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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다르 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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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다르 판데
दामोदर पाँडे
초상화
출생1752년
사망1804년 3월 14일
네팔 왕국 카트만두
성별남성
국적네팔
직업정치인
종교힌두교
부모칼루 판데(아버지)
자녀5명

다모다르 판데(네팔어: दामोदर पाँडे, 1752년~1804년 3월 13일)는 1803년부터 1804년 3월까지 네팔의 물카지 (네팔 총리와 같은 지위)였으며, 1794년부터 1804년 3월 13일 처형될 때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카지였다. 그는 또한 흔히 네팔의 초대 총리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프리티비 나라얀 샤의 유명한 카지인 칼루 판데의 막내 아들로, 1752년 고르카에서 태어났다. 다모다르 판데는 청-네팔 전쟁과 네팔-티베트 전쟁에서 지휘관 중 한 명이었으며[1], 프리티비 나라얀 샤가 동쪽으로 보낸 성공적인 고르카 군사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가 처형된 후, 그의 사촌인 라나지트 판데가 물카지로 임명되었고, 비므센 타파가 2순위 카지, 셰르 바하두르 샤가 물 초타리아, 랑가 나트 파우델이 라즈 구루로 임명되었다.[2][3]

청-네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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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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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바하두르 샤는 다모다르 판데와 밤 샤의 공동 지휘 하에 고르카군을 티베트로 파견하였다. 고르카군은 쿠티 (니알람 마을)를 통해 티베트로 진입하여 짜시륀뽀 사원 (쿠티에서 약 410km)까지 진격하였다. 시카르종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 전투에서 티베트군은 크게 패배하였다. 이후 판첸 라마사캬족은 고르카군에 평화 회담을 요청하였고, 고르카 군은 시카르종을 떠나 쿠티와 케룽 (지룽현)으로 향하였다.

청나라 건륭제가 네팔의 티베트 침공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장군 찬추 지휘 하에 대규모 중국 군대를 파견하였다. 찬추는 티베트 라마들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았으며,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티베트에 머물기로 결정하였다.

1789년, 티베트와 네팔의 대표들은 키루에서 평화 회담을 가졌다. 회담에서 티베트가 분쟁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었고, 전쟁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배상을 네팔에 지급해야 했다.[4][5] 또한 티베트는 전쟁 중 획득한 영토를 반환하는 대가로 네팔에 매년 50,001 루피를 조공으로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 조약은 케룽 조약으로 불린다. 네팔 대표들은 첫 번째 분할금으로 50,001 루피를 받았다. 그 결과 케룽, 쿠티, 롱가, 쥉가, 팔락 등 영토가 네팔로 반환되었다. 그러나 티베트는 조약 체결 첫 해 이후 조공 지급을 거부하였고, 이에 따라 네팔과 티베트 간 전쟁은 계속되었다.

두 번째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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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가 네팔에 조공을 지급하지 않자, 바하두르 샤는 1791년 아비만 싱 바스넷이 지휘하는 군대를 케룽으로, 다모다르 판데가 지휘하는 또 다른 군대를 쿠티로 파견하였다. 다모다르 판데는 디가르차를 공격하여 그곳 수도원의 재산을 점령하였고, 라싸의 대신 도렌 카지 (1760년 출생)를 체포한 후 네팔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건륭제는 티베트를 방어하기 위해 7만 명의 병력을 파견하고 복강안을 지휘관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따라 1792년 네팔-티베트 전쟁은 네팔과 청나라 간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청나라는 네팔에 디가르차에서 약탈한 재산을 티베트에 반환하고, 네팔에 망명한 샤마빠 라마를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네팔은 이 요구를 무시하였다. 이에 청나라군은 군사 개입으로 대응하였고, 트리슈리강을 따라 진격하여 누와코트까지 진출하였다. 네팔군은 청군의 공격을 방어하려 하였으나 이미 열세에 놓여 있었다.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었으며, 중국군은 고르카 군을 네팔 수도 인근 내륙 산지까지 밀어냈다. 그러나 고르카 군을 완전히 격파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동시에 네팔은 두 개의 다른 전선에서도 군사적 충돌을 겪고 있었다. 시킴 왕국은 네팔 동부 국경을 따라 침입을 시작하였고, 극서부에서는 가르왈과의 전쟁이 계속되었다. 네팔 내부에서도 아참, 도티, 줌라 왕국이 공개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처럼 바하두르 샤가 직면한 문제들은 청나라군을 방어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걱정이 많은 바하두르 샤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10문의 고산포를 요청하였다. 윌리엄 커크패트릭 대위가 카트만두에 도착하였으나[6], 무기 전달을 위해 상업 조약 조건을 요구하였다. 영국의 이해관계에 신중했던 네팔은 무기를 받지 못하였고, 전쟁 상황은 바하두르 샤에게 매우 위급하게 되었다.

