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의 정신병리학

시리즈의 일부 |
아돌프 히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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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의 정신병리학은 나치 독일의 독재자였던 아돌프 히틀러가 정신 질환을 앓았다는 가설을 다루는 정신과적 (병리학적, 정신전기적) 문헌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히틀러는 살아생전 어떤 정신 질환 진단도 받지 않았지만, 생전과 사후에 양극성 장애, 조현병, 사이코패스와 같은 정신 질환과 자주 연관되었다. 히틀러가 정신 장애를 앓았다고 진단한 정신과 의사 및 정신분석가 중에는 월터 찰스 랭거와 에리히 프롬과 같은 유명 인물들이 있다. 프레데릭 레들리히와 같은 다른 연구자들은 히틀러가 이러한 장애를 앓지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1]
배경
[편집]히틀러 정신병리학의 어려움
[편집]
정신건강의학에서 병리학은 특히 환자에 대한 직접적인 검사 없이 사후에 이루어진 진단으로 인해 좋지 않은 평판을 얻었다.[2] 이는 비윤리적이라고까지 여겨진다.[3] 독일 정신과 의사 한스 뷔르거프린츠는 모든 원격 진단은 "정신건강의학의 치명적인 남용"이라고까지 주장했다.[4] 히틀러에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여된 정신 질환의 엄청난 범위 주장된 장애 목록 표는 이 방법이 얼마나 결정적이지 못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5][6][7] 히틀러 병리학의 많은 결함 중 또 다른 예는 다른 저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 이미 제출한 수많은 출판물에 대한 논의가 완전히 없거나 심하게 요약되어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경우, 정신병리학은 특별한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히틀러의 사적인 문제에 대해 글을 쓰는 저자들은 로타르 마흐탄의 책 숨겨진 히틀러 (2001)의 경우처럼, 아무리 증거가 부족한 추측이라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관음증적인 독자층의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8] 일부 저자들은 히틀러를 병리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면제시키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고 경고한다.[9] 다른 사람들은 히틀러를 병리학적으로 설명하거나 악마화함으로써 나치 독일의 범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그에게만 돌리고, 히틀러의 통치를 가능하게 한 대중과 권력자들의 책임은 결과적으로 면제될 것을 우려한다.[10] 유명한 것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이다. 1963년에 그녀는 아돌프 아이히만과 같은 나치 범죄자에게 정신적 정상성과 대량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11] 하랄트 벨처는 그의 저서 『Täter. Wie aus ganz normalen Menschen Massenmörder werden』(가해자.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대량 살인자가 되는가)에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12]
2015년 그의 전기에서 페터 렝거리히는 히틀러가 강력한 독재자로서 주장성, 높은 위험 감수 의지, 무제한적인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어떻게 실현했는지 지적했다.[13] 일부 저자들은 히틀러를 심리학적 수단으로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에 근본적으로 반대했다.[14] 클로드 란츠만은 그러한 시도를 "외설적"이라고 비난하며 더 나아가, 그의 영화 쇼아 (1985)를 완성한 후 그러한 시도가 홀로코스트 부정에 가깝다고 느꼈고, 특히 역사가 루돌프 비니온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15]
정신과 의사 얀 에렌발트는 정신 질환을 앓았을 수 있는 히틀러가 어떻게 1945년까지 그의 정책을 지지하는 수백만 명의 열정적인 추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종종 간과되었다고 지적했다.[16] 다니엘 골드하겐은 1996년에 히틀러의 정치적 부상은 그의 정신병리학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당시 독일에 존재했던 불안정한 사회적 조건의 결과라고 주장했다.[17] 반면에 일부 저자들은 찰스 맨슨과 짐 존스와 같이 조현병과 같은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았다고 묘사된 인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18] 초기에는 히틀러가 자신의 정신병리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고, 자신의 증상을 사용하여 청중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조종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견해도 있었다.[19] 또 다른 저자들은 히틀러의 추종자들 자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고 주장했지만;[20] 이 주장에 대한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21] 히틀러의 개인적 정신병리학이 그의 추종자들의 열정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에 대한 문제는 2000년 마투세크/마투세크/마르바흐의 학제간 연구팀에 의해 처음 논의되었다.[22]
주장된 장애 목록
[편집]주장된 장애 |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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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 연극성 인격장애 | 빌만스 (1933),[23] 머레이 (1943),[24] 랭거 (1943),[20] 비니온 (1976),[25] 타이어 (1993)[26] |
조현병, 편집증 | 버논 (1942),[27] 머레이 (1943),[24] 트레헤르 (1966),[28] 슈바프 (1992),[29] 타이어 (1993),[26] 쿨리지/데이비스/세갈 (2007)[18] |
