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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파키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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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파키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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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파키스탄 관계튀르키예파키스탄 간의 양자 관계를 말한다. 튀르키예는 이슬라마바드에 대사관을, 카라치라호르에 총영사관을, 페샤와르, 시알코트, 파이살라바드에 명예영사관을 두고 있으며, 파키스탄은 앙카라에 대사관을, 이스탄불에 총영사관을, 이즈미르에 명예영사관을 두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양국은 공동 성명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강화할 계획을 발표했다.[1][2]

양국의 관계는 두 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구체적으로는 튀르키예 독립 전쟁 당시로, 당시 영국령 인도 북서부 지역 (현재의 파키스탄 지역)에 살던 무슬림들이 쇠퇴하던 오스만 제국에 재정적 지원을 보냈다. 이후 튀르키예 공화국의 수립과 파키스탄의 독립이 이어졌다. 또한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 이슬람적 유대를 공유하고 있으며, 영국령 인도 아래 살던 무슬림들은 오스만 술탄을 자신들의 칼리프이자 이슬람 전체의 칼리프로 여겼다. 그 결과, 파키스탄과 파키스탄인들은 오랫동안 튀르키예와 튀르크인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인식을 받아왔다.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은 긴밀한 문화적, 역사적, 군사적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현재 양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경제적 협력 관계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튀르키예는 카슈미르가 파키스탄에 귀속될지를 유엔 감독하의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파키스탄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으며, 이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파키스탄 의회에서 파키스탄군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행한 공동 연설에서도 재확인된 바 있다.[3][4] 또한 튀르키예는 파키스탄의 원자력공급국그룹(NSG) 가입을 지지하고 있다.[5] 탈라트 마수드는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이 민주정부와 군사정권 시기 모두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평가하며, 이는 양국 관계의 깊이를 반영한다고 언급했다.[6]

앙카라와의 긴밀하고 역사적인 유대 관계로 인해, 파키스탄은 논란이 되고 있는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신중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7]

외교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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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에 위치한 주요 도로인 진나 거리는 파키스탄의 건국자 무함마드 알리 진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튀르키예와 파키스탄 간의 외교 관계는 1947년 파키스탄이 독립한 직후, 당시 세계 지도상에서 가장 큰 무슬림 국가로 등장한 이후 수립되었다.

튀르키예는 1947년 파키스탄의 독립 직후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으며, 두 나라 간의 문화적, 종교적, 지정학적 연계로 인해 양자 관계는 점점 더 긴밀해졌다.[8] 튀르키예는 파키스탄 건국 이후 가장 먼저 이를 승인한 국가들 중 하나였으며, 파키스탄이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데에도 지지를 보냈다.[9] 1954년 2월, 파키스탄과 튀르키예는 상호 협력 조약에 서명했으며, 이는 중앙 조약 기구의 전신이 되었다.[10] 발칸 협약 동맹국이자 인도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앙카라는 이 협정이 뉴델리를 겨냥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10]

파키스탄의 건국자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튀르키예의 건국 지도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대한 존경을 표했으며, 파키스탄을 튀르키예식 근대화 모델에 따라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밝혔다.[11] 비슷한 생각은 튀르키예에서 성장하고 군사 교육을 받은 파키스탄의 전 대통령 페르베즈 무샤라프에 의해서도 표현되었다.[11][12][13] 진나는 튀르키예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기려지고 있으며,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의 주요 도로 중 하나인 진나 거리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반대로, 이슬라마바드, 카라치, 라호르, 페샤와르, 라르카나의 도로들은 아타튀르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2009년 10월 26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니샨에 파키스탄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파키스탄 의회에서 연설한 네 번째 세계 지도자가 되었다.

역사적 및 문화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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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실리크유라시아 지역에서 널리 즐겨 먹는 대표적인 요리이다.
현대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의 일부 지역은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 영역에 속해 있었다.