일련의 성공적인 전투 이후, 청나라군은 누와코트의 고르카 궁전 근처에 있는 몬순으로 범람한 베트라와티강을 건너려다 큰 차질을 겪었다. 청나라군이 베트라와티강 남쪽, 누와코트 인근까지 진격했을 때, 네팔군이 카트만두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어려웠다. 카트만두에서는 200명도 되지 않는 네팔군이 베트라와티에서 청나라군을 저지하려 시도하였다. 1792년 9월 19일, 네팔군은 지트푸르페디에 주둔한 청나라군을 상대로 반격을 시작하였다. 네팔군은 병사들이 손에 횃불을 들고 나무 가지에 묶거나, 가축의 뿔에 불붙은 횃불을 묶어 적에게 돌진하게 하는 전술을 사용하였다. 청나라군은 패배를 겪었으나, 네팔에서 완전히 철수하지는 않았다.

결국 교착 상태가 이어졌고, 자원이 부족하고 서부 전선 확장 작전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르카군은 청나라군이 제시한 조건에 따라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 따라 네팔은 청나라 황제에게 5년마다 조공을 바치는 등의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권력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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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 라나 바하두르 샤 왕이 성년에 이르자, 그의 첫 번째 조치로 정부를 재편성하여 그의 삼촌인 네팔의 최고 차우타리아 바하두르 샤가 공식적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7][8] 바하두르 샤 제거 후 임명된 네 명의 카지 중 다모다르 판데가 가장 영향력 있는 카지였으며, 최고 (물) 카지는 키르티만 싱 바스냐트였다. 1799년, 라나 바하두르 샤는 그의 정부의 죽음에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 그의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인해 시민들에 의해 퇴위를 강요받았다. 그는 왕위를 한 살 반의 아들 기르반 유드다 비크람 샤에게 물려주고, 비임센 타파, 달반잔 판데 등 추종자들과 왕비 라즈라제스와리 데비와 함께 바라나스로 도망쳤다.[9]

네팔의 물카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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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반 유드다 비크람 샤 왕이 미성년일 동안, 다모다르 판데는 물카지(총리)로서 행정을 장악하고 외교권까지 행사하며 정부를 완전히 통제했다(1799년~1804년). 그는 후대 네팔 역사에서 왕과 총리 간의 권력 투쟁이 반복되는 중요한 전례를 남겼다. 다모다르 판데의 주요 정책은 예측할 수 없는 왕의 아버지를 바라나스에 머물게 하여 어린 왕을 보호하고, 퇴위한 왕의 왕비들 사이의 계략을 서로 경쟁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1804년까지 이 정책은 실패했다. 전 왕은 자신의 복귀를 계획하여 무크티야르로서 권력을 장악했다.[10][11]

다모다르 판데는 항상 기르반 유드다 비크람 샤 왕을 보호하고 라나 바하두르 샤가 네팔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1804년 3월 4일, 전 왕이 돌아와 무크티야르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다모다르 판데는 탄코트에서 참수되어 사망했다.[10]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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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3월 1일, 전 왕이 돌아와 물크티야르 직위를 차지하였다. 3월 13일, 다모다르 판데는 바드라칼리 감옥에 수감된 후 두 장남 라나케샤르와 가지케샤르와 함께 참수되었다.[10][11]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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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epal Army”. 2016년 12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3월 28일에 확인함. 
  2. Nepal 2007, 58쪽.
  3. Acharya 2012, 55쪽.
  4. “Tibetan and Nepalese Conflict”. Official website of Nepal Army. 
  5. Regmi 1970a, 187쪽.
  6. Kirkpatrick, Colonel (1811). 《An Account of the Kingdom of Nepaul》. London: William Miller. 2013년 2월 11일에 확인함. 
  7. Acharya 2012, 14쪽.
  8. Pradhan 2012, 12쪽.
  9. "Advanced history of Nepal" by Tulasī Rāma Vaidya
  10. Nepal:The Struggle for Power (Sourced to U.S. Library of Congress)
  11. The Bloodstained Throne Struggles for Power in Nepal (1775-1914) - Baburam Acharya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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