약물 남용으로 인한 정신병적 증상 | 헤스턴/헤스턴 (1980)[30] |
신체 질환으로 인한 정신병적 증상 | 기벨스 (1994),[31] 헤세 (2001),[32] 헤이든 (2003)[33] |
자기애적 인격장애 | 슬레이 (1966),[34] 브롬버그/스몰 (1983),[35] 쿨리지/데이비스/세갈 (2007)[18] |
가학적 인격장애 | 쿨리지/데이비스/세갈 (2007)[18] |
경계선 인격장애 | 브롬버그/스몰 (1983),[35] 빅터 (1999),[36] 도팟 (2003),[37] 쿨리지/데이비스/세갈 (2007)[18]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 도팟 (2003),[37] 코흐-힐레브레히트 (2003),[38] 빈나이 (2004),[39] 쿨리지/데이비스/세갈 (2007)[18] |
비정상적인 뇌 반구 우세 | 마틴데일/하젠푸스/하인즈 (1976)[40] |
분열형 인격장애 | 라파포트 (1975),[41] 웨이트 (1977)[42] |
위험한 지도자 장애 | 메이어 (1993)[43] |
양극성 장애 | 허쉬먼/립 (1994)[44] |
아스퍼거 증후군 | 피츠제럴드 (2004)[45] |
히스테리
[편집]파제발크 군병원에서의 히틀러 (1918)
[편집]
히틀러와 동시대 정신과 의사였던 오스발트 붐케는 히틀러가 정신과 의사에게 검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추정했다.[46] 히틀러가 직접 만난 유일한 정신과 의사인 뮌헨의 쿠르트 슈나이더 교수는 히틀러의 주치의가 아니었다.[47] 히틀러의 신체 건강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의료 문서들은 발견되어 연구에 활용할 수 있지만, 그의 정신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원본 문서는 부족하다.[48]
히틀러 생전의 정신과적 평가 가능성에 대한 추측은 1918년 말 그가 파제발크의 군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 집중된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 대전 플랑드르 전투 중 머스터드 황 독가스에 노출된 후 병원에 입원했다. 나의 투쟁에서 그는 이 병원 입원 기간을 고통스러운 일시적 실명과 독일의 독일 11월 혁명의 "불운"과 "광기",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패배와 연결하여 언급한다. 이 모든 것은 그가 회복 중에 알게 되었고, 이는 다시 실명을 유발했다. 히틀러와 그의 초기 전기 작가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그의 강력한 신체적 반응에 큰 주목을 했다. 왜냐하면 이 실명 재발은 히틀러가 정치인이자 독일의 구원자가 되겠다는 소명을 느낀 전환점이었기 때문이다.[49]
히틀러 생전에 이미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유기적 설명 없는 그러한 재발을 히스테리 증상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50] 히스테리 진단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함께 전성기를 맞았지만, 1930년대와 1940년대에도 여전히 사용되었다. 감각 기관 상실은 자기중심적이고 연극적인 행동 외에 전형적인 증상에 속했다. 정신과 의사 카를 빌만스는 강연에서 "히틀러는 들판에 생매장된 후 히스테리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고 전해지며, 빌만스는 1933년에 직위를 잃었다.[23] 그의 조수 한스 발터 그룰레는 비슷한 발언으로 전문직으로서 불이익을 당했다.[51] 현대 정신건강의학에서는 "히스테리"라는 용어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으며, 오늘날 해당 증상들은 해리성 장애 또는 연극성 인격장애와 연관된다.
히틀러의 병원 입원 기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어떤 증상이 나타났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진단을 확인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파제발크의 히틀러 의료 기록은 1920년대 후반에 이미 유실된 것으로 간주되었다.[9][52]
히틀러에 대한 정신과 연구 (1943)
[편집]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미국 정보기관인 전략사무국 (OSS)은 히틀러의 성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1943년 월터 찰스 랭거가 이끄는 연구팀에게 심리 보고서 작성을 의뢰했다.[53] 이 보고서 중 하나인 『히틀러에 대한 정신과 연구』에서는 히틀러가 1933년 보복을 두려워하여 자살한 정신과 의사 에드문트 포스터에게 파제발크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가설이 제시되었다. 이 보고서의 시작점은 1918년 그 병원에서 근무했던 정신과 의사 카를 크로너의 증언이었다. 크로너는 특히 포스터가 히틀러를 진찰했으며 그에게 "히스테리" 진단을 내렸다고 확인했다.[54] 이 보고서는 비밀에 부쳐졌지만, 1970년대 초 히틀러 전기 작가 존 톨런드에 의해 재발견되었다.[55] 그러나 적어도 일부는 크로너의 증언을 거부한다. 얀 암브루스터와 페터 타이즈아벤드로트 (2016)는 "독일 강제 수용소를 겨우 탈출한 카를 크로너는 의학 학위가 현지 당국에 의해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에서 생계를 꾸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어 미국 비자 절차를 가속화하려고 했을 수 있다. 그의 서술에 나타난 명백한 과장과 왜곡, 그리고 그가 겪었던 엄청난 압력을 고려할 때, 그는 여러 가지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지만, 여기서 문제되는 역사적 측면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증인은 확실히 아니다"라고 썼다.[56]
나는 목격자 (1963)
[편집]1939년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오스트리아 의사이자 작가인 에른스트 바이스는 소설 『Ich, der Augenzeuge』("나는 목격자")를 썼는데, 이는 참호에서 시력을 잃은 브라우나우암인 출신의 "히스테리성" 군인 A.H.를 치료한 의사의 가상 자서전이다. 줄거리는 1918년 말 독일 국가방위군 병원을 배경으로 한다. 자신의 지식이 나치에게 위험할 수 있으므로, (가상의) 의사는 1933년에 나치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고 의료 기록을 넘겨준 후에야 석방된다.
