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앙골라 관계
브라질 |
앙골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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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앙골라 관계는 브라질과 앙골라 간의 양자 관계를 말한다. 두 나라는 모두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언어 (두 나라의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와 종교 (두 나라 모두 인구의 대다수가 로마 가톨릭 신자) 등 여러 문화적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은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77 그룹, 그리고 유엔의 회원국이다.
역사
[편집]대서양 노예 무역 시기
[편집]앙골라와 브라질은 한때 300년 동안 포르투갈 제국의 일부로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1646년 예수회 사제 곤살루 주앙은[1] 브라질과 앙골라 간의 경제적 관계의 중요성을 "앙골라 없이는 브라질도 없다"라는 말로 간결하게 표현했다.[2] 앙골라는 브라질에 노예를 공급하는 주요 원천이었으며, 브라질은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유럽 식민지 중 대서양 노예 무역에서 가장 많은 노예를 수입한 국가였다. 브라질로 끌려온 노예의 3분의 2는 앙골라-콩고 지역 출신이었다.[1] 리우데자네이루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인력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재수출할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 앙골라에서 꾸준히 유입되는 노예에 의존했다.
17세기 초 네덜란드가 앙골라를 점령했을 당시, 브라질과 포르투갈은 영토를 되찾기 위한 공동 식민 세력으로 함께 행동했다. 브라질 역사학자 루이스 펠리피 지 알렝카스트루는 이 중요한 역사적 시기가 노예 무역 기간 동안 브라질과 앙골라의 관계를 굳건히 했다고 주장하며, 브라질의 형성은 앙골라 토착 왕국들의 파괴와 맞물려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1]
1648년 살바도르 지 사가 이끄는 함대가 네덜란드를 앙골라에서 성공적으로 축출한 후, 앙골라는 사실상 브라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이는 "브라질에서 200년 이상 노예 제도의 지속을 보장하는 결과"를 낳았다.[2] 살바도르 지 사 또한 브라질의 앙골라에 대한 경제적 의존과 그것이 포르투갈에 미치는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는 "그 거점 (즉, 앙골라) 없이는 브라질이 생존할 수 없고, 브라질 없이는 포르투갈도 생존할 수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1]
앙골라 독립 및 독립 이후의 관계
[편집]1975년 11월, 브라질은 새롭게 독립한 앙골라를 가장 먼저 승인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한 국가가 되었다.[3] 그 직후 앙골라는 내전에 돌입했으며, 이 전쟁은 2002년까지 이어졌다. 2002년 7월,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앙골라 대통령은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4차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CPLP)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을 방문했다.[4] 2003년에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앙골라를 방문했다.[3] 이후 양국 지도자들 간에는 여러 차례의 고위급 상호 방문이 이어졌다.
브라질–앙골라 관계는 앙골라에서 근무하고 생활하며 현지 경제에 기여하는 다수의 브라질 노동자, 자영업자, 기업가들의 존재로 인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3] 국방 분야에서도 브라질은 CPLP 체제 내 혹은 기니만에서의 불법 활동 대응을 모의하는 "오방가메 익스프레스(Obangame Express)" 작전의 일환으로 앙골라와 함께 군사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매년 브라질 육군은 앙골라 측과 협력하여 교육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브라질에 이미 존재하는 유사 기관을 모델로 한 평화유지활동 훈련센터 설립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3]
2015년 11월, 양국은 외교 관계 수립 40주년을 기념했다.[3] 2019년 1월에는 마누엘 도밍구스 아우구스투 앙골라 외교장관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을 방문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에르네스토 아라우주 브라질 외교장관이 공식적으로 앙골라를 방문하여 주앙 로렌수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3][5]
양자 협정
[편집]양국은 경제, 과학, 기술 협력에 관한 협정 (1980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협정 (2010년), 투자 촉진 협력에 관한 협정 (2015년), 치안 및 내무 질서에 관한 협정 (2019년) 등 여러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3][5]
문화적 유대
[편집]앙골라 정부는 예술과 음악을 통해 브라질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와의 연계를 회복하기 위해 칼룽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했다.[6]
17세기와 18세기부터 대서양 삼각지대에서는 문화 교류를 통해 음악과 춤의 "상호 교배"가 이루어졌다.[2] 이러한 교류의 결과로, 두 나라는 기타 (또는 비올라)의 보급처럼 아프리카와 이베리아 전통이 혼합된 풍부한 음악적 역사를 공유하게 되었다. 초기 춤 교류의 한 예로는 "움비가다" 또는 "배로 부딪치)"가 있으며, 이는 "콩고-앙골라 지역에서 브라질과 포르투갈로 전해진 많은 춤들의 기본 요소"로 여겨진다.[2]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다 라 Arenas, Fernando (2011). 《Lusophone Africa: Beyond Independence》. Minneapolis, M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ISBN 978-0-8166-6983-7.
- ↑ 가 나 다 라 Budasz, Rogério (February 2007). “Black guitar-players and early African-Iberian music in Portugal and Brazil”. 《Early Music》 35 (1): 3–21. doi:10.1093/em/cal117.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Brasil-Angola (in Portuguese)
- ↑ IV Conferência, Brasília (in Portuguese)
- ↑ 가 나 Brazil, Angola ink bilateral deal on security
- ↑ de Castro, Maurício Barros (2015년 6월 26일). “Remembering and forgetting the Kalunga Project: popular music and the construction of identities between Brazil and Angola” (영어). 《African and Black Diaspora》 9 (1): 96–108. doi:10.1080/17528631.2015.1027323. ISSN 1752-8631. S2CID 218646593.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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