 보면 1위 서울대학교가 논문 1개당 인용수가 4.58입니다. 이정도면 주류로 보아야하지 않나요?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0:43 (KST)
- 지금 이 논문 자체를 '사실'로 규정하는 것부터가 현재 토론의 핵심 원인이라고 보여집니다. 아무래도 사용자님이 교수님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일단 핵심부터 짚고 가죠. 첫째, 통설이라고 해서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위 통설이라고 믿었던 고이왕-근초고왕 또는 온조왕 시기 마한 병합설의 경우, 유물 조사와 기록 대조를 통해 최소 5세기에서 최대 6세기까지 마한이 한반도에 존속했다는 것에 힘이 실리고 있죠. 이것만 봐도 학설은 언제든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통설이라고 할지라도요.
- 둘째, 교차검증에 대해 자꾸 대한민국 사학계로 한정지으시는데, 여기는 '한국어판 위키백과'이지, '한국 위키백과'가 아닙니다. 일본이나 중국 쪽에서 백제 민족 구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있을 수 있고, 서양 쪽에서 백제에 대하여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놓은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차검증이란 이런 모든 걸 꼼꼼이 분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 한국어판의 경우, 그 정도로까지 '충실하게' 검토하시는 분들의 글을 보고 싶으시면 위키백과:좋은 글과 위키백과:알찬 글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셋째, 인용 수를 가지고 이야기하시는데, 그 논점이라면, 일제 시대 임나일본부설이나 중국의 동북공정도 충분히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저명성과 용인 가능성을 보시면 "위키백과는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는 공간도 아니고, 학계라든지 하는, 어떤 특정한 체제의 구성원 일반이 가진 편견을 반박하는 곳도 아니고, 어쨌든 다른 곳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주제를 홍보하는 곳도 아닙니다"라고 명백하게 나와 있습니다. 노중국 교수님의 인용 횟수가 26건이라고 하셨는데, 그 26건의 이용 횟수가 같은 학회 또는 같은 백제사 연구 관련 논문에 인용된 것인지 아닌지는 찾아보면 금방 나옵니다.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해당 논문을 별도의 문단으로 나누어서 서술하는 것은 위키백과에서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교수님이시라면, 위키백과에서 학설을 무조건 게재하는 것보다는 위키백과의 지침과 정책에 맞는 학설이 무엇인지 검토를 하신 뒤에 학설을 올리는 걸 추천드립니다. 타 사용자들과 협업하시는 것을 우선 권장드리고, 위키백과에는 역사 마니아 분들도 많으니 그 분들께 조언을 구하는 것도 권장드립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1:20 (KST)
- 자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 우선 저는 교수가 아닌 점을 말씀드리고요.
- 간략하게 한 가지만 더 질문을 드려도될까요?
- 핵심은 사실 여부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제가 작성한 백제의 종족이 부여계, 예맥계, 한(韓)계, 한(漢)계, 왜계로 구성되어있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가 제가 처음부터 궁금했던 것이었습니다.
- 저의 질문에 귀하께서는 교차검증을 말씀하셔서 저는 압도적인 인용지수로 대신 답변한 것일 뿐 '사실여부'가 핵심이라면 더더욱 문제될게 없어보여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실이 아닌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은 삭제하면 되겠지요.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1:51 (KST)
- 핵심이 사실여부가 아니라, 사용자님이 작성하신 부분을 사실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원인이라고 밝힌 겁니다. 압도적 인용지수는 교차검증의 기준이 아니고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03 (KST)
- 사실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신 부분이 어떤 부분인가요?
- 백제가 부여계 왕족, 선주민 한족, 예족, 근초고왕 시 진출한 맥족, 낙랑군/대방군/부연의 유민 한족, 왜의 이주민 들은 각종 사서나 논문에서 인정하는 통설입니다. 어느 부분이 사실이 아닌건지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10 (KST)
- 그 부분이 사실이라고 어디서 밝히고 있는데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11 (KST)
- 각종 사서와 고고학적 증거에 기반한 논문이며 다수의 학자들이 인정하여 인용수가 많은것이겠죠.
- 그렇다면 거꾸로 사실여부를 판단하는 위키의 정책이 무엇인가요? 아시다시피 학문에서 '사실'을 단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사서의 기록도 후대에 오기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으며,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통설도 뒤집히기 일수죠.