바이스는 1940년 독일군이 파리 (프랑스)에 진입한 후 자살했는데, 그는 유대인이었고 강제 이송을 두려워했다. 그의 소설은 1963년에 출판되었다. 바이스가 히틀러의 병원 입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당시의 전기 문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57]
최면치료에 대한 추측
[편집]정보 보고서의 추정에서 시작하여 바이스의 소설을 따라, 일련의 연구자들과 저자들은 연속적으로 확실하게 확립된 최면치료에 대한 포스터의 가능한 개입에 대한 의심을 발전시켰다.[9] 이러한 재구성은 새로운 증거를 제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대안적인 해석을 배제하고, 역사적 맥락을 광범위하게 무시하며, 포스터가 최면과는 다른 치료법으로 이어지는 히스테리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간과하기 때문에 의문스럽다.[58]
- 브랜다이스 대학교의 역사가 루돌프 비니온은 히스테리 진단 주장을 오류로 간주하지만, 1976년 저서 『독일인들 사이의 히틀러』에서는 정보 기관의 의심을 받아들여 이를 확장했다. 비니온은 바이스가 포스터를 직접 만났고, 그의 소설의 토대가 된 의료 기록 사본을 그에게서 받았다고 추정했다. 소설에 따라 비니온은 포스터가 맹인이 되고 광신적인 히틀러에게 최면 암시 치료를 가했고, 나중에 공직에서 정직당하고 게슈타포의 박해를 두려워하여 자살했다고 추정한다.[25] 이러한 추정의 유일한 증거는 포스터의 유산에서 추론된 것이며, 포스터가 히틀러와 어떤 종류의 접촉을 가졌는지에 대한 증거조차 없다.[52]
- 1998년 루이지애나 주립 대학교의 법의 정신과 의사 데이비드 E. 포스트는 포스터가 최면으로 히틀러의 히스테리 증상을 치료했다는 가설이 입증된 사실이라고 묘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포스트는 문서화된 개인 연구를 포함하지 않았다.[59]
- 부분적으로 비니온에게서 영감을 받아 영국의 신경심리학자 데이비드 루이스는 『히틀러를 만든 남자』 (2003)를 출판했다. 루이스는 포스터의 최면을 사실로 묘사하고, 순종적인 군인에서 강인하고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으로 변모한 히틀러의 이유로 보았다. 이 책에서 포스터는 히틀러의 "창조자"라고 불린다.[60]
- 비니온에게서 영감을 받은 또 다른 책은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코블렌츠 대학교 정치학 명예교수인 만프레드 코흐-힐레브레히트가 쓴 『히틀러. 전쟁의 아들』 (2003)이다. 코흐-힐레브레히트는 히틀러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음을 입증하려 했으며, 포스터가 그의 의뢰인에게 전투에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전기 충격 요법을 가했다고 묘사한다.[38]
- 2004년 독일에서 변호사 베른하르트 호르스트만은 『파제발크의 히틀러』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포스터가 "훌륭하게" 사용한 최면으로 히틀러의 히스테리성 실명뿐만 아니라, 히틀러가 정치인으로서 매우 특징적이 된 전능감과 사명감을 부여했다고 묘사한다. 이 책에서는 바이스의 소설 이야기 외에 다른 증거는 제시되지 않는다.[61]
- 2006년 울름 대학교의 법의 정신 치료학 교수인 프란치스카 라모트는 기사에서 "... 정신과 의사 에드문트 포스터 교수에게 하사 아돌프 히틀러의 치료 의료 기록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후자가 최면을 사용하여 그를 히스테리성 실명에서 해방시켰다"고 썼다.[62]
이러한 추측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은 일찍이 나타났다. 그러나 정신과 역사가 얀 암브루스터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는 기자 오트마르 카츠(히틀러의 개인 주치의 테오도어 모렐의 전기 작가, 1982)의 경우처럼 충분히 설득력이 없었다고 판단했다.[9] 카츠는 카를 크로너가 몇 가지 거짓말을 보고할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이캬비크에서 유대인 난민으로 살면서 블루 칼라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야 했던 크로너는 미국 당국이 자신을 핵심 증인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의료 활동을 재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을 수 있다.[63] 포괄적인 타당성 검사는 마침내 2008년 베를린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 치료사 페터 타이즈아벤드로트에 의해 수행되었다.[64] 2009년, 암브루스터는 이 분석을 발전시켜 히틀러의 히스테리 진단과 최면 치료 가설을 완전히 해체하고, 히틀러의 포스터에 의한 주장된 치료 이야기가 1943년부터 2006년까지 역사적 문서 평가 때문이 아니라 지속적인 서술적 미화의 추가로 인해 어떻게 점진적으로 정교해지고 상세해졌는지를 자세히 보여주었다. 또한, 암브루스터의 연구는 많은 히틀러 병리학의 방법론적 약점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비판을 제시한다.[9]
월터 C. 랭거 (1943)
[편집]파제발크 사건과 히틀러의 포스터에 의한 치료 주장을 주요 증거로 삼지 않고 히틀러가 히스테리 징후를 보였다고 주장한 몇 안 되는 저자 중 한 명은 미국의 정신분석가 월터 찰스 랭거였다. 랭거는 1943년 OSS를 대신하여 비밀리에 이 연구를 작성했다.[65] 그와 그의 팀은 미국 정보 기관에 협조할 수 있었고 히틀러를 개인적으로 아는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은 히틀러가 "조현병 직전의 히스테리 환자"라는 최종 판단에 도달했다. 이 연구는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졌다가 1972년 『아돌프 히틀러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66]
정신증
[편집]히틀러 생전에도 그의 개인적인 신념과 행동의 많은 요소들이 정신과 의사들에 의해 조현병의 징후로 분류되었다. 예를 들어, 독일 국민을 유대인이라는 적에게서 해방시키기 위해 운명적으로 선택받았다는 그의 믿음이 그러하다.