파키스탄과 튀르키예가 위치한 지역들은 역사적으로 여러 시기에 걸쳐 이란계, 헬레니즘, 아랍, 튀르크몽골 문화의 영향을 상호적으로 받아왔다. 기원전 5세기경에는 페르시아 제국아나톨리아에서 인더스강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이 지역들에 페르시아식 문화와 정치 전통을 도입했다.[14][15]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나타난 공통된 헬레니즘 문화적 영향

현대의 튀르키예는 고대 유럽 문명, 특히 이오니아 그리스인들의 문명이 번성했던 지역이었다. 이 나라는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보여주는 많은 문화적, 역사적 흔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러 그리스 및 헬레니즘 유적지가 존재한다.[16][17] 파키스탄 또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더스 계곡 원정 이후 그리스 문화와 문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이후 인도-그리스 왕국그리스 불교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서부 파키스탄의 간다라 지역은 헬레니즘, 이란, 인도아리아 문화가 교차하던 주요 중심지였다.[18]

튀르키예는 셀주크인의 정복과 튀르크화 과정을 통해 튀르크어권 국가로 발전하였다. 파키스탄은 튀르크어권 국가는 아니지만, 그 주요 언어인 우르두어 (또는 라슈카리어)는 무굴 제국 시기의 튀르크어의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19] , 차가타이어에서 많은 어휘를 차용하였다. "우르두"라는 단어의 어원은 무굴 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20], 시인 마샤피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1]

또한 파키스탄과 튀르키예는 수세기에 걸쳐 공통된 문화적 영향을 받아왔으며, 여러 튀르크계이란계 민족들이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의 광범위한 지역을 지배하였다.

두 나라의 의복 디자인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공통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케밥, 필라프, 할와와 같은 음식 문화에도 유사성이 있다. 다만 파키스탄의 음식은 남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향신료 사용이 훨씬 강한 편이다.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의 다수 인구는 모두 수니파 하나피파를 신봉한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역사학자 우마이르 칸은, 케말 파샤의 국가 건설 과정에서는 하나피파 이슬람이 공식적인 국가 이념으로 채택된 반면, 진나는 파키스탄의 정치 체제에서 종교의 역할을 최소화하고자 했다고 주장한다.[22] 이 해석은 각각 오스만 제국무굴 제국에서 시행된 이슬람의 형태와 연결된다. 두 나라 모두 온건한 수피즘 전통이 강하며, 종교 지도자들은 상호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23]

또한 1500년대 오스만 제국이 아체와 브루나이로 군사 원정을 보냈을 때, 신드 지역 출신 병사들이 종종 이 원정에 참여하였다.[24]

원조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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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카슈미르 지진 발생 이후, 튀르키예는 피해 지역의 파키스탄 주민들을 돕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였다.[25] 튀르키예는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해 1억 5천만 달러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발표하였다.[26] 또한 튀르키예 구호 단체인 튀르키예 적신월은 인도 잠무 카슈미르와 접한 파키스탄 아자드 카슈미르 지역에 오스만 양식의 모스크를 건설하였다. 이 모스크는 파키스탄 바그 지구에 세워지고 있다.[27]

파키스탄은 1999년 지진과[28] 2011년 반 지진 당시 튀르키예에 구호 지원을 제공한 바 있다.[29][30]

2022년 파키스탄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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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홍수로 국가 일부가 물에 잠기자, 튀르키예 정부는 홍수로 직접 피해를 입은 시민들을 위해 인도적 구호물자 항공기를 파키스탄으로 파견하였다.[31]