- 말씀하시는 '사실'의 정의를 해주시면 그에 맞는 근거를 제시하겠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16 (KST)
- 논문이잖아요. 사용자님, 제가 위에서 통설이 뒤집힐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전혀 고려를 안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12 (KST)
- 통설의 의미가 뭡니까. "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설." 아닌가요. 그것이 어디에서 인정됩니까. 한국 쪽 학계에서 통용되는 거 아닌가요. 일본 쪽이나 중국 쪽 기록은 어떻게 서술되어 있던가요. 거기서도 백제가 "백제가 부여계 왕족, 선주민 한족, 예족, 근초고왕 시 진출한 맥족, 낙랑군/대방군/부연의 유민 한족, 왜의 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구체적으로 서술이 되어 있었나요.
- 당장 일본서기,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대한 기록의 정확성을 두고도 학계에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그에 기반한 사서나 논문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지금 수용하셨다, 그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16 (KST)
- 사실에 대한 정의가 '사서기록'인지? '고고학적 증명인지?', '다수의 학자가 지지하는 통설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 말씀부탁드립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18 (KST)
- 사서기록'인지? '고고학적 증명인지?', '다수의 학자가 지지하는 통설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 이건 이미 위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누차 말씀을 드렸을텐데요. 지금 여전히 사실여부가 토론의 핵심 쟁점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22 (KST)
- 그리고 백제에 대한 연구가 우리랑 비교해서 미비한 다른 나라의 학설에 없다는 이유로 통설이되는건 어불성설 같습니다. 일본 특정시대 특정사건에 대한 일본내 통설이 한국 학계에 언급이 없으면 일본 위키에 작성을 못한다는 말씀인지요?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19 (KST)
- "그리고 백제에 대한 연구가 우리랑 비교해서 미비한 다른 나라의 학설에 없다는 이유로 통설이되는건 어불성설 같습니다. 일본 특정시대 특정사건에 대한 일본내 통설이 한국 학계에 언급이 없으면 일본 위키에 작성을 못한다는 말씀인지요?" 이건 또 무슨 논리이신지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21 (KST)
- 리고 백제에 대한 연구가 우리랑 비교해서 미비한 다른 나라의 학설에 없다는 이유로 통설이 안되는건 어불성설 -> 이 문장인데 오타였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22 (KST)
- 그러니까 왜 그런 말씀이 나오냐고 지금 묻고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일본 위키가 왜 등장하는지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23 (KST)
- 귀하께서 문장을 삭제하는 코멘트로 "교차검증"이 안되어서 삭제한다하셔서 제가 교차검증의 정의룰 물었더니 그건 중요하지 않고 "사실여부"가 중요하다하셔서 "사실여부"에 대한 정의가 서서인지 고고학증명인지 등을 물어보았는데 이번에는 사실여부가 토론의 쟁점이냐고 물으시네요.
-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것 같아 간단히 질문드립니다.
- 제 서술을 삭제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 그 이유에 대한 정의 또는 충족조건을 알려주시면,
- 제가 그에 맞게 재 서술 하겟습니다.
-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26 (KST)
- 노중국 교수의 '논문'을 아무런 '교차검증' 및 비판 없이 '사실'로 치부하고 문서를 게재하셨습니다.
- 논문 인용은 가능하나, 위키백과 정책상 논문을 '사실처럼' 서술하는 것은 독자 연구 위배 + 논문 내용을 복붙하는 것은 저작권 위배에 해당합니다.
- 사용자님이 여전히 첫 생각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서술을 권장드리지 않는다고 이미 한 차례 언급하셨습니다.
-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30 (KST)
- 노중국 교수의 '논문'을 아무런 '교차검증' 및 비판 없이 '사실'로 치부하고 문서를 게재하셨습니다. -> 그렇다면 이러한 견해도 있다 라는 식으로 서술하면 되는건지요?