W. H. D. 버논 (1942)과 헨리 머레이 (1943)
[편집]히틀러에게 조현병의 고전적 증상을 보였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은 캐나다 정신과 의사 W.H.D. 버논이었다. 1942년 그는 한 에세이에서 히틀러가 환각, 환청, 편집증, 그리고 과대망상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버논은 히틀러의 성격 구조가 전체적으로는 정상 범위 내에 있지만, 편집형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기술했다.[27]
1년 후,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헨리 머레이는 이러한 견해를 더욱 발전시켰다. 랭거처럼 머레이도 OSS를 대신하여 그의 보고서 『아돌프 히틀러의 성격 분석』을 작성했다. 그는 히틀러가 히스테리 증상 외에도 과민반응, 공황발작, 비합리적 질투, 편집증, 전능 환상, 과대망상, 메시아적 사명에 대한 믿음, 극심한 편집증 등 조현병의 모든 고전적 증상을 보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히틀러를 히스테리와 조현병 사이에 위치한 인물로 보았지만, 히틀러가 자신의 병적 경향을 상당 부분 통제했으며, 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독일인들 사이에서 민족주의적 감정과 추정되는 박해자들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켰다고 강조했다. 랭거처럼 머레이도 히틀러가 결국 자신과 "운명"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24]
볼프강 트레헤르 (1966)
[편집]임상적 의미에서 히틀러가 완전히 발달한 정신증을 앓았음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간혹 있었다. 프라이부르크 정신과 의사 볼프강 트레헤르의 저서 『히틀러, 슈타이너, 슈레버』(1966)가 그 예이다. 트레헤르는 루돌프 슈타이너(그의 인지학 신념을 정신 질환으로 간주한다)와 히틀러 모두 조현병을 앓았다고 설명한다.[28] 그는 둘 다 자신의 망상에 따라 자신의 조직(슈타이너: 인지학회; 히틀러: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과 그 하위 부서들)을 만들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현실과의 접촉을 유지할 수 있었고, 따라서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조현병적 위축"을 피할 수 있었다고 썼다. 트레헤르는 히틀러의 과대망상과 편집증이 매우 두드러진다고 본다.[67]
에들레프 슈바프 (1992)
[편집]1992년 독일계 미국인 임상심리학자 에들레프 H. 슈바프는 그의 정신전기 『히틀러의 정신』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히틀러의 상상력, 특히 유대인에 의한 위협에 대한 강박관념이 편집증의 결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장애의 원인은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와 폭군적인 아버지로 인해 지배되었던 트라우마적인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슈바프는 추측한다.[29]
파울 마투세크, 페터 마투세크, 얀 마르바흐 (2000)
[편집]책 『히틀러 – 망상의 경력』(2000)은 정신과 의사 파울 마투세크, 미디어 이론가 페터 마투세크, 사회학자 얀 마르바흐가 일차원적인 정신과 병리학의 전통을 극복하고 사회사적 차원을 고려한 학제간 접근 방식을 추구하기 위한 공동 노력의 결과이다. 이 연구는 히틀러의 개인적인 정신병리학보다는 오히려 히틀러 광기의 전반적인 역학에 기여한 개인적 요인과 집단적 요인 간의 "상호 작용"에 대한 설명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정신병적 증상으로 가득 찬 히틀러의 지도자 역할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 역할이 추종자들에게 불러일으킨 매력 사이의 상호 작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들은 나치 범죄가 실제로 광기의 표현이었지만, 대중에게 너무나 강하게 받아들여져 정신병을 앓는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그들의 "광기"에 찬 세계관 속에서 사실상 서로를 안정시켰다고 결론짓는다.[22]
프레데릭 L. 쿨리지, 펠리시아 L. 데이비스, 대니얼 L. 시갈 (2007)
[편집]방법론적으로 가장 정교한 히틀러의 심리 평가는 2007년 콜로라도 대학교의 연구팀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 연구는 개방적이고 탐색적인 접근 방식으로 이전의 모든 작업과 달랐다. 팀은 히틀러의 행동이 어떤 정신 질환을 나타낼 수 있는지 또는 나타내지 않을 수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테스트했다. 이것은 일관되게 경험적인 최초의 히틀러 병리학 연구였다. 심리학자와 역사가들은 히틀러를 아는 사람들이 전해준 보고서를 검토하고, 다양한 성격, 임상 및 신경심리학적 장애를 측정할 수 있는 자체 개발 진단 도구에 따라 이러한 기록들을 평가했다.[68] 이 연구에 따르면 히틀러는 편집증, 반사회적, 가학적, 자기애적 인격장애의 명백한 특성을 보였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뚜렷한 특성도 보였다.[18]
유기적으로 유발된 정신병적 증상
[편집]히틀러의 주장된 정신병적 증상은 반복적으로 가능한 유기적 원인으로 돌려졌다. 예를 들어, 정신과 의사 귄터 헤르만 헤세는 히틀러가 제1차 세계 대전 중 가스 중독의 장기적인 후유증을 겪었다고 확신했다.[32]
매독
[편집]1980년대 후반, 쾰른 대학교의 엘렌 기벨스는 히틀러 말년의 사지 떨림을 파킨슨병 때문으로 돌렸는데, 이는 연구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였다.[31] 그러나 일부 연구자들은 히틀러의 떨림을 진행된 매독의 증상으로 해석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미국 역사가 데보라 헤이든이 그러했다. 헤이든은 히틀러가 1942년부터 앓았다고 주장하는 진행마비와 말년의 정신적 쇠퇴, 특히 그의 "편집증적 분노 발작"을 연결시킨다.[33] 그러나 정신과 의사 프레데릭 레들리히는 히틀러가 매독을 앓았다는 증거는 없다고 보고했다.