2023년 튀르키예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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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큰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를 지원하기 위해 100톤의 구호물자를 보냈으며, 여기에는 식량, 의약품, 겨울용 텐트가 포함되었다. 추가 구호물자 운송을 위해 항공 교량도 마련하였다. 또한 전국적인 지원 캠페인을 요청하고, 기업, 종교 지도자, 자선단체들이 구호 활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32]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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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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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urkey, Pakistan vow to strengthen ties further”. 
  2. “Pakistan, Turkey vow to transform ties into strong strategic partnership”. 2018년 12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1월 17일에 확인함. 
  3. “Kashmir dispute should be solved according to Kashmiris' will: Erdogan - Pakistan - Dunya News”. 2008년 2월 14일. 
  4. “Army chief praises Erdogan's address in parliament - Pakistan - Dunya News”. 2008년 2월 14일. 
  5. “Turkish President Erdogan arrives in Islamabad”. 2016년 11월 16일. 
  6. “Turkey, the dependable ally - The Express Tribune”. 2016년 11월 15일. 
  7. Yilmaz, Ihsan, and Kainat Shakil. "Transnational Islamist Populism between Pakistan and Turkey: The Case of Dirilis—Ertugrul." European Center for Populism Studies 15 (2021).
  8. “Turkey and Pakistan: Bridging the Growing Divergence” (PDF). Center for Strategic Research. 2009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6월 3일에 확인함. 
  9. Şafak, Yeni. “PM Khan pushes for 'early finalization' of Pak-Turkey Strategic Economic Framework”. 《Yeni Şafak》. 
  10. Svetozar Rajak (2014). “No Bargaining Chips, No Spheres of Interest: The Yugoslav Origins of Cold War Non-Alignment”. 《Journal of Cold War Studies16 (1): 146–179. 
  11. “A Turkish path for Pakistan”.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2002년 1월 24일. 2008년 6월 3일에 확인함. 
  12. “Turkey and Pakistan boost ties”. 2003년 6월 16일 – news.bbc.co.uk 경유. 
  13. “Turkey and Pakistan join forces”. Center for Strategic Research. 2004년 1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6월 3일에 확인함. 
  14. “X. Persian Period (547 - 330 BCE.)”. 《www.ancientanatolia.com》. 2017년 2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5. “The Achaemenid Empire in South Asia and Recent Excavations at Akra in Northwest Pakistan”. 《American Journal of Archaeology》. 2005년 10월 1일. 
  16. Tom Brosnahan, Travel Info Exchange, Inc. “Hellenic Civilization in Turkey”. 
  17. Joshua J. Mark. 〈Asia Minor〉. 《World History Encyclopedia》. 
  18. “Gandhara Civilization”. 《heritage.gov.pk》. 2020년 1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5월 20일에 확인함. 
  19. Khan, Sajjad, Waqas Anwar, Usama Bajwa, and Xuan Wang. "Template Based Affix Stemmer for a Morphologically Rich Language." International Arab Journal of Information Technology (IAJIT) 12, no. 2 (2015).
  20. “Urdu”. 2014년 12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12월 17일에 확인함. 
  21. Garcia, Maria Isabel Maldonado. "The Urdu language reforms." Studies 26 (2011): 97.
  22. “Ataturk vs Jinnah”. 《Umair Khan (historian) Author of SECULAR MUSLIM: Jinnah, His Politics And Pakistan》. 
  23. “Pakistan, Turkey reaffirm commitment to intensify mutual cooperation”. 2017년 4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4. Tarling, Nicholas. 《The Cambridge History of Southeast Asia》. 39쪽. 
  25. “Humanitarian aid to Pakistan”. Turkish Embassy in Ottawa. 2013년 6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7월 1일에 확인함. 
  26. “Turkish aid package for Pakistan”. Dawn News. 2005년 10월 21일. 
  27. “Turkish Mosque in Pakistani Kashmir”. World Bulletin. 2012년 6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8. “Pakistan sends relief goods to Turkey for quake victims”. 《ReliefWeb》. 2016년 1월 2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4월 30일에 확인함. 
  29. “Punjab govt sends tents to Turkey earthquake victims | Pakistan Today”. 《www.pakistantoday.com.pk》. 
  30. “Pakistani Red Crescent extends help to earthquake victims in Van”. 《TodaysZaman》. 2016년 3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4월 30일에 확인함. 
  31. “Turkey sends aid to Pakistan after devastating floods” (영어). 《www.al-monitor.com》. 2022년 8월 30일. 2023년 5월 30일에 확인함. 
  32. “PM offers all-out support for quake-hit Turkey” (영어). 《The Express Tribune》. 2023년 2월 10일. 2023년 2월 12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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