- 문 인용은 가능하나, 위키백과 정책상 논문을 '사실처럼' 서술하는 것은 독자 연구 위배 + 논문 내용을 복붙하는 것은 저작권 위배에 해당합니다. -> 저는 '사실처럼'이 아니라 '사실'이며 그 이유로 '사서기록 인용', '고고학적 증명', '다수 학자지지'를 들었습니다. '사실처럼'이 '사실'로 인정받으려면 이것 말고 추가로 필요한 조건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32 (KST)
- 1번은 그대로 가시면 될 것 같고, 2번의 경우에는 지난번 이사지왕 토론과 동일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사실처럼 서술하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요. 왜 해계, 왜계 구성원이 있다,라고 서술하시죠? 왜계, 맥계, 대방계가 구성원이었다고 '추정된다'라고 서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노중국 교수님의 논문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고고학적 결론 아닌가요? 이게 사실이라고 해버리면, 다른 모든 반박 논문들은 비주류가 되는데, 그러면 이건 사용자님이 '노중국 교수의 논문'= '사실'이라고 독자적으로 생각하신 것 아닌가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38 (KST)
- 제가 아는한 백제의 종족 구성이 부여, 예, 맥, 한, 한, 왜에 대해 반론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서에도 명시된 구성원들이구요. 단순히 논문을 인용한 이유로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짓는것이 저는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42 (KST)
- 지속적으로 본인이 '아는 한'과 '사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사서에 대한 신빙성은 어떻게 증명하실 겁니까.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49 (KST)
- 그래서 제가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 '노중국 교수의 논문'= '사실'이라고 독자적으로 생각하신 것 아닌가요?라고 질문을 하셔서 저는 아닙니다. '사서기록', '고고학'적으로 검증된 통설입니다 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부분에 대해서 부정하시면 세상에 '통설'은 없는건가요? 있다면 '통설'이라고 서술하려면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건가요?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54 (KST)
- 구체적으로 한 단락(부여계)를 가지고서 논의를 해보는 것이 토론에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 우선
- 백제의 왕족이다. 부여로부터 백제로 이어진 계통을 살펴보면, 우선 온조 시조설에 의하면 북부여(北扶餘) 난을 피하여 온 추모(鄒牟)가 졸본부여 지역에 고구려를 건국하였고 졸본부여에서 남하한 추모의 아들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백제를 건국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비류 백제설에 의하면 원래 북부여의 왕 해부루가 천제의 아들임을 칭하는 해모수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가섭원으로 가서 동부여의 시조가 되었는데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의 아들 비류가 미추홀에 백제를 건국한 것으로 나온다. 이들 두 세력은 백제의 가장 강력한 왕족으로 군림한다.
- 이 서술이 문제가 있는지요?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57 (KST)
- 온조 시조설에 의하면, 이라고 나와 있잖아요. 해당 문단 역시 학설에 의거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비류 백제설. 이건 비류백제라는 건국 자체가 논란이 분분한 가설인데, 이걸 아무런 의미 없이 수용하신다는 것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사용자님의 자료 수용 방식에 지적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더 이상 백제 토론란이 아닌 사용자 토론란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3:10 (KST)
- 주요성씨는 아래와 같다. -> 부여계 성씨로는 이래와 같은 견해가 있다.[노종국, 0000] 이렇게 바꾸면 되는건지요?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58 (KST)
- 위 두부분에 대해 답변을 주시면 다른 문단도 동일한 원칙으로 재서술 하겠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58 (KST)
의견 역사 전공자이며 내용을 읽어보던 중 현 토론이 이전에 제가 참여했던 토론과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의견을 남깁니다.
- 분쟁이 붙은 관련 서술을 확인해보니 전반적으로 사료의 인용이 노종국 교수님의 논문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논문은 저자 개인의 주장과 생각을 논리에 맞게 풀어서 일관성 있고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쓴 글로 정설이 아니나 해당 서술은 교수 1분의 의견에 치중하여 작성되어 있으며 또 "노종국은 ~라고 주장했다."와 같은 간접인용이 아닌 사실을 전달할 때 사용하는 평서문으로 작성되어 백:출처와 백:비중의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 이 부분은 필히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23:34 (KST)
-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출처에 따라 "00사서에는 ~게 기록되어있다" 라던지 "000은 ~한 견해를 제시한바 있다" 등의 문장으로 서술하고, 비중 부분은 사서의 기록이나 다수의 주장은 비중을 주고, 1인 의견은 낮추면 되겠지요?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08:43 (KST)
- 저는 논문은 저자의 가설을 검증하려는 글이라고 보기 때문에 아무리 쪽수가 많든 교수님의 학문적 권위가 높든 그 자체로는 정설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키백과에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같은 사료 기록은 작성할 수 있지만 논문을 본문에 작성하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0:43 (KST)
- 그러나 위키백과에서는 사서만을 신뢰할수 있는 출처로 보지 않습니다. 위키정책에 부합하는 신뢰할만한 출처에 기반한 글은 작성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의견 부탁드립니다.