파킨슨병
[편집]히틀러가 파킨슨병을 앓았을 가능성은 에른스트-귄터 쉔크[69]와 나중에 기벨스[70]에 의해 처음 조사되었다. 1994년 기벨스는 히틀러의 신경 질환이 그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31]
사이코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
[편집]그의 범죄의 비인간성을 고려할 때, 히틀러는 일찍부터 "사이코패스"와 연결되었다. 사이코패스는 공감, 사회적 책임, 양심의 상당하거나 완전한 결여를 주요 증상으로 하는 심각한 인격장애이다.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이 개념은 정신과 법과학에서 여전히 역할을 하지만, 현대 의학 분류 체계(DSM-IV 및 ICD-10)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 해당 임상 양상은 대부분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징후로 분류된다. 그러나 증상은 드물며, 히틀러를 "사이코패스"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중 담론과는 달리,[71] 정신과 의사들은 그를 사이코패스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와 연관시키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구스타프 비호프스키 (1948)
[편집]초기에 일부 히틀러 병리학 연구는 심리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회학적 측면도 고려했다. 이러한 학제간 접근 방식은 1928년 정신과 의사 빌헬름 랑게-아이히바움에 의해 개발되었다.[72] 히틀러에 대한 가장 초기 사회심리학적 병리학 연구는 1948년 구스타프 비호프스키의 선집 『독재자와 추종자들』에 실렸다.[73] 이 책에서 폴란드계 미국인 정신과 의사 비호프스키는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여러 역사적 인물들을 비교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올리버 크롬웰,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 히틀러, 그리고 이오시프 스탈린. 그는 이 모든 인물들이 충동을 행동화하거나 자신의 적대적 충동을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게 심리 투영하는 경향과 같이 "사이코패스적"으로 분류되어야 할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74]
데스몬드 헨리, 딕 기어리, 피터 타이어 (1993)
[편집]1993년 데스몬드 헨리, 딕 기어리, 피터 타이어로 구성된 학제간 팀은 히틀러가 ICD-10에 정의된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앓았다는 공동 견해를 표명한 에세이를 발표했다. 정신과 의사인 타이어는 히틀러가 또한 편집증과 연극성 인격장애의 징후를 보였다고 확신했다.[26]
심층 심리학적 접근
[편집]히틀러를 다룰 때 정신과 지향적인 저자들은 주로 그에게 특정 임상 장애를 진단하려고 노력했지만,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학파와 같은 심층 심리학 교리를 따르는 일부 동료들은 그의 엄청나게 파괴적인 행동을 설명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교리에 따라 그들은 히틀러의 행동과 성격 발달이 그의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둔 무의식적인 과정에 의해 추진되었다고 가정했다. 심층 심리학에서 영감을 받은 병리학은 일반적으로 히틀러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시나리오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때때로 게르하르트 빈나이와 같은 저자들은 심층 심리학적 분석으로 시작했지만, 초기 접근 방식을 훨씬 뛰어넘어 발전했다.
