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 (전한)
하수
何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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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후기의 관료 | |
이름 | |
휘 | 수(壽)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우부풍 평릉현(平陵縣)[1] |
사망일 | 미상 |
국적 | 전한 |
성별 | 남성 |
관직 | 촉군태수〔전한〕 → 정위〔전한〕 → 대사농〔전한〕 |
부친 | 하비간[1][2] |
형제자매 | 형제 8명[a] (모두 이름·서열 미상) |
자녀 | 아들 하현(何顯)[2][b] |
군사 경력 | |
주군 | 성제 |
하수(何壽, ? ~ ?)는 전한 후기의 관료로, 우부풍 평릉현(平陵縣) 사람이다.[1] 정위정(廷尉正) 하비간[1]의 아들이다.[2]
행적
[편집]촉군태수 시절, 군리(郡吏) 하무(何武)가 재상의 자질이 있다고 여겼고 또 성씨가 같았기 때문에 그를 잘 대해주었다.[3]
건시 2년(기원전 31년), 촉군태수에서 정위로 승진하였고,[4] 4년 후인 하평 2년(기원전 27년)에 대사농으로 전임되었다.[4]
하수가 대사농을 지내고 있었을 때, 양주자사가 된 하무가 황제를 알현할 일이 있어 장안으로 올라왔다.[3] 여강장사인 하수의 조카[c][a]도 마침 장안에 있었고,[3] 이에 하수는 하무의 동생 하현(何顯)과 예전에 알고 지내던 양복중(楊覆衆)을 불러 조카를 데리고 함께 먹고 마셨다.[3] 술잔이 돌고, 하수는 사람들에게 조카를 소개하며 일부러 이렇게 말하였다.[3]
“ | 이 아이는 양주의 장사[d]로써 자질이 부족해서 아직 발탁되지 못했습니다.[3] | ” |
하현과 양복중은 하무에게 이 말을 전하였다.[3] 하무는 관리 임용에 사사로움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며 거절하였지만,[3] 하현 등이 강권하니 어쩔 수 없이 하수의 조카를 만나보았다.[3] 이후 그를 위하여 손을 써 주었고,[3] 그 해에 여강태수가 하수의 조카를 조정에 천거하였다.[3]
자손
[편집]아들 하현(何顯)[b]은 경보도위(京輔都尉)를, 손자 하언(何鄢)은 광록대부를 지냈다.[2]
이후 하수의 가계(家系)는 천승도위[2](《후한서》 권43에서는 제남도위[6])를 지낸 증손 하총(何寵; 하언의 아들)을 거쳐, 현손 하창(하총의 아들)의 대에 이르렀다.[2] 하창은 여남태수 등을 지냈고,[6][2] 최종적으로는 관직이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에 이르렀다.[6]
각주
[편집]참조주
[편집]- ↑ 가 나 하수의 아버지 하비간은 58세 때 여섯 아들이 있었고, 이후 또 세 아들을 낳았다.[1] 하수가 이 아홉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나, 앞서 태어난 여섯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인지, 아니면 나중에 태어난 세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인지는 전혀 알려진 바 없다. 또 그가 9형제 가운데 몇 번째인지와 형제들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진 바 없어, 전말은 알 수 없다.
- ↑ 가 나 본 문서의 행적에 언급된 인물인 하무의 동생 하현(何顯)과는 동명이인이다.
- ↑ 《한서》 권86의 원문에는 형의 아들[兄子]이라고 하였는데,[3] 이 형이 9형제[1] 가운데 몇 번째였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 ↑ 여강군은 양주의 속군(屬郡)이다.[5]
내용주
[편집]- ↑ 가 나 다 라 마 바 저자 미상, 《하씨가전》(何氏家傳) [범엽, 《후한서》 권43 주악하열전 이현주(李賢注)[1]에 인용]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진종 外, 《동관한기》
사고전서본 권19. [위와 같음] / 오수평(吳樹平) 교주(校注) (2008년 11월). 《동관한기교주(東觀漢記校注)》 1판 (중국어). 중국사학기본전적총간(中國史學基本典籍叢刊). 북경: 중화서국. 700-701쪽. ISBN 978-7-101-06294-6.[2]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반고, 《한서》
권86 하무왕가사단전.
- ↑ 가 나 반고,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
- ↑ 사마표, 《속한서》
지(志) 제22 군국지(郡國志)4.
- ↑ 가 나 다 범엽, 《후한서》
권43 주악하열전.
전임 윤충 |
전한의 정위 기원전 31년 ~ 기원전 27년 |
후임 장충 (대행) 범연수 |
전임 비조 |
전한의 대사농 기원전 27년 ~ ? |
후임 주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