- 대체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 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그리고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입니다. 통상적으로 사실의 확인, 법적인 문제의 검토, 특정한 일에 대한 증거와 논의를 세밀하게 검토를 한 출처일수록 더욱 신뢰할 수 있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1:11 (KST)
- 학술지의 한계에 관해서는 앞서 설명을 드린 바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다른 언어판들(특히 영어판)의 역사 문서들을 찾아볼 경우 문서들에서는 사료나 역사서에 적힌 기록들을 주로 기록하지 논문에 있는 내용(주장)을 정설인 양 출처로 넣으면서 기록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도 학계에 있는 입장이다보니 소위 '논문만능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1:24 (KST)
- 다른 언어 위키가 기준이 될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위기정책이 기준이 되어야할것입니다.
- 말씀하신대로 논문 만능주의는 문제라는데 동의합니다.
- 그러나 위키 지침에서도 "위키백과는 전 세계의 과학자, 학자, 연구자들이 작성한 확립된 문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라고 밝혔듯이 어쩔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수설과 소수설의 비중을 합리적으로 분배해서 서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1:46 (KST)
- 학술지의 한계에 관해서는 앞서 설명을 드린 바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다른 언어판들(특히 영어판)의 역사 문서들을 찾아볼 경우 문서들에서는 사료나 역사서에 적힌 기록들을 주로 기록하지 논문에 있는 내용(주장)을 정설인 양 출처로 넣으면서 기록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도 학계에 있는 입장이다보니 소위 '논문만능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1:24 (KST)
- 저는 논문은 저자의 가설을 검증하려는 글이라고 보기 때문에 아무리 쪽수가 많든 교수님의 학문적 권위가 높든 그 자체로는 정설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키백과에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같은 사료 기록은 작성할 수 있지만 논문을 본문에 작성하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0:43 (KST)
-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출처에 따라 "00사서에는 ~게 기록되어있다" 라던지 "000은 ~한 견해를 제시한바 있다" 등의 문장으로 서술하고, 비중 부분은 사서의 기록이나 다수의 주장은 비중을 주고, 1인 의견은 낮추면 되겠지요?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08:43 (KST)
- 위 두부분에 대해 답변을 주시면 다른 문단도 동일한 원칙으로 재서술 하겠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58 (KST)
- 지속적으로 본인이 '아는 한'과 '사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사서에 대한 신빙성은 어떻게 증명하실 겁니까.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49 (KST)
- 제가 아는한 백제의 종족 구성이 부여, 예, 맥, 한, 한, 왜에 대해 반론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서에도 명시된 구성원들이구요. 단순히 논문을 인용한 이유로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짓는것이 저는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42 (KST)
- 1번은 그대로 가시면 될 것 같고, 2번의 경우에는 지난번 이사지왕 토론과 동일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사실처럼 서술하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요. 왜 해계, 왜계 구성원이 있다,라고 서술하시죠? 왜계, 맥계, 대방계가 구성원이었다고 '추정된다'라고 서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노중국 교수님의 논문이 사실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고고학적 결론 아닌가요? 이게 사실이라고 해버리면, 다른 모든 반박 논문들은 비주류가 되는데, 그러면 이건 사용자님이 '노중국 교수의 논문'= '사실'이라고 독자적으로 생각하신 것 아닌가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38 (KST)
- 그러니까 왜 그런 말씀이 나오냐고 지금 묻고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일본 위키가 왜 등장하는지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23 (KST)
- 리고 백제에 대한 연구가 우리랑 비교해서 미비한 다른 나라의 학설에 없다는 이유로 통설이 안되는건 어불성설 -> 이 문장인데 오타였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22 (KST)
- "그리고 백제에 대한 연구가 우리랑 비교해서 미비한 다른 나라의 학설에 없다는 이유로 통설이되는건 어불성설 같습니다. 일본 특정시대 특정사건에 대한 일본내 통설이 한국 학계에 언급이 없으면 일본 위키에 작성을 못한다는 말씀인지요?" 이건 또 무슨 논리이신지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21 (KST)
- 사실에 대한 정의가 '사서기록'인지? '고고학적 증명인지?', '다수의 학자가 지지하는 통설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 말씀부탁드립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18 (KST)
- 그 부분이 사실이라고 어디서 밝히고 있는데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11 (KST)