에리히 프롬 (1973)
[편집]가장 유명한 히틀러 병리학 연구 중 하나는 에리히 프롬이 1973년에 출판한 『인간 파괴성의 해부』이다. 프롬의 목표는 인간 폭력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히틀러에 대한 지식을 아우구스트 쿠비체크의 회고록 (1953), 베르너 마저의 히틀러 전기 (1971),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브래들리 F. 스미스의 히틀러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대한 논문 (1967)과 같은 여러 출처에서 얻었다.[75]
프롬의 병리학은 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개념을 따르며, 히틀러가 유아기적 자기애를 극복하지 못한 미성숙하고 자기중심적인 몽상가였다고 주장한다. 현실 적응 부족으로 인해 그는 굴욕을 겪었고, 이를 쾌락에 찬 파괴성("네크로필리아")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 소위 네로 명령을 포함한 이러한 파괴 욕구의 증거는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히틀러가 단순히 파괴적으로 행동했을 뿐 아니라 "파괴적 성격"에 의해 움직였다고 가정해야 한다.[76]
헬름 슈티어린 (1975)
[편집]1975년 독일의 정신분석가이자 가족 치료사 헬름 슈티어린은 그의 저서 『아돌프 히틀러. 가족 관점』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프롬과 유사하게 히틀러의 공격성과 파괴 욕구의 심리적, 동기적 기반에 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의 연구는 히틀러의 어머니인 클라라 히틀러와의 관계에 크게 초점을 맞춘다. 슈티어린은 히틀러의 어머니가 자신에 대한 좌절된 희망을 아들에게 강하게 위임했으며, 이는 아들에게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고 느꼈다.[77]
앨리스 밀러 (1980)
[편집]스위스 아동 연구자 앨리스 밀러는 1980년에 출판된 그녀의 저서 『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에서 히틀러에 대한 장을 할애했다. 밀러는 루돌프 올덴 (1935), 콘라트 하이덴 (1936/37), 프란츠 예팅어 (1958), 요아힘 페스트 (1973), 헬름 슈티어린 (1975), 존 톨런드 (1976) 등의 전기 및 병리학 저서에서 히틀러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그녀는 히틀러가 자란 가족 환경이 권위적이고 종종 잔인했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에 의해 지배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체주의 정권의 원형"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고 썼다. 그녀는 나중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고통받게 한 히틀러의 증오에 찬 파괴적인 성격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받은 굴욕적이고 모욕적인 대우와 구타 아래서 형성되었다고 썼다. 밀러는 세 자녀가 일찍 사망한 어머니가 아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히틀러가 어린 시절부터 폭군적인 아버지와 동일시했으며, 나중에 부모의 집에서 받은 트라우마를 독일에 전이시켰고, 그의 동시대 사람들은 매우 유사한 어린 시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기꺼이 그를 따랐다고 가정한다.
밀러는 또한 히틀러의 어린 시절 내내 가족과 함께 살았던 클라라 히틀러의 불평이 많은 언니 요한나 폴츨이 정신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증인에 따르면 1911년에 사망한 폴츨은 조현병이거나 지적 장애가 있었다.[78]
노르베르트 브롬버그, 베르나 볼츠 스몰 (1983)
[편집]또 다른 히틀러 병리학 연구는 1983년 뉴욕의 정신분석가 노르베르트 브롬버그(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와 작가 베르나 볼츠 스몰에 의해 제출되었다.[35] 이 책 『히틀러의 정신병리학』에서 브롬버그와 스몰은 히틀러의 개인적인 자기 표현과 행동의 많은 부분이 심각한 인격장애의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가족 배경,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으로서의 행동, 정치인으로서, 통치자로서의 행동을 조사한 결과, 그들은 히틀러가 자기애적 인격장애와 경계선 인격장애 (참조: 아래) 증상 모두에 부합한다는 많은 단서를 발견했다. 브롬버그와 스몰의 연구는 그것이 기반으로 한 신뢰할 수 없는 출처와 히틀러의 추정되는 동성애에 대한 추측적인 다루기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79] (참조: 아돌프 히틀러의 성적 지향, 핑크 스와스티카.)
히틀러가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앓았다는 의견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알프레드 슬레이는 이미 1966년에 이를 주장했다.[34]
벨라 그룬베르거, 피에르 데수앙 (1997)
[편집]프랑스 정신분석가 벨라 그룬베르거와 피에르 데수앙은 1997년 저서 『자기애, 기독교, 반유대주의』에 히틀러에 대한 장을 포함시켰다. 프롬, 브롬버그, 스몰처럼 그들은 특히 히틀러의 자기애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를 히틀러의 주장된 성적 행위와 변비 문제에 대한 상세한 해석을 통해 추적하려 했다.[80]
조지 빅터 (1999)
[편집]심리 치료사 조지 빅터는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1999년 그의 저서 『히틀러: 악의 병리학』에서 그는 히틀러가 유대인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자기혐오에도 사로잡혀 있었으며, 심각한 (경계선) 인격장애를 앓았다고 가정했다. 빅터는 이 모든 문제가 그가 유대인 혈통이라고 믿었던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경험한 학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36] (참조: 알로이스 히틀러#생물학적 아버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편집]히틀러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방 병사로서 형성적인 경험을 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2000년대 초에야 심리학자들이 그의 정신병리학 중 적어도 일부가 전쟁 트라우마에 기인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게 되었다.
테오도르 도팟 (2003)
[편집]2003년 시애틀의 정신과 의사 테오도르 도팟은 『상처 입은 괴물』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히틀러에게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부여했다. 그는 히틀러가 전쟁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히틀러의 아버지에 의한 신체적, 정신적 학대와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의 부모로서의 실패로 인해 만성적인 어린 시절 트라우마도 겪었다고 가정했다. 도팟은 히틀러가 11세에 이러한 장애의 징후를 보였다고 확신한다. 도팟에 따르면, 히틀러의 많은 성격 특성, 예를 들어 그의 변덕스러움, 그의 악의, 그의 관계의 가피학적 본성, 그의 인간 무관심, 그리고 그의 수치심 회피는 트라우마에서 비롯될 수 있다.[37]
같은 해, 위에 언급된 독일 심리학자 만프레드 코흐-힐레브레히트도 히틀러가 전쟁 경험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다는 가정을 제시했다.