- 핵심이 사실여부가 아니라, 사용자님이 작성하신 부분을 사실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원인이라고 밝힌 겁니다. 압도적 인용지수는 교차검증의 기준이 아니고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2:03 (KST)
- 제가 걸어드린 링크를 읽어보셨나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10:25 (KST)
- 위에서 이미 노중국 교수님의 논문을 그대로 가져다쓰는 것이 위키백과의 어떤 원칙에 위배되는 지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것에 대해 '교차검증'이 무엇이냐고 정의를 내려달라는 것으로 토론을 이끌어가시면 저로서도 토론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 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3일 (화) 09:40 (KST)
가독성을 위해 문단을 내옵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1:25 (KST)
- @M.W.Kang43 가독성을 위해 여기 아래로 답변을 옮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1:59 (KST)
- "위키백과는 전 세계의 과학자, 학자, 연구자들이 작성한 확립된 문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이 새로운 학설들이 제기될 때마다 모두 그 학설들을 기록해야 한다거나 다수설, 소수설을 모두 기록해야 한다거나와 같은 것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수설과 소수설을 어떻게 나누는지도 위험하다고 보는 게, 단순히 논문의 개수나 인용 횟수, 그 분야의 권위자냐 아니냐만으로 다수와 소수를 구별할 수 없으며 다수설인지, 소수설인지는 그것을 작성하는 작성자의 주관이 크게 작용하기에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학 분야에서 논문의 내용을 소위 정설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 간주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왕족이 부여계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백제민의 구성이 부여, 예, 맥, 한, 한, 왜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2:33 (KST)
- 백제 주민민구성이라는 문단에 부여, 예, 맥 한, 한 왜를 서술하는데 문제는 없을것 같습니다.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 부여 : 백제의 선조가 부여라는 기록은 삼국삭, 위서, 주서, 북사, 수서, 신당서 등 여러 사서를 통해 확인됩니다.
- 예, 맥, 한 : 삼국지를 비롯한 여러 사서에서 한반도 중부, 남부 지역에 삼한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만주~경기북부에 걸쳐 예/맥이 거주했음은 거의 통설임에 귀하께서도 동의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 한(漢) : 수서 백제전에 "사람들은 신라·고구려·왜 등이 섞여 있으며, 중국사람도 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낙랑/대방인의 이주(윤용구, 2007), 북연 유민의 유입(정재윤 2012, 노중국 2007) 등을 소수 견해로 서술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듯 합니다.
- 왜 : 『일본서기』에는 왜계 출신자로서 백제의 관료로 복무한 자들이 다수 확인되며, 왜인과 한반도에 거주하던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식을 '한자(韓子)'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음을 서술하면 무리는 없을듯 합니다.
- 의견 부탁드립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3:21 (KST)
- 옐로터틀 님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에 따르면, 위키백과는 학술을 두고 그것이 맞는지 다투는 공간이 아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간단하게 논문이 얼마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인지, 그리고 그 통설이 지금 학계에서도 유효한지, 무엇보다도 이것이 백제 문서에 별도로 쓰일 정도로 비중이 있는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 참고로 수서, 위서, 주서, 삼국사기의 경우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 지에 대한 논의가 2000년대 이후 여러 차례 있었으며, 일본서기는 8세기 이전까지의 기록은 역사 왜곡이 심하다는 것이 2020년대 학계에서 수용하고 있는 설입니다. 통설이나 노중국 교수 및 관련 학계 논문이 아닌, 위키백과의 원칙과 지침에 의거해, 해당 사항이 위키백과 내에 쓰였을 때 독자연구, 중립성 문제로 비칠 수 있는 내용인지 다시 한 번 검토해주시기를 양측 모두에 요청하는 바입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9:16 (KST)
- 해당 내용이 논문과 같은 2차 사료만이 아닌 1차 사료에도 언급되어 있는 점은 문서에 적힐 수 있는 당위성을 어느 정도 보충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본서기》의 경우 고대 한반도 역사를 참조할 때 신뢰도가 높지는 않은 사료이기 때문에 이 사료는 비판적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 "낙랑/대방인의 이주(윤용구, 2007), 북연 유민의 유입(정재윤 2012, 노중국 2007) 등"을 언급하는 부분은 "●●는 (□□에 관헤) ~~라고 언급했다." 또는 "☆☆에 대해서는 ~~한 견해가 있다."와 같은 식으로 그것이 확실시된 정설이 아닌 가설이자 개인의 견해임을 명확히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 다른 언어 위키들을 포함해 한국어 위키백과에도 논문과 같은 자료 인용에 관해 기준들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는 NZ 토끼님들이 제시한 정책, 지침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04:08 (KST)