게르하르트 빈나이 (2004)
[편집]그 다음 해, 사회 심리학자 게르하르트 빈나이 (브레멘 대학교)는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의 저서 『히틀러 – 실패와 파괴적인 분노』(2004)를 집필할 때 빈나이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출발했다. 그는 먼저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에 대한 심층 심리학적 해석을 시도하고, 히틀러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배경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도팟과 유사하게 빈나이는 히틀러의 정신에 내재된 파괴적 잠재력을 초기 아동기 경험의 결과라기보다는 히틀러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병사로서 경험한 트라우마로 설명한다. 히틀러뿐만 아니라 독일 인구의 상당 부분이 그러한 전쟁 트라우마에 영향을 받았다. 빈나이는 그 후 정신분석학적 담론을 벗어나 사회 심리학적 질문에 대해 논평하는데, 예를 들어 히틀러의 정치적 세계관이 그의 트라우마에서 어떻게 나왔고, 이것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 등이다.[39]
2007년 위에 언급된 저자 쿨리지, 데이비스, 시갈 또한 히틀러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다고 가정했다.
향정신성 약물 사용
[편집]히틀러는 정기적으로 메스암페타민, 바르비투르산계, 암페타민, 아편제, 코카인을 섭취했다.[81][82] 2015년 노먼 올러는 저서 『Der totale Rausch』("전체적인 흥분", 2016년 『블리츠드: 나치 독일의 약물』로 번역)를 출판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히틀러의 모든 비합리적인 행동이 그의 과도한 약물 사용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디 차이트에서 이 책을 서평한 헬레나 바로프는 올러의 설명이 견고한 연구에 기반하지 않는다고 썼다.[83]
소수 의견
[편집]히틀러의 성격과 행동이 인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는 조현병을 나타냈다는 가설은 논란의 여지가 없었지만, 동료 정신과 의사들의 지지를 반복적으로 얻었다. 이는 다음 히틀러 병리학 연구에는 해당되지 않는데, 그 저자들은 자신의 진단에 대해 대체로 혼자였다.
비정상적인 뇌 반구 우세: 콜린 마틴데일, 낸시 하젠푸스, 드와이트 하인즈 (1976)
[편집]1976년에 발표된 에세이에서 메인 대학교의 정신과 의사 콜린 마틴데일, 낸시 하젠푸스, 드와이트 하인즈는 히틀러가 뇌의 좌반구 기능이 저하되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히틀러의 왼쪽 팔다리 떨림,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경향, 그리고 고환이 없었다는 주장을 언급했다. 그들은 히틀러의 행동이 그의 우뇌 반구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이는 비합리적인 경향, 환청, 통제되지 않는 폭발과 같은 증상을 초래했다고 믿었다. 마틴데일, 하젠푸스, 하인즈는 심지어 우뇌 반구의 우세가 히틀러의 정치 이데올로기의 두 가지 기본 요소인 반유대주의와 레벤스라움 이데올로기에 기여했다고 의심했다.[40]
분열형 인격장애: 로버트 G. L. 웨이트 (1977)
[편집]윌리엄스 칼리지의 역사심리학자 로버트 G. L. 웨이트는 1949년부터 역사학적 및 정신분석학적 방법을 결합하여 나치즘에 대한 학제간 탐구를 진행했다. 1977년 그는 그의 연구 『사이코패스 신』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히틀러의 병리학적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는 그의 경력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웨이트는 히틀러가 분열형 인격장애를 앓았다고 가정했는데, 이 상태는 당시 "경계선 인격장애"의 정의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용어는 1970년대 후반에야 현재의 의미를 얻었고, 그때까지 "경계선 인격장애"는 신경증과 조현병의 경계 영역에 있는 광범위한 장애를 지칭했으며, 이에 대해 그레고리 질보르그는 "외래 조현병"이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84] 웨이트는 히틀러가 이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단서로 히틀러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그의 유아적 환상, 그의 변덕스러운 불일치, 그리고 그의 주장된 분변기호증 및 요도성애를 들었다.[42] 웨이트의 견해는 빈 정신과 의사이자 부헨발트 생존자인 어니스트 A. 라파포트의 견해와 부분적으로 일치하는데, 그는 이미 1975년에 히틀러를 "외래 조현병 환자"라고 불렀다.[41]
위험한 지도자 장애: 존 D. 메이어 (1993)
[편집]성격 심리학자 존 D. 메이어 (뉴햄프셔 대학교)는 1993년 히틀러와 같은 파괴적인 인물을 위한 독립적인 정신과 범주인 위험한 지도자 장애 (DLD)를 제안하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메이어는 증상적 행동 특이성의 세 가지 그룹을 식별했다: 1. 무관심 (예를 들어, 반대자, 가족 구성원 또는 시민 살해, 또는 집단학살에서 나타남); 2. 불관용 (언론 검열, 비밀 경찰 운영, 또는 고문 묵인); 3. 자기 과대화 (자신을 국민의 "통일자"로 평가, 자신의 군사력 과대평가, 종교 또는 민족주의와의 동일시, 또는 "거대한 계획" 선언). 메이어는 히틀러를 스탈린, 사담 후세인과 비교했으며, 이 정신과적 분류 제안의 목표는 국제 사회에 위험한 지도자 인물을 상호 합의 하에 인식하고 그들에게 조치를 취하기 쉽게 하는 진단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43] (참조: 유독한 리더.)