- 네 저역시도 일본서기 등 신뢰성에 논란이 있는 일부 사료나 소수의 견해는 ~에는 ~라고 기록되어있다. ~는 ~라는 견해를 제시한바 있다. 등의 서술이 맞다고 봅니다. 귀하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며 이에 맞게 문서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성 후에도 추가 의견 주시면 협의하여 개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08:44 (KST)
저는 지금 문서 작성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이런 식으로 문서 서술을 이어가겠다고 하는 것은 토론 협업에 위배된다고 보입니다. 위키백과는 소수 학설을 게재하거나, 본인의 사관을 기록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노중국 교수의 논문을 어영부영 기재하려는 시도는, 과거 이사지왕 토론에서도 문제로 지적된 바 있습니다.이 모든 토론의 전제조건은, 2005년에 서술된 '노중국 교수'의 논문이 통설이다 라는 가제가 참이 되어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M.W.Kang43 님은 제가 해당 사용자를 차단 요청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 의견은 묵살하고 YellowTurtle9 님의 의견에만 동조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토론에 돌아오라고 해놓고, 이런 식으로 본인 스스로 독자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명백한 협업 정신 위반입니다. 노중국 교수의 논문이, 위키백과 지침에 의거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인지 검증해주시고, 이에 대한 검증 절차가 없다면, 이 토론은 위의 편집분쟁을 반복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09:55 (KST)
- 네 저역시도 일본서기 등 신뢰성에 논란이 있는 일부 사료나 소수의 견해는 ~에는 ~라고 기록되어있다. ~는 ~라는 견해를 제시한바 있다. 등의 서술이 맞다고 봅니다. 귀하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며 이에 맞게 문서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성 후에도 추가 의견 주시면 협의하여 개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08:44 (KST)
- "위키백과는 전 세계의 과학자, 학자, 연구자들이 작성한 확립된 문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이 새로운 학설들이 제기될 때마다 모두 그 학설들을 기록해야 한다거나 다수설, 소수설을 모두 기록해야 한다거나와 같은 것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다수설과 소수설을 어떻게 나누는지도 위험하다고 보는 게, 단순히 논문의 개수나 인용 횟수, 그 분야의 권위자냐 아니냐만으로 다수와 소수를 구별할 수 없으며 다수설인지, 소수설인지는 그것을 작성하는 작성자의 주관이 크게 작용하기에 자연과학이 아닌 인문학 분야에서 논문의 내용을 소위 정설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 간주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왕족이 부여계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백제민의 구성이 부여, 예, 맥, 한, 한, 왜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5년 9월 24일 (수) 12:33 (KST)
해당 사용자가 저와의 토론에서 '본인이 아는 한' 노중국 교수의 학설이 통설이라고 '알고 있다'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며, 인용 수가 많다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이사지왕 토론에서도 지적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명백하게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에 인용된 "독단적으로 출처 내용을 분석하거나 정리, 종합하는 행위도 포함"하는 것이기에 상당히 주의를 요구한다고도 몇 차례 걸쳐서 이야기를 했고, 이것을 해당 사용자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이 토론 분쟁의 핵심이었습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0:06 (KST)
- 직접 논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추측성 문장이 많고 2000년대의 것이라 최신 업데이트도 되지 않았습니다. 원하신다면 링크를 첨부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해당 논문이 2020년대 현재 학계에서 통용되는 설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종족 구성이라는 이 내용이 별도의 문단까지 내어가면서 작성을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아니오'라는 입장입니다. 일단 해당 사용자가 '종족'이라는 표현을 쓴 것 자체가 해당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날에는 '민족'이라는 표현을 쓰지, '종족'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습니다. 오크나, 식물군 관련해서 서술한다면 모를까요. 그래서 제가 독자연구를 의심한 것이기도 하고요. 너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 그러면 해당 문제를 아예 서술하지 말아야 하느냐, 그것 역시 '아니오'입니다. 백제 민족 구성이 어땠는지 한 문장 정도로 요약하는 건 가능하겠죠. 다만 지금처럼 노중국 교수님의 사관에 빠져 타 기록들을 일체 배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저는 여전히 중립성과 비중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님 스스로 백제 민족에 대해 다양한 논문을 검토하셔서 초안을 제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0:19 (KST)
부여 종족 구성 토론 (2)
[편집]@M.W.Kang43, YellowTurtle9: 너무 길어져서 여기로 옮깁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0:20 (KST)
제 입장을 다시 정리드립니다. 해당 주제에 대한 제 의견은 아래와 같습니다.
- 노중국 교수의 논문과 그 예하 인용된 논문이 아닌 2010년대와 2020년대 논문을 확인하고 서술할 필요가 있습니.
- 문단이 아닌 한 문장으로 충분히 요약이 가능합니다. 이 문서는 "백제" 문서를 논의하는 곳이지, "백제의 민족 구성"을 논의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현재 M.W.Kang43 님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노중국 교수'의 학설로 통설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런 태도는 비단 백제 문서뿐만 아니라, 향후 토론에서 추가로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위키백과 에디터톤 참여나 타 사용자와의 공동 편집 등을 통해, 학설을 서술하는 방법, 중립성 문제, 논문 인용 등에 대한 지침 등을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서술해야 할 지 충분히 숙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0:30 (KST)
- 백제 문서의 한 단락으로 백제의 주민 구성을 넣자는 것입니다.
- 귀하의 논리라면 "백제" 문서를 논의하는 곳이지, "백제의 국호", "백제의 역사", "백제의 중앙관제", "백제의 행정구역", "백제의 경제", "백제의 사회", "백제의 왕실"을 논하는 곳이 아니니 전부 한줄요약으로 해야한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 따라서 위 단락과 마찮가지로 "백제의 주민구성" 역시 서술하는데 문제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 또한, 제가 서술하는 내용은 대부분 사서에서 인용한 것이며 통설에 대한 것입니다. 노종국 교수의 견해는 주로 "성씨" 부분입니다. 따라서 성씨는 좀더 축약표현할 생각입니다.
- 귀하와는 긴 대화를 나누었지만 서로 입장차가 너무 크고 논리도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된다는것을 느꼈습니다. 저의 의견에 계속 동의하기 어렵다면 중재를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2:53 (KST)
- 사용자님 1번과 3번 제안에 대한 답변이 전혀 없으신데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3:02 (KST)
- 사용자님이 계속 통설이라고 주장하는 그 교수의 논문에 대해, 오늘도 저는 한성백제박물관 쟁점백제사 연구에서 노중국 교수의 입장에 정확히 반박되는 논문을 찾았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통설이라 주장하시면서 '노중국 교수'의 논문을 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2005년에 서술된 논문입니다. 모든 논문들의 바이블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하나의 출처를 고집하는 태도는 독자 연구 금지에 따르면, "독단적으로 출처 내용을 분석하거나 정리, 종합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용자님 스스로, 노중국 교수의 논문이 반박된 적이 있는지 직접 찾아보는 겁니다. 이걸 왜 제가 찾고 있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 더욱이 이런 편집은 여태 사용자님이 편집하신 다른 기여와는 정반대 (이사지왕 제외)의 편집 방식입니다. 다른 수많은 편집 기여를 살펴본 결과, 사용자님은 학술 의견을 개진하실 때 단순히 학설과 논문을 인용하고, ~가 있다,라는 선에서 그 서술을 마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서술 같은 경우에는 노중국 교수의 논문과 정면 배치되는 주장을 싣는 논문들을 일체 배제하는 태도를 보이며, 본인의 서술이 통설에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본인이 아는 한'이라는 명제까지 덧붙이시면서요. 그 논문에 대해 반박을 하면, 그게 사실일 리가 없다고 부정을 하고 계시죠. 노중국 교수님의 논문은 절대불변의 법칙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닙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3:24 (KST)
- 1번과 3번을 묶어서 답변드렸습니다만 이해가 쉽도록 나누어서 다시 답변드립니다.
- 1. 노중국 교수의 논문과 그 예하 인용된 논문이 아닌 2010년대와 2020년대 논문을 확인하고 서술할 필요가 있습니다.
- -> 상술했다시피 노종국 교수의 견해는 주로 성씨부분이라 그부분은 비중을 축소시켜 서술할 생각입니다.
- 3. 현재 M.W.Kang43 님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노중국 교수'의 학설로 통설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런 태도는 비단 백제 문서뿐만 아니라, 향후 토론에서 추가로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위키백과 에디터톤 참여나 타 사용자와의 공동 편집 등을 통해, 학설을 서술하는 방법, 중립성 문제, 논문 인용 등에 대한 지침 등을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서술해야 할 지 충분히 숙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 노중국 교수의 학설을 통설로 인정하지 않고 주로 사서 내용을 인용하여 서술하며 노중국 교수의 견해는 일부 서술할 생각입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3:32 (KST)
- 1. 3의 답변에 별다른 이의가 없으시면 제가 서술한 내용을 가지고 재토론을 하는게 어떤가 싶습니다. 의견부탁드립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3:33 (KST)
- 그리고 '이사지왕' 문서 관련 계속 오해가 있으십니다.