양극성 장애: 잡로우 허쉬먼, 줄리안 립 (1994)
[편집]1994년 작가 잡로우 허쉬먼과 정신과 의사 줄리안 립은 공동 저서 『폭군들의 형제애』를 출판했다. 잘 알려진 히틀러의 전기를 바탕으로, 그들은 히틀러가 나폴레옹과 스탈린처럼 양극성 장애를 앓았으며, 이것이 그를 정치에 입문하고 독재자가 되도록 이끌었다는 가설을 발전시켰다.[44]
자폐 스펙트럼 장애: 마이클 피츠제럴드 (2004)
[편집]마이클 피츠제럴드 아동 및 청소년 정신과 교수는 히틀러의 행동 특이성을 면밀히 검토하여 히틀러를 "자폐성 사이코패스"로 분류한 선집 『자폐와 창의성』을 출판했다. 자폐성 사이코패스는 오스트리아 의사 한스 아스페르거가 1944년에 자신이 명명한 임상적 상태를 지칭하기 위해 만든 용어인데, 이는 현대적 의미의 반사회성 인격장애로서의 사이코패스와는 관련이 없다. 피츠제럴드는 히틀러의 잘 알려진 많은 특성들을 자폐적이라고 평가했는데, 특히 그의 다양한 고착, 생기 없는 시선, 사회적 어색함, 개인적인 우정의 부족, 그리고 피츠제럴드에 따르면 실제 대화 능력 부족으로 인한 독백적인 연설 경향 등을 들었다.[45]
비판
[편집]병리학은 저자가 정신적으로 혼란하다고 믿는 인물에 대한 연구를 의미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 질환을 다루며, 일반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문 출판물을 쓰지 않는다. 예외는 개별 저자가 동료의 입장에 반대하여 특정 인물을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전문 담론 내에서만 발생한다. 그 결과, 특정 인물이 정신적으로 건강했다는 견해를 제시하는 작품은 병리학 문헌 전체에서 자연적으로 과소 대표된다. 이는 히틀러의 정신병리학에도 해당된다.
일부 저자들은 히틀러를 냉소적인 조작자나 광신자로 묘사했지만, 그가 심각하게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는 것은 부인했다. 이들 중에는 영국의 역사가 이언 커쇼, 휴 트레버-로퍼, 앨런 불럭, A. J. P. 테일러가 있으며, 최근에는 독일 정신과 의사 만프레드 뤼츠가 있다.[85] 커쇼는 히틀러가 주요 정신병적 장애가 없었으며 임상적으로 미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86] 미국 심리학자 글렌 D. 월터스는 2000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히틀러의 장기적인 정신 건강에 대한 많은 논쟁은 아마도 의문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심각한 정신과적 문제를 겪었더라도, 그는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가 아니라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 최고 권력을 얻었기 때문이다."[87]
에릭 H. 에릭슨 (1950)
[편집]정신분석가이자 발달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1950년 그의 저서 『어린 시절과 사회』에 히틀러에 대한 장을 포함시켰다. 에릭슨은 히틀러를 "연극적이고 히스테리적인 모험가"로 언급했으며, 그의 자기 표현에서 미해결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증거가 있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히틀러가 너무나 배우 같아서 그의 자기 표현을 일반적인 진단 도구로 측정할 수 없다고 믿었다. 히틀러가 특정 정신병리를 보였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는 이를 극도로 통제된 방식으로 다루었으며 의도적으로 활용했다.[88]
테리 L. 브링크 (1974)
[편집]알프레트 아들러의 제자인 테리 브링크는 1975년에 에세이 『히틀러의 사례』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위에서 언급된 저자들과 유사하게 모든 기록을 성실히 평가한 결과 히틀러가 정신 질환을 앓았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히틀러의 행동 중 많은 부분이 어려운 어린 시절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신 질환을 증명하기 위해 인용된 많은 문서와 진술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연합군의 선전과 개인적인 이유로 히틀러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조작에 너무 많은 비중이 주어졌다.[89]
프레데릭 레들리히 (1998)
[편집]가장 포괄적인 히틀러 병리학 연구 중 하나는 신경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프레데릭 레들리히의 작품이다.[90] 1938년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레들리히는 미국 사회 정신의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간주된다. 그가 13년 동안 작업한 1998년 출판작 『히틀러: 파괴적인 예언자의 진단』에서 레들리히는 히틀러가 "정신과 교과서를 채울 만큼" 충분한 편집증과 방어 기제를 보였지만, 정신적으로는 병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히틀러의 편집증적 믿음은 "정신 질환의 증상으로 볼 수 있지만, 성격의 대부분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히틀러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자랑스럽고 열정적으로 수행했다."[91]
한스-요아힘 노이만, 헨리크 에버를레 (2009)
[편집]의사 한스-요아힘 노이만과 역사가 헨리크 에버를레는 테오도어 모렐의 일기 등을 2년간 연구한 후 2009년 공동 저서 『히틀러는 병들었는가?』를 출판했으며, 이 책에서 그들은 "히틀러의 의학적으로 객관화된 정신 질환에 대한 증거는 없다"고 결론지었다.[92][93]
같이 보기
[편집]내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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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ppermann, Wolfgang (1992). 〈Faschismus und Psychoanalyse. Forschungsstand und Forschungsperspektiven〉. Loewenstein, Bedrich. 《Geschichte und Psychologie. Annäherungsversuche》 (독일어). 266쪽. ISBN 978-389085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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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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