- 해당 문서는 이사부설(최철영), 눌지설(김창호), 자비또는소지설(김재홍)이 이사지왕 정체 관련 모든 이론이며 이걸 모두 기재하였습니다.
- 오히려 이사부설에서 '尒'의 재구음이 'ㄴ'이니 이사부가 아니다라는 서술이야말로 개인연구이기때문에 서술하면 안되나 반대 견해들을 병기하는 선에서 양보하여 합의한 건입니다.
- 더군다나 금관총은 규모가 마립간 능들보다 작기 때문에 마립간의 능이 아니라는 설이 학계의 통설이 된지 오래입니다. 이부분은 제가 작성한 "대릉원" 문서에 "학자별 묘주 비정"을 참고바랍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3:38 (KST)
- 제가 사용자님에게 지적한 것은 이사지왕의 내용에 대한 게 아니라, 이사지왕에서 사용자님의 토론 태도입니다. 저는 그 토론에서 두 사용자의 분쟁 중재를 맡았을 뿐, 해당 내용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3:45 (KST)
- 또한 아무래도 백제 민족 구성은, 초안으로 넘겨주기 하시고 검토를 받은 후에 원문에 삽입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3:46 (KST)
- 초안을 검토 받는 절차가 궁금합니다. 운영진의 검토를 받는 것인지 아니면 토론에 올려서 의견을 나누는 것인지? 토론에 쓰기에는 가독성 등이 매우 떨어질 듯 하구요.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4:16 (KST)
- 위키백과에는 운영진이 없고, 초안:백제의 민족 구성 이런 식으로 문서를 만드시면, 해당 글에 대해 다른 사용자 분들이 자동으로 문서를 편집하실 겁니다. 아니면 위키백과:함께 검토하기를 이용해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백제 민족 구성에 대해 글을 쓰시고, 함께 검토하기에 문서를 링크 거시면, 그 문서에 대해 사용자들이 수정해야 할 사항이나 추가 검토할 사항을 알려주실 겁니다. 직접 편집해서 수정해줄 수도 있고요.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20:34 (KST)
- 초안을 검토 받는 절차가 궁금합니다. 운영진의 검토를 받는 것인지 아니면 토론에 올려서 의견을 나누는 것인지? 토론에 쓰기에는 가독성 등이 매우 떨어질 듯 하구요. M.W.Kang43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4:16 (KST)
- 다만 저는 이 이상 이 토론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자꾸 편집 분쟁으로 이끄는 쪽으로 지속되다 보니, 좋은 결론이 도출되지 못하는 것 같네요. 향후 편집에서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Persephone Kore (토론) 2025년 9월 25일 (목) 14:09 (KST)
예군 묘지명의 일본이 백제라는 설 존치
[편집]예군 묘지명에 나타나는 일본이 백제를 가리킨다는 가설은 몇몇 학제들로부터 제기된 팩트이므로 존치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이준호(2019), 이용현(2014), 도노 하루유키(2012) 등 M.W.Kang43 (토론) 2025년 10월 14일 (화) 11:02 (KST)
- 일본 관련 내용에 집착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관련 내용은 한국사입니다... ~2025-28814-65 (토론) 2025년 10월 14일 (화) 14:13 (KST)
- 일본 관련 내용에 집착한다는 것은 귀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저는 예군묘지명, 구당서, 신당서 등의 '일본'이 백제를 지칭하는 단어라는 학자들의 견해를 병기할 뿐입니다. 자의적인 해석보다는 팩트에 기반한 내용을 서술하는 것이 위키백과의 지침에도 부합합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10월 14일 (화) 14:30 (KST)
- '일본'이 보낼 백제의 이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 권오엽(2025) 추가합니다. 귀하께서 본 서술에 대해서 반박하시려면 예군묘지명, 구당서/신당서 등에 기록된 '일본'이 백제가 아니라는 다른 견해들을 병기하면 위키백과 다중관점에도 부합될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M.W.Kang43 (토론) 2025년 10월 14일 (화) 